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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향 그윽한 바람으로 더위를 씻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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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5월 초 이른 더위에 부채 생각이 절로 인다. 냉방기에 선풍기가 편리하다 해도 손에 쥔 부채 바람이 더 시원할 때도 있다. 멋스런 글씨와 그림이 어우러진 서화선(書?扇)이면 더 좋다.

영인문학관 ‘서화선 명품전’
문인·서예가 60명 부채그림 내놔

영인문학관(관장 강인숙)이 지난달 29일 개막한 ‘서화선 명품전-작고 문인 중심’은 단오절을 맞아 문단에 내려오던 부채 나눔의 전통을 되돌아본 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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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주 시인이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에게 보낸 서화선. 그림은 이종상 화백이 그렸다. [사진 영인문학관]

“서녘에서 불어오는 바람 속에는 한바다의 정신병과 징역시간과. 육십 미당, 이어령 학우에게.” 미당 서정주(1915~2000) 시인이 1981년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에게 보낸 부채 글이다. 자작시 ‘서풍부(西風賦)’의 한 구절이 일랑 이종상씨 그림으로 담겼다. 구상 시인(1919~2003)이 1982년 직접 쓴 짧은 글 부채에서는 청량한 바람이 인다. “처염상정(處染常淨).” 물들 곳에서도 늘 정갈하다는 뜻이다.

서화선은 예로부터 작지만 개성 넘치는 그림 터였다. 반원형의 한정된 공간을 경영해 만든 이의 색깔과 기량을 드러냈다. 문인과 서예가 60여 명의 부채 그림을 내놓은 강인숙 관장은 “서화선은 한국의 문화를 대표하는 격조 높은 예술품이자 최고의 한류”라고 설명했다.

그는 지난 30여 년 꾸준히 부채 모으는 일에 조력자가 돼준 소설가 서영은씨와 나눈 행복했던 시간을 기억했다. 특히 문인들의 육성을 시각화한 부채 화면의 재탄생을 도운 화가들, 소장품을 건네준 조력자들에 대한 감사를 잊지 않았다.

전시는 6월 18일까지. 7일 이종상 화백의 ‘정통 선면화의 구도와 경영위치론’을 시작으로 매주 토요일 오후 2시에 문학 강연회가 열린다. 02-379-3182.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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