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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사진관] 도심 올빼미의 새벽 점심(?)

중앙일보

입력

하루의 일과를 마치고 퇴근한다는 것은 내일을 위한 쉼표를 찍기 위함입니다. 일을 하다 보면 야근을 하기도 합니다.

거리 풍경은 어둠에 빠져 있습니다. 가로등이 비추긴 하지만 도로 가게나 빌딩의 대부분도 조명을 끄고 수면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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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시간 영업을 하는 간이음식점. 김밥, 만두를 비롯한 순두부찌개와 같이 간단한 음식도 판매한다.

그런데 잠들지 않는 곳이 있습니다. 24시간 불을 밝히고 손님을 기다립니다. 대표적인 곳이 편의점입니다.

우리나라에 본격적인 24시간 영업을 시작한 것이 편의점이었습니다. 1982년 야간 통행금지가 해제되면서 롯데세븐이란 편의점이 등장했습니다. 그러나 당시의 생활상과는 맞지 않아 2년 만에 문을 닫습니다. 그러나 1989년 세븐일레븐이 서울 송파구 올림픽선수촌 아파트 상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인 24시간 영업이 시작됩니다.

이제는 분식집, 음식점, 커피숍, 패스트푸드점 등 다양한 업종에서 24시간 영업을 합니다. 서울 북창동과 인접한 세종대로변은 이렇게 다양한 업종의 점포가 불을 켜고 있어 대낮 못지않은 풍경을 만듭니다.

도시생활은 체력이 되고 비용만 지급할 수 있다면 언제든지 즐길 수 있는 체제가 된 것이죠. 물론 밤새 일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밤새 일하는 올빼미 근로자들에게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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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2시가 지나자 택시의 전조등과 편의점의 불빛만이 거리를 비춘다.

레 탄 퉁(25, 남)은 24시간 편의점에서 일하는 베트남 유학생입니다.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3학년입니다. 약간 어눌한 말투이지만 손님맞이에 어려움은 없습니다. 금요일 저녁 6시부터 토요일 오전 8시까지, 토요일 저녁 10시부터 일요일 오전 8시까지 주말에만 야간근무를 한다고 합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학교 다니면서 오후 5시에서 10시까지 다른 편의점에서 일합니다.
서울 약수동에서 베트남 친구와 함께 자취를 한다고 했습니다. 25만원씩 월세를 나눠낸다고 하네요. 방학 중에는 하루에 10시간 정도 일하기도 했답니다. 밤샘근무를 하게 되면 오후 9시에서 새벽 1시 사이가 손님이 많다고 합니다. 손님들이 주로 음료수, 담배, 간단한 음식을 삽니다.

베트남에서 무역업을 하는 아버지가 유학을 가라 했고 필요경비를 준다 했지만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등록금과 생활비를 자신이 벌어서 냈다고 했습니다. 중간에 돈이 모자라 아버지에게 빌린 적이 있긴 한데 갚았다고 합니다.

베트남도 실업률이 높고 좋은 일자리가 적다고 합니다. 베트남에서도 좋은 국립대를 나와야 취업이 잘된다고 하네요. 대학졸업 후에는 베트남에 있는 한국기업에 취업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피곤하지만 아직 젊으니 괜찮다고 말하네요. 일하는 모습을 사진 찍자고 했더니 사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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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점 직원이 카운터에 엎드려 쉬고 있다. 밤샘근무는 쉽지 않은 일이다.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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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편의점을 찾는 손님들은 음료수, 담배, 간단한 음식을 주로 찾는다.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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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마차는 예전부터 새벽까지 영업하는 대표적인 업종이다. 신인섭 기자

커피전문점도 24시간 영업하는 업종입니다. 2005년 탐앤탐스가 시작한 24시간 영업을 엔젤리너스, 카페베네 등도 따랐고 북창동의 할리스커피도 24시간 영업을 합니다.

여기서 일하는 문(29,남)씨는 저녁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 주말 3일간만 일합니다. 문 씨는 이름과 얼굴을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대학은 졸업했고 가을에 미국에 있는 UC버클리 대학원으로 유학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워낙 야행성 체질이기도 하고 새벽에는 손님이 적어 청소하기에도 좋다고 했습니다. 청소하는 모습을 보니 천천히 그렇지만 꼼꼼하게 했습니다. 잠은 오전에만 잔다고 했습니다. 주초에는 수학 과외를 하기도 한답니다.

보통 저녁 11시부터 12시 사이에 손님이 많은 편이고 그 이후는 거의 없는 편이라고 합니다. 야간근무이기에 최저시급 기준으로 1.5배를 받는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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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40분 커피전문점에 밤샘손님이 있다.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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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숍에서 밤샘근무 하는 배 씨가 매장 청소를 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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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장 외부에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24시간 영업을 한다는 표시가 걸려 있다.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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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숍 매장에서 나온 불빛이 어두운 거리를 비추고 있다. 신인섭 기자

김밥, 만두, 우동과 같은 간단한 분식과 함께 순두부찌개 같은 음식도 파는 가게에는 아주머니 두 분이 계셨습니다. 한 분은 손님접대를 하고 한 분은 주방에서 일하고 계셨습니다. 이곳은 은근히 손님이 오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제대로 묻지를 못했습니다. 두 분이 근무하는 이유는 일 때문이기도 하지만 야간에는 혼자서는 무서워 못한다고 했습니다.

