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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외화내빈 지역축제 손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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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박진호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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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호
사회부문 기자

화려한 지역축제의 어두운 이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선심성 예산을 펑펑 쏟아붓고도 적자투성이였다. 고령화로 갈수록 복지 수요가 늘고 있는 데다 선출직들의 포퓰리즘까지 기승을 부리면서 외화내빈의 지역축제가 과도하게 난립하고 있다.

이런 실태는 행정자치부가 1일 공개한 지방재정통합공개시스템인 ‘지방재정365(lofin.moi.go.kr)’를 통해 드러났다. 이에 따르면 2014년 전국에서 열린 361건의 축제·행사(비용 3억원 이상) 중 흑자를 낸 것은 강원도 화천군의 ‘얼음나라 화천 산천어축제’가 유일했다. <본지 5월 3일자 14면>

세금을 내는 시민들로서는 뒤늦게 비싼 고지서를 받아 든 셈이 됐다. 춘천에 거주하는 이모(29·여)씨는 “재미도 없고, 의미도 없는 행사에 시민 혈세가 줄줄 새고 있었다는 사실에 화가 난다”고 말했다.

물론 관광객 유치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 등 지역축제의 긍정적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공동체의 살림을 책임지는 지자체들이 방만하게 축제 등 이벤트에 몰두하는 것은 문제다. 요즘 가뜩이나 지방 재정 상황이 좋지 않다. 전국 226개 기초자치단체 중 올해 자체 수입으로 공무원 인건비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자치단체가 75개나 된다.

급기야 행자부는 지방세기본법을 개정해 부자 시·군이 거둔 법인지방소득세를 가난한 시·군에 재분배해 세수 격차를 줄여보겠다고 할 정도다. 이 때문에 중앙과 지방의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판국에 많게는 110억원의 적자를 본 축제와 행사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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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객들이 강원도 화천군에서 지난 1월 열린 ‘산천어 축제’에서 낚시를 즐기고 있다. [사진 화천군]

강원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유성철 사무처장은 “역사적 가치와 공공성 등 지역에 꼭 필요한 축제·행사라면 흑자를 못 내더라도 유지해야겠지만 전문가로 구성된 평가위원회를 만들어 예산을 투입할 가치가 있는지 꼼꼼하게 따져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번에 유일하게 흑자를 낸 강원도 화천군의 사례를 모범으로 삼아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인구가 2만7000여 명에 불과한 화천군은 산천어축제로 5200만원의 흑자를 냈다. 2003년 시작된 산천어축제는 첫해 관광객이 22만 명이었지만 지난해 역대 최고 기록(154만 명)을 세웠다. 주민 참여를 적극 이끌어내고 시설 투자와 공격적인 마케팅을 추진한 결과다.

숙명여대 정책산업대학원 이선철 겸임교수는 “지역에 부가가치를 창출할 방안을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면서 “중복되는 축제는 과감히 통폐합해야 한다”고 말했다.

더 늦기 전에 세금만 축내는 선심성·전시성 축제와 행사를 이제는 손봐야 할 때다.

박진호 사회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