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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일간 정책 이벤트 결과는…덫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엔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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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경제가 엔고(円高)의 덫에 빠졌다. 엔화 값이 뛰자 기업 수익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대규모 통화완화정책으로 엔화 약세를 유도해 경기 회복을 노리는 아베노믹스의 앞날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3일 도쿄 외환시장에서 엔화는 달러당 105.94엔에 거래됐다. 2014년 10월 이후 18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치다. 올 들어 엔화 값은 상승세를 이어가 달러 대비 13.46%나 올랐다.

엔화가치가 높아지면서 닛케이 지수도 추락을 거듭하고 있다. 닛케이 225 지수는 올 들어 2일까지 15.1%나 하락했다. 3일 일본 증권시장은 헌법기념일로 휴장했다.

일본은행은 2013년 4월부터 양적완화를 실시해 3년여간 200조 엔을 시장에 뿌렸다. 엔화 값을 낮춰 수출을 늘리고, 투자와 소비를 일으켜 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서다. 이 결과 지난해 말까지 엔화 가치는 42% 하락했다. 엔화 값이 내리면서 일본 수출기업의 수익은 늘어나고 주가도 상승했다.

하지만 올들어 엔화 값이 치솟으며 스텝이 꼬이기 시작했다. 엔화는 글로벌 경기침체, 유가 하락, 중국 성장세 둔화가 겹치면서 국제적으로 안전한 투자처로 여겨졌다. 올 1월에는 엔고를 막기 위해 일본은행이 마이너스 정책금리까지 도입했지만 엔화 값 강세는 진정되지 않았다.

이런 기조에 최근 기름을 더 부은 건 태평양을 사이에 둔 미국과 일본 중앙은행 등에서 펼친 3일간의 정책 이벤트다. 지난달 27일(현지시간) 미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동결하면서 추가 금리 인상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시사했다. 다음날 열린 일본은행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는 정책금리를 현행 -0.1%에서 동결하고 추가 통화완화정책을 보류했다.

이어 29일(현지시간)에는 미 재무부가 한국ㆍ독일ㆍ대만ㆍ중국과 함께 일본을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지목했다. 정책 이벤트가 끝나자 엔화 강세는 더 거세지고 있다.

엔고가 되면서 일본 기업의 실적 악화는 가시화하고 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도요타 자동차 등 일본 주요 수출기업 25곳의 환율 변동에 따른 영업이익을 분석한 결과 엔화 값이 달러당 106엔대에 머물면 기업 이익은 1조6300억엔(17조5498억원)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105엔대로 올라가면 기업 이익은 1조7500억 엔이나 감소한다. 달러당 110엔 수준으로 엔화 값이 떨어지더라도 이익은 1조1400억엔 줄어든다.

문제는 엔화 강세를 뒤집을 정책 수단이 별로 없다는 점이다. ‘아세안+3 재무장관ㆍ중앙은행 총재 회의’ 참석을 위해 독일 프랑크푸르트를 방문한 구로다 하루히코(黑田東彦) 일본은행 총재는 2일(현지시간) “지금과 같은 엔고는 경제에 바람직하지 않다”고만 할 뿐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일본 부총리 겸 재무상도 “투기 세력이 엔화 강세를 부추기고 있는 만큼 필요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고 목소리는 높였지만 그뿐이었다. 그렇다고 외환 시장 개입에 나설 수도 없다. 미 재무부가 일본을 환율 관찰대상국으로 분류했기 때문이다.

일본이 앞으로 쓸 수 있는 카드는 정책금리 추가 인하, 양적완화 규모 확대 등이지만 효과를 기대하기 힘든 상황이다. 그나마 한 해법으로 거론되는 Fed의 기준금리 인상은 전적으로 미국 Fed의 의지에 달렸다. 일본 정책 당국 입장에서는 개입할 여지가 없어 사실상 엔화 값의 운명은 Fed에 달려 있는 셈이다. Fed는 올해 많아야 1~2회 정도 기준금리를 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아예 올리지 않을 수 도 있다. 이는 앞으로도 엔화 값이 계속 강세로 갈 것이라는 의미다.

히로미치 시라카와 크레디트스위스(CS) 일본수석이코노미스트는 “Fed가 금리 인상 속도를 늦출 것이란 신호를 주는 한 달러 약세, 엔화 강세를 피할 수 없다”며 “엔화 값은 달러당 90엔까지 치솟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hyunoc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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