가끔 술 취한 진상손님이 오면 골치가 아프다고 합니다. 주변 빌딩 내부공사 담당한 분들이 새벽 3시에 순두부찌개로 식사를 했습니다. 이런 분들에게는 이런 가게가 있는 것이 큰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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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도 손님 맞이하는 분식집. 간단한 음식보다도 순두부찌개 같은 음식을 찾는 손님도 많다. 신인섭 기자

김덕여(62,여) 씨는 24시간 고기집에서 일합니다. 이집에서만 10년 넘게 일했다고 합니다. 김 씨는 김영희(63,여)와 함께 저녁 8시30분부터 다음날 9시까지 일하고 있습니다. 김덕여 씨는 원래 동대문시장에서 의류장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새벽일은 익숙하다고 합니다. IMF때 부도 맞고 그 뒤 다시 옷 장사를 했지만 나이 들면서 유행을 따라가기가 벅차 그만뒀다고 하네요. 그 뒤 이 가게에서 일하게 됐습니다.

힘이 안 드시냐고 물으니 익숙해져서 괜찮다고 하면서 이 나이에 일할 수 있는 게 어디냐고 말했습니다. 자식들은 분가하고 부부만 오장동에서 산다고 했습니다. 남편도 구청에서 주관하는 공공근로를 해서 집에 들어가면 남편은 나간다고 합니다. 오전 중에는 잠을 자고 오후에 일어나는데 잠이 안 오면 안자기도 합니다. 그리고 휴일에 몰아서 잠을 자기도 하고요. 얼마나 버시냐고 물으니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같이 일하는 김영희 씨도 10년 넘게 일하고 있긴 하지만 야간에 일하는 것은 힘들다고 합니다. 집으로 돌아가 잠을 자도 주변소음 때문에 깊은 잠을 못자 힘들다고 하네요.

두 분이 이야기를 하다가 식사를 차려와 드시기 시작했습니다. 사실상 점심이라고 하네요. 무슨 말이냐고 하니 저녁 9시쯤 먹는 것이 아침이고 새벽 3시에 점심, 아침 7시쯤에 먹는 것이 저녁인 셈이라고 합니다.

이곳도 은근히 손님이 이어졌습니다. 이야기 하던 중 남자 손님 3명, 여자 손님 2명 이렇게 두 테이블을 차지했습니다. 요즘은 외국관광객들도 새벽에 온다고 합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밤늦게 일이 끝나는 사람들이거나 혹은 술을 마신 뒤 좀 더 먹으려고 오는 손님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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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들어온 손님을 위해 김덕여 씨가 고기굽는 숯불을 옮기고 있다. 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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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4시 손님들이 떠나자 김덕여(오른쪽)씨가 상을 치우고 있다. 신인섭 기자

가끔 돈 안내고 도망가거나 아예 돈 없다고 버티는 손님이 있다고 합니다. 도망가는 손님은 들어오자마자 화장실이 어디냐고 하면서 한꺼번에 움직인다고 합니다. 뒷문이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라는 거죠. 또한, 돈 없다고 버티는 손님은 사실상 노숙자인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겉보기에는 깨끗해 보여도 손톱이나 머리카락이 어딘지 단정치 않으면 그런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이럴 때는 “선불 내야 한다.”라고 말하면 그냥 나가 버린 다네요.

이렇게 24시간 영업을 하는 것이 이득이 있을까요? 24시간 매장을 운영하는 할리스커피 홍보담당자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할리스커피는 490여 개 매장 중 부산 광안리점, 신림고시촌점, 터미널, 휴게소 등 48개 점을 24시간 매장으로 운영하고 있다. 유동인구가 많은 유흥상업지역은 24시간 운영을 목적으로 개장했고 그 외는 23시에 마감하지만 시기에 따라 탄력적으로 24시간 운영한다.

24시간 운영은 매출에 도움이 되며 평균 심야매출 비중은 17% 정도를 차지한다. 특히 터미널, 휴게소에 위치한 매장은 야간유동인구가 많아 매출도 좋다. 그리고 심야매출이 인건비 이상 나오는 매장만 24시간 운영하고 있다.’

결국 24시간 운영은 나름 매출 증대에 도움이 됩니다. 그리고 어두운 거리에서 돋보이는 매장간판은 홍보효과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24시간 고깃집에서 일하는 김덕여 씨처럼 계속해서 야간근무를 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현대생활은 밤도 낮처럼 사용해야 할 필요가 생겼다지만…

글쎄요. 생각해볼 문제인 듯합니다.

사진·글 = 신인섭 기자 shini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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