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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I love you 하면 기운 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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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홀로 누워계신 할머니를 보면 ‘얼마나 친구분들이 보고 싶으실까’ 싶어서 안쓰러움이 앞서요. 저도 친구들과 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지만 할머니를 보살펴 드리기 위해 곧장 집으로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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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옥천군 옥천읍에 사는 김민수(15·옥천중 3·사진)군은 학교를 마치는 오후 4시30분이 되면 마음이 급해진다. 거실 침대에 누워 하루 종일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고령의 외할머니 얼굴이 자꾸 떠오르기 때문이다. 김군은 세 살때부터 어머니 유미균(45)씨, 외할머니 전두치(90)씨와 한 집에 살고 있다. 간호사인 유씨가 병원 일을 하며 생계를 꾸려가고 있다.

치매 외할머니 돌보는 김민수군
충북교육청 효도상 대상 수상
“할머니 모시고 찜질방 가봤으면”

외할머니는 치매를 앓고 있다. 3년 전부터는 거동이 어려워 병원 침대를 집에 들여놓고 생활하고 있다. 요양보호사가 하루 3시간씩 방문해 돌봐주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텅 빈 집에서 혼자 TV를 보거나 누워 있다.

김군은 “(외할머니가) 오래 누워있다 보면 혈액 순환도 안 되고 마비증세가 올 때도 있으세요. 집에 도착해 할머니 팔다리를 주물러 드려야 제 마음이 편해요”라고 말한다.

3교대 근무를 하는 어머니가 자리를 비울 때면 식사 준비도 김군 몫이다. 할머니의 아침·저녁 식사를 챙겨 드리는 일부터 집안 청소와 빨래까지 능수능란하다. 학교에서 내준 숙제나 밀린 공부는 할머니가 잠든 뒤에 한다. 또래 아이들과 놀고 싶을 땐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대신한다. 어머니 유씨는 “기저귀를 교체하는 것만 빼곤 민수가 모든 수발을 들고 있다”며 “대견하면서도 한편으론 미안하다”고 말했다.

최근 김군은 할머니에게 ‘I love you(사랑해)’, ‘Good night(잘자요)’ 등 간단한 영어 문장을 가르치고 있다. 짧은 표현이지만 할머니 기억력 증진에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김군은 “할머니께서 제 이름을 ‘동수’라고 잘못 부르실 때도 많지만 ‘I love you’라는 영어 표현은 똑똑히 기억하신다”며 “저에게 ‘사랑한다’며 볼을 비비고 제 손을 잡아주시는 할머니를 볼 때면 덩달아 힘이 난다”고 말했다.

충북교육청은 2일 충북 학생 효도대상 시상식에서 김군에게 대상을 수여했다. 담임 최미성 교사는 “어려운 가정 환경에서도 어머니와 할머니를 공경해온 민수의 사례를 통해 효의 가치를 되새겨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경찰관이 꿈인 김군은 “빨리 어른이 돼서 밤 늦도록 저와 할머니를 위해 일하시는 어머니를 돕고 싶다”며 “경찰관이 되면 할머니를 모시고 벚꽃놀이도 가고 찜질방에도 가고 싶다”고 말했다.

청주=최종권 기자 choig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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