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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벌 꺾은 날, 상하이 라커룸엔 5억원이 풀렸다

중앙일보

입력

중국 수퍼리그는 중국 정부가 천명한 '축구굴기(蹴球?起·축구를 통해 일어섬)'의 상징이다. 천문학적 투자를 앞세워 단기간에 '아시아의 축구 공룡'으로 발돋움했다. 세계축구의 내로라하는 선수와 지도자들이 중국으로 몰려들고 있다. 수퍼리그 정상급 프로팀인 상하이 선화와 유소년 육성에 집중하고 있는 '강소(强小)구단' 항저우 뤼청을 방문해 중국 축구의 잠재력을 들여다봤다.
 
지난달 24일 중국 상하이 훙커우(虹口) 축구전용구장.

중국 프로축구 수퍼리그(1부 리그)의 강호 상하이 뤼디선화(上海 ?地申花)와 허베이 화샤싱푸(河北 ?夏幸福)가 맞붙었다. 경기장 분위기는 상상 이상으로 뜨거웠다. 장대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에도 킥오프 1시간 전에 3만5000석의 관중석 중 3만3000석이 홈팀 상하이의 상징색인 파랑으로 가득 채워졌다. 상하이 구단 관계자는 "2000석을 비워놓은 건 양 팀 서포터스간 충돌로 인한 불상사를 막기 위한 것"이라면서 "나머지 좌석은 경기 며칠 전에 동이 났다"고 말했다.

양 팀 공격진 명단은 유럽 챔피언스리그 못지 않았다. 상하이는 첼시(잉글랜드) 출신 공격수 뎀바 바(30·세네갈)와 콜롬비아 국가대표 듀오 프레디 구아린, 지오바니 모레노(이상 30), 오바페미 마르틴스(32·나이지리아)를 기용했다. 허베이는 파리생제르맹(프랑스) 출신의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에세키엘 라베치(31)와 스테판 음비아(30·카메룬), 제르비뉴(29·코트디부아르), 가엘 카쿠타(26·프랑스)가 나섰다. 이들 8명의 외국인 선수 몸값 총액은 1174억원이나 된다.

시진핑(63·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축구를 국가 스포츠로 격상시킨다'는 청사진을 제시한 이후 수퍼리그팀들 간 운영비 경쟁에 불이 붙었다. 1부 리그 16팀 가운데 올 시즌 우승을 목표로 1000억원 이상의 예산을 쓰는 구단은 무려 7팀이나 된다. 연 매출 4000억 위안(70조7000억원)의 부동산 회사 뤼디그룹이 운영하는 선화를 비롯해 허베이, 상하이 상강, 광저우 헝다, 베이징 궈안, 산둥 루넝, 장쑤 쑤닝 등이다. 이른바 '수퍼리그 세븐 시스터스'다. 베이징 궈안과 더불어 수퍼리그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상하이 선화는 일곱 자매 중 '맏언니' 격이다.

세븐 시스터스의 1000억원대 예산 중 대부분은 외국인 선수 5명을 포함한 선수단 연봉과 수당·생활지원금 등 선수 인건비가 차지한다. 특히나 중국 축구에서 위력을 발휘하는 건 라이벌전 등 중요한 경기에 걸리는 특별승리수당, 이른바 '베팅(betting)'이다. 허베이전 직후 만난 상하이 선화의 한국인 수비수 김기희(27)는 "경기를 마친 뒤 라커룸에 등장한 구단 고위 관계자가 '멋진 경기에 감동받았다'며 즉석에서 300만위안(5억3000만원·세금 공제 후)의 특별수당 지급을 통보해 선수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면서 "통상적으로 '베팅'은 상하이 상강이나 베이징 궈안 등 라이벌과의 맞대결을 앞두고 이뤄진다. '베팅'이 걸린 경기에서 이기면 선수 한 명당 우리돈 3000만원 가까운 가욋돈이 생기기 때문에 선수들 눈빛부터 달라진다"고 말했다.

크게 늘어난 씀씀이와 견줘 경기력은 아직 떨어진다는 게 수퍼리그 안팎의 공통적인 분석이다. 상하이 공격수 뎀바 바는 "중국 무대로 이적한 건 금전적으로 만족스러운 제의를 받았기 때문이다. 중국 리그는 유럽과 견줘 수준이 떨어진다. 선수들의 프로정신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김기희는 "라커룸에 담배 냄새가 찌든 구장이 대부분이다. 선수들의 음주에 대해서도 관대한 분위기"라면서 "외국인 선수들이 엄격하게 자신을 관리하는 모습을 보며 중국 선수들이 조금씩 배워가는 단계"라고 말했다.


국가대표 수비수 김기희(27)는 지난 2월 전북 현대에서 상하이 선화로 이적했다. 이적료는 600만 달러(69억원). K리그에서 해외로 진출한 이적 계약 중 역대 최고액이다. 연봉은 향후 3년간 총액 600만 달러(세금 공제 후)다. 각종 수당은 제외한 금액이다. 상하이 푸서(浦西) 지역 고급주택가에 위치한 48평형 아파트에 살고, 구단으로부터 차량과 전담 통역도 제공받았다. 김영권(26·광저우 헝다)·장현수(25·광저우 푸리) 등 수퍼리그 무대에서 뛰는 한국 국가대표 수비수들의 대우도 비슷하다.

대다수의 수퍼리그 우승권 강호들은 5명의 외국인 쿼터 중 4명을 유럽 무대에서 검증 받은 공격수들로 채운다. 남은 아시안쿼터 한 장을 한국·호주 등 아시아 축구 강국의 대표급 수비수 영입에 쓴다. 지난달 23일에 만난 주오준(45·周軍) 상하이 선화 사장은 "수퍼리그 팀들이 세계 최고 수준의 공격수들을 앞다퉈 영입하면서 공격 부문에서는 상향 평준화가 이뤄졌다. 우승 여부는 결국 수비에서 갈린다"면서 "한국 수비수들은 전술 이해도가 높을 뿐만 아니라 리더십도 겸해 평가가 좋다. 진지쉬(김기희의 중국어 발음)가 합류한 뒤 우리 팀의 수비가 눈에 띄게 견고해졌다"고 말했다.

김기희는 "월드클래스 공격수들을 상대하는 건 수비수로서 긍정적인 경험"이라면서도 "수비진의 리더 역할, 선수단 내 외국인과 중국인의 연결고리 역할을 소화하며 겪는 스트레스와 책임감이 만만치 않다. 준비 없이 섣불리 도전했다간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말했다. 



상하이=송지훈 기자 mil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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