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라면 내력도 그렇고 맛도 그렇고 일본보다는 한국이 본고장이다. 그런데 요즈음 상황은 뒤바뀐 느낌이다.
일본에서는 소주붐이 일어나 위스키가 타격을 받을 정도인데 비해 한국의 실정은 그 반대다.
이른바 「본격소주」라는 이름으로 쌀과 누룩으로만 만든 「진짜소주」는 가격이 비싼데도 일본에서는 소비자들이 즐겨찾고 있는데 우리는 법적으로 진짜소주를 만들수 조차 없게되어 있다.
값이나 맛 할것없이 서민적인 진짜소주를 개발할 필요성은 없는 것일까. 다시 생각해 볼 문제다.
더구나 굵직굵직한 국제행사를 앞두고 외국인들이 「한국의 맛」으로 마실수 있는 마땅한 술로 『이것』이라고 내세울 수 없는 처지라면 더욱 그렇다.
우리 소주는 국민주 비슷한 역할을 맡고 있기는 하지만 전통주와는 거리가 있다.
현재 우리가 마시는 소주는 전부 희석식 소주다. 대량생산이 용이하며 양곡소비를 줄일 수 있는 등 장점이 있는 것이 희석식.
일본에서 말하는 「진짜소주」는 증류식읕 가리키는데 현재 법으로 만들지 못하도록 금지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옛날처럼 「진짜」로 가마솥에서 내려 마시던 전통소주와 지금의 소주와는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소주는 고려시대에 원나라를 통해 들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사간조효동이 『민가에서 소주를 만들어 음용함은 사치니 제조를 금지토톡 해야한다』고 성종에게 건의할 정도로 민간에 널리 퍼졌다.
이때의 소주는 지금처럼 주정을 물로 희석시킨 것이 아닌 쌀·보리등 순곡과 누룩으로 술을 빚어 증류한 것. 이에 비해 쌀·보리등 곡류이외의 잡곡류·감자·고구마등을 원료로 고순도의 주정을 뽑아낸 후 이에 물을 타는 희석식 소주는 일제시대에 「신식소주」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 상륙했다.
증류식 소주가 완전히 우리나라에서 사라진 것은 지난 65년 양곡관리법에 따라 제조가 금지되면서 부터.
당시 2백50여개에 달하던 증류식 소주업체는 수수·조·변질미등을 이용, 증류식 소주를 만들어 냈으나 정부의 양곡정책에 따라 제조가 전면 금지됐었다.
당시 진로로 대표되던 증류식소주는 노·장년층과 이북출신들에게, 삼학으로 대표되던 희석식 소주는 젊은층과 남도 지방에서 각각 애음됐으나 증류식 소주생산중단에 따라 현재는 전국에 10개회사가 모두 희석식만을 생산해 내고 있다.
증류식과 희석식의 가장 큰 차이는 맛에 있다.
희석식의 경우 원료를 연속식 증류기로 여러 차례 증류해 95도의 알콜을 생산해내므로 원료의 맛이 살아나지 않는다. 그런데도 다소 맛이 느껴지는 것은 희석과정에서 기호에 맞춰 향료등을 첨가하기 때문.
예컨대 약간 단맛을 즐기는 우리의 경우는 미량의 사카린이 들어가지만 일본에 수출되는 것은 단맛을 제거한다.
주정 원료로는 쌀 사용은 법으로 금지돼 있고 지난해부터 남아도는 보리를 처분키 위해 보리를 주정원료로 일부 사용하고 있다.
주정의 원료는 배합비율까지 국세청에서 엄격히 규제하고 있는데 올해의 경우는 보리가 37%, 타피오카 34%, 절간고구마 27%, 생고구마 2%로 규정돼 있다.
희석식 소주는 복식증류과정을 거치므로 화학적으로 순수하고 원료에서 보다 많은 알콜성분을 뽑아내므로 생산비가 적게 든다.
