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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대우조선에 미련 버릴 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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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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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현
산업부장

역사에 ‘가정’이란 없다. 하지만 조선업종에 대한 구조조정으로 나라가 시끄러워 이런 상상을 해본다. ‘만약 한화가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했더라면’이라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지배구조
적자 내면 지원, 부채비율 4000%
저가 수주로 ?밑지는 장사? 되풀이
수조원 부어도 경쟁력 살릴지 의문

한화는 2008년 11월 약 6조원에 대우조선해양을 사겠다며 산업은행과 양해각서를 체결했다. 하지만 이미 국내외 금융시장엔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에 따른 금융위기의 태풍이 몰아치고 있었다. 돈 구하기가 쉽지 않아진 한화는 잔금 분납 등 추가 협상을 요구했지만 산은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이듬해 1월 산은은 매각협상 결렬을 선언했다.

지금 사람들은 말한다. “당시 협상 결렬로 3000억원의 이행보증금만 떼이고 물러난 건 하늘이 한화를 도운 것이라고.”

대우조선이 지난해 5조5000억원의 적자를 낸 걸 고려하면 한화는 운수 대통한 게 맞다. 하지만 한화가 대우조선을 인수했다면 상황은 지금과 크게 달라졌을 수 있다.

‘남의 돈’으로 시작한 사업치고 성공하는 사례는 거의 없다. 악착같이 하지 않아서다. 대우조선이 딱 그 모양이다. 대우조선은 세 번에 걸쳐 정부 돈을 끌어다 썼다. 첫 번째가 1989년. 당시 정부는 산은과 수출입은행을 앞세워 대우조선(당시 대우중공업)에 대출·상환유예 등에 4700억원을 지원했다. 지금 돈으로 따지면 조 단위 돈을 쏟아부었다. 2000년엔 채권 1조1700억원을 출자전환하면서 대우조선은 산은의 자회사가 된다. 그 리고 지난해, 대우조선이 대규모 적자를 내자 산은은 또 4조2000억원을 지원하기로 한다.

재산을 탕진할 때쯤이면 돈 많은 아버지가 지갑을 채워주니 악착같이 일할 필요 있겠나. 설렁설렁 일하는 대표적인 사례가 저가 수주다. 때론 밑지고도 물건을 만들어주겠다고 하니 경쟁자를 물리치고 ‘수주 왕’이 되는 건 누워서 떡 먹기다. 대우조선의 수주 잔량이 국내 조선 3사 중 가장 많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외형이 계속 불어나니 보기도 좋다. 하지만 그 결과는 처참하다. 지난해에만 5조5000억원의 적자가 이런 상황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제로 세계 조선업계에서 대우조선은 저가 수주의 온상으로 꼽힌다.

“밑지고 판다”라는 말은 장사꾼의 대표적인 거짓말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세계 2위 대우조선 이 밑지고 파는 장사를 계속한 걸까.

아무도 책임지지 않은 기업 지배구조가 그 위험을 잉태했다. 산업은행은 2005년 7월부터 대우조선에 경영관리단을 파견했다. 하지만 대우조선의 상태는 악화일로다. 산은의 대우조선 부실 책임론이 나오는 이유다. 심지어 감사원까지 나서 책임론에 대한 사실 여부를 가리는 중이다. 그러나 감사원 감사로도 밝혀지지 않을 온갖 구린내가 진동한다. 대우조선의 사외이사와 감사는 물론 고문·자문역 등의 자리를 놓고 수많은 청탁이 횡행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정부 지분이 없는 국민은행이나 KT·포스코도 전리품 대하듯 하는 정부·정치권이 대우조선을 온전히 놔뒀을 리 없다.

만약 한화가 대우조선의 주인이 됐다면 이런 일의 상당 부분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이 이를 증명한다. 두 회사도 최근 몇 년 대규모 손실을 봤지만 부채비율이 각각 220%, 309%에 머물고 있다. 대우조선과 달리 공적자금도 일체 투입되지 않았다. 반면 대우조선의 부채비율은 이미 4000%를 넘었다.

이제는 대우조선에 대한 미련을 버려야 한다. 수조원을 들이부으면 회사는 반짝 기력을 차릴 것이다. 그러나 과거 사례에서 우리는 충분히 배웠다. 남의 돈으로 장사하는 한 대우조선의 경쟁력은 살아나지 않을 것임을. 정부와 정치권의 ‘대우조선 놀음’도 멈추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게 바로잡아진다고 해도 여전히 문제는 남는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조선산업은 세계 1위의 자리를 계속 지키고 있을 것인가. 철강·석유화학에 이어 반도체·스마트폰·자동차 시장에서의 주도권이 중국으로 넘어가고 있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직장을 잃은 아버지, 문을 닫은 상점, 풀이 돋아나는 도크…. 구조조정의 그림자는 길고 어둡다. 그렇더라도 해야 할 일이라면 빠르고 신속하게 진행돼야 한다. 그리고 잣대는 미래 경쟁력이어야 한다. 21세기 한국의 조선산업이 할 수 있는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은 무엇인가. 정답은 시장이 다 알고 있다.

김준현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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