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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서] 모범답안 없는데…“은행 자소서 첨삭 5만~8만원” 줄서는 취준생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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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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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경제부문 기자

‘입사 지원 시 고려하는 기업의 이미지를 채용브랜드라고 한다면, 신한은행 채용브랜드의 강점과 약점은 무엇인지 기술하고 채용브랜드 강화를 위한 당신의 멋진 아이디어를 제안해보세요.’

취업학원 ‘꿈보다 해몽’식 조언
인사 담당자에 물으니 ‘엉터리’
취준생 불안감 이용 장사일뿐

지난달 28일 원서접수가 마감된 신한은행 상반기 채용의 자기소개서 3번 문항이다. 일반직 100명을 뽑는 이번 채용엔 1만명이 훌쩍 넘는 지원자가 몰렸다. 1만여 명 지원자들이 골치 아파했던 문항이 바로 이 3번이었다. 도대체 채용브랜드가 무엇인지 감을 잡지 못해서다.

‘정통은행 채용 담당자 출신이 공개하는 선택 받는 자기소개서’, ‘시중은행 서류합격 4명 중 1명이 수강생’. 이런 홍보문구를 내건 몇몇 취업컨설팅 학원은 인터넷을 통해 자소서 문항을 조목조목 분석했다. 3번 관련 조언은 구체적이었는데 이런 식이었다. ‘신한은행의 채용 절차를 꿰뚫고 있어야 한다’, ‘채용브랜드가 주제이므로 은행의 강점과 약점을 쓰면 안 된다’, ‘강점과 약점의 비율은 7대 3로 하라’. 그리고 자기소개서 첨삭이 5만~8만원이라고 안내했다. 한 컨설팅 업체의 인터넷 게시판엔 신한은행 자소서 첨삭을 요청하는 지원자의 글만 수십 건이 넘었다.

취업학원의 분석은 얼마나 들어 맞을까. 채용 담당인 신한은행 인사부 박기홍 차장에게 3번 문항의 출제의도를 물었다. 돌아온 답은 다소 맥이 빠졌다. “지난해 3번 문항인 ‘신한은행의 장점과 단점을 기재하고 향후 취할 전략을 기술해라’를 표현만 약간 다르게 고친 겁니다. ‘전략’이라는 단어가 너무 어렵다고 해서 좀더 쉬운 말로 바꿨습니다.” ‘강점 7, 약점 3’론에 대해선 “자소서 첨삭하는 사람들이 비법이 있는 것처럼 만들어 낸 것뿐”이라고 일축했다. 강점 없이 약점만 써도 얼마든지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자기소개서는 말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는 것인데, 학교 시험 치르듯 모범답안에 맞춰가려니까 어색하고 어려워진다”고 덧붙였다.

은행권 자기소개서 문항이 취업준비생 사이에 이슈가 되는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해 하반기 채용 땐 우리은행 3번 문항(영업점을 직접 방문 뒤 다른 은행과 비교하라)과 국민은행 3번 문항(본인을 나타내는 인문학 도서 속 인물을 소개하라)이 지원자들을 당황케 했다. 열린 채용으로 이른바 ‘스펙’을 보지 않는 은행권에서 자기소개서는 서류전형의 당락을 좌우한다. 가뜩이나 좁은 취업문을 뚫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지원자 중 상당수가 비법을 찾아서 취업컨설팅 업체의 문을 두드린다. 효과를 장담할 수 없는 컨설팅에 돈을 쓰며 기대고 있다.

은행 인사부도 이런 현실을 잘 안다. 이를 걸러보겠다는 의지에서 자꾸 자소서의 질문내용과 구성을 바꾼다. 우리은행은 올 2월 상반기 채용 때 영업점 방문 문항을 없애고 위비톡을 예로 들며 ‘창의적인 사고를 바탕으로 이뤄낸 변화를 말하라’고 했다. 이 은행 이태영 인사부장은 “매년 바꾸지 않으면 1년 뒤엔 모범답안이 생기고 자소서가 다 비슷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채용은 은행의 미래가 달린 일인만큼 치열하게 고민해서 자소서 문항을 수정한다”고 덧붙였다.

KEB하나은행의 채용 담당자는 “자소서를 첨삭·대필 받으면 일반적인 답변이 많아서 성의와 노력, 진실성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고 말했다. 결국 은행의 인사담당자의 결론은 ‘은행 취업에 있어 모범답안은 없다’로 모아진다. 원서 접수 뒤 당장 면접이 코앞으로 다가온 취업준비생들에겐 이 말이 잘 들리지 않겠지만 말이다. 이미 취업컨설팅 학원은 ‘은행 면접관을 사로잡는 면접비법’ 특강의 수강생을 모집 중이다.

한애란 경제부문 기자 aeyan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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