이에 비해 증류식 소주는 단식증류만을 거쳐 한번에 45∼70도짜리 알콜을 만들어 물을 첨가한다. 원료로는 쌀·보리가 주로 쓰이는데 이는 원료의 맛을 살리기 위해서다. 복식증류에 비해 뽑아내는 알콜의 양이 적으므로 원가가 비싸고 독특한 쓴맛을 살리기 위해서는 쌀· 보리같은 주곡을 써야하는데 이것이 결국 제조금지의 이유가 됐다.
증류식 소주의 맛은 덜 걸렀기 때문에 살아있는데 그대신 숙취를 일으키는 퓨젤유·알데히드·메틸알콜등 불순물이 주정을 뽑아낼 때에 비해 많이 남게 된다.
이 문제는 l년이상 장기보관을 하면 해결될 수 있는데 이렇게 오래두면 맛은 살아있는 대신 불순물은 제거된다. 결국 그레인위스키를 만드는것과 갈은 방법으로 저장에 따라 비용이 더 먹힌다.
최근 소주붐을 맞고 있는 일본의 경우에는 희석식은 갑류, 증류식은 을류로 분류되며 양쪽다 만들 수 있다.
증류식인 을류소주는 쌀·사탕수수·보리·메밀등 잡곡에 누룩을 넣어 발효시킨것을 단식증류로 제조한다.
최근에는 아예 쌀과 누룩만으로 빚은 순미주가 비싼 값에도 불구하고 「진짜」를 찾는 소비자들 사이에 조용한 붐을 일으키고 있다.
일본내에서는 이 증류식 (을류)소주야말로 영국의 스카치위스키, 프랑스의 브랜디와 함께 일본이 세계에 자랑할만한 증류주라는 자부심까지 더해져 더욱 각광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일본보다 훨씬 오래전부터 순곡의 증류식 소주를 빚어마신 우리는 정작 찾아볼 수가 없게된 것.
또하나 우리나라 주세가 대부분의 나라가 취하고 있는 종량세가 아닌 종가세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일본의 소주붐은 용기의 패션화에도 큰 원인이 있다. 양주보다는 훨씬 다채로운 포장용기가 젊은층에 크게 어필하고 있는것.
그러나 우리의 경우는 주세가 술 뿐아니라 술을 담고 있는 용기에까지 한꺼번에 붙어버리기 때문에 용기를 고급화할 경우 세 부담은 더욱 높아져 결국 용기의 고급화를 막고 있다는 업계의 주장에도 일리가 없지 않다.
즉 마시고 취하면 되지 않느냐는 식의 경직된 사고가 술의 멋과 맛을 원하는 욕구를 누르고있는 셈이다.
술이 기호품이라면 여러사람의 서로 다른 기호에 맞게끔 개발되도록 조장행정을 펴야 할 것이다.
희석식을 만들지 말자는게 아니라 증류식 소주도 만들자는 얘기다.
진짜소주 (을류)가 갑류 (희석식) 로 바뀌더니 다시 을류로 돌아가는 추세인데 일본에서 갑류소주를 많이 만들게 된 이면에는 명치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역사적 배경이 있다.
일로·일청전쟁에서 화약의 증산에 쫓기던 명치정부는 그 주원료이기도한 알콜의 대증산에 힘쓰게 되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고부터 그 많은 알콜을 어디에 써야될지 새 두통거리가 생겼다.
머리 회전이 빨리 돌아 물을 섞어 희석 알콜용액을 「신식소주」로 팔기 시작했다.
술에 물을 타니 술의 양이 많아지고 그 때문에 주세가 많이 걷혀 일석이조였다. 명치시대 세입의 2대지주는 토지세와 주세였다. 명치7년 (1874) 전공업생산액의 16·4%를 주조업이 차지했을 만큼이었다.
그후 일본에서는 또 주세때문에 술이 제맛을 잃는 시대를 맞게 된다. 청주부터 그렇게 되었다. 2차대전후 쌀이 부족한 판에도 술은 있어야 되고 주세는 거둬야 되어 나온것이 합성주와 「3배증류주」였다. 쌀로 빚은 원주에 당류며 첨가알콜등을 혼합하여 세배로 주량을 늘린 것이다.
결국 일본사람들은 오래 술같은 술을 못마시다가 이제 쌀과 누룩만으로 만든 진짜소주 맛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박태욱기자>박태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