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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처드 3세 ‘530년 한’ 풀어주자 레스터시티 기적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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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잉글리쉬 프리미어리그 선두 레스터시티의 상승세가 눈부시다. 만년 하위팀의 약진 비결에 대한 분석이 다양하게 나오는 가운데 531년 전 숨을 거둔 옛 왕의 음덕(陰德) 덕분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장미전쟁 때 숨진 뒤 사라진 유골
주차장 공사 중 찾아 지난해 장례식
만년 하위팀, 첫 EPL 우승컵 눈앞

레스터시티는 2일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프리미어리그 36라운드 경기에서 1-1로 비겼다. 시즌 승점을 77점(22승11무3패)으로 끌어올린 레스터시티는 창단 이후 132년만의 정상 등극을 앞두고 대관식 준비에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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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터 시내에 자리잡은 리처드 3세 동상. 팬들은 첫 우승을 고대하고 있다. [레스터 AP=뉴시스]

미국 LA타임스는 지난달 9일 “레스터시티의 믿을 수 없는 상승세에는 세 사람이 연관돼 있다. 클라우디오 라니에리(65·이탈리아) 감독과 주축 공격수 제이미 바디(29), 그리고 리처드 3세”라면서 “지난해 리처드 3세의 장례식을 치른 뒤 레스터시티가 완전히 다른 팀이 됐다”고 전했다.

리처드 3세는 영국 요크 왕조의 마지막 왕으로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가 쓴 동명 희곡(리처드 3세)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1485년 레스터 인근 보즈워스에서 열린 장미전쟁(잉글랜드 왕권을 놓고 랭커스터 가문과 요크 가문이 벌인 전쟁)의 마지막 전투에서 사망한 뒤 행방이 묘연했다.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진 리처드 3세는 527년 만인 지난 2012년 다시 세상에 나타났다. 레스터시내 공영주차장 부지 개발 공사 도중 사람의 유골이 발견되자 레스터대학 연구팀이 3년 여 동안 DNA 분석 등 정밀조사를 진행한 결과 지난해 초 “유골의 주인은 리처드 3세”라고 공식 발표했다. 레스터 시민들은 530년 만인 지난해 3월 성대한 장례식을 열었다.

그리고 레스터시티 홈구장 킹 파워 스타디움 인근 대성당에 리처드 3세의 유골을 안장했다. 리처드 3세의 16대손인 영화배우 베네딕트 컴버배치가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낭독해 화제가 됐다.

레스터시티의 기적이 시작된 게 이 무렵부터다. 장례식 이전 프리미어리그 41경기에서 3승에 그쳤던 레스터시티는 이후 9경기에서 7승을 거둬 기적적으로 2부 강등 위기에서 벗어났다. 올 시즌에는 정규리그 36경기에서 22승을 거두며 내로라하는 강호들을 모두 제치고 리그 선두에 올랐다. 진 건 세 차례 뿐이다.

피터 소울스비 레스터시장은 “레스터시티의 대변신에는 단순히 경기력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있다. 옛 왕의 장례식 이후 도시 전체가 설명하기 힘든 새로운 자신감으로 가득하다”고 말했다. 영국 일간지 텔레그래프는 “이쯤되면 레스터시티의 질주에 대해 ‘왕실의 도움이 있었다’는 분석이 가능할 것 같다”고 했다.

리처드 3세의 축복은 우승 뿐만이 아니다. 영국 일간지 미러는 지난 1일 “레스터시티가 우승하면 TV 중계권료 분배금으로 9300만 파운드(1550억원)를 받는다”고 전했다. 아울러 “다음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 출전과 함께 참가수당, 중계권료 등으로 3000만 파운드(500억원)의 추가 수입도 기대된다. 프리미어리그 우승팀 자격으로 맺을 각종 스폰서십도 그에 못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덧붙였다. 프리미어리그에서 ‘다크호스’를 넘어 꾸준히 강팀으로 자리매김할 재정적 기반을 갖추게 되는 셈이다.

레스터시와 시민들은 시내 광장에 자리잡은 리처드 3세 동상에 구단 머플러를 두르고, 시청사에 레스터시티의 상징색인 파랑 조명을 비추는 등 축제 준비를 일찌감치 마쳤다.

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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