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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헌 MDS테크놀로지 대표]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만든다”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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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로 항공기 운영체계를 개발한 MDS테크놀로지의 이상헌 대표. 신인섭 기자

경남 사천공항엔 구름이 짙었다. ‘오늘도 시제기(試製機·시험용 항공기)는 못 뜨겠구나….’ MDS테크놀로지 기술진들은 한숨을 쉬었다. 가시거리가 확보되지 않아 벌써 몇 번이나 시험 비행이 취소된 상황이다. 귀한 공군 전투기를 시험 비행에 쓰겠다고 언제까지나 잡아둘 수도 없다. 이날도 비행기를 못 띄우면 실험은 무기한 연기해야 했다. 그때였다. “이 정도면 비행할 수 있습니다.” 위험을 무릅쓰고 직접 시험 비행을 해야 하는 전투기 조종사가 나섰다. 그렇게 겨우 시험 비행에 나선 FA-50 시제기는 활주로를 날아올라 공항 상공을 누빈 다음 무사히 착륙했다. 환호성이 터졌다. 2015년 11월16일. 토종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장착한 국산 전투기가 첫 비행에 성공한 날이다.


내장형 소프트웨어 들어가는 분야라면 어디든 진출
지난 4월 17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 본사에서 만난 이상헌(52) MDS테크놀로지(이하 MDS) 대표는 “다들 ‘미쳤다’고 손가락질 하는데도 15년 동안 150억원 넘게 쏟아부은 ‘무모한 도전’이 드디어 결실을 보게 됐다”며 “올해는 외국산이 점령하고 있는 무기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국산화하겠다는 꿈을 현실화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1994년 출범한 MDS는 내장형(embedded)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독보적인 국내 1위 기업이다. 이 대표는 “PC나 노트북이 그냥 컴퓨터라면 내장형 소프트웨어는 휴대전화·자동차·엘리베이터 등 각종 기기에 들어 있는 컴퓨터”라며 “세상에 컴퓨터 100대가 있다면 90대는 내장형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미래 사업 미리 준비하며 끊임없이 도전... 무기 시스템 소프트웨어 국산화 원년 선언

MDS는 자체 개발하거나 해외에서 들여온 내장형 소프트웨어를 각 기업에 맞게 최적화 해서 판매·관리하고 컨설팅하는 회사다. 아시아에서 유일한 마이크로소프트(MS)의 글로벌 파트너이고 1500개 기업과 거래한다. 내장형 소프트웨어가 들어가는 거의 모든 분야에 진출했다. 지난해 매출은 1200억원, 1998년 말 법인화 이후 올 1분기까지 69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이런 MDS에게도 ‘국방 소프트웨어 자주화 프로젝트’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사업이었다. 이 대표는 “매년 200억~300억원의 로열티를 줘야 하고 사후 서비스(AS) 받기도 쉽지 않은 외산 시스템을 국산화하겠다는 정부의 강한 의지와 우리 기술에 대한 확신으로 버텼다”면서도 “만약 지금 다시 하라면 못할 것 같다”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MDS는 2000년 서울대에서 정확하게 실시간으로 제어되는 ‘경성 실시간(hard realtime) 시스템’ 기술을 이전 받아 실시간 운영체제(RTOS)인 ‘네오스(NEOS)’를 자체 개발했다. 하지만 일반 소비자가 사용하는 기기 분야에서는 글로벌 강자들과 겨루기가 역부족이었다. 화려한 그래픽 시스템은 필요 없지만 타격 시간과 지점을 극도로 정밀하게 제어해야 하는 유도 미사일 같은 무기나 항공 분야로 2007년 방향을 틀었다. 현재는 K2 전차나 차세대 한국형 전투기(KFX), 소형 무장헬기(LAH) 등 국방 분야와 대형 선박, 무인항공기(드론)·열차, 원자력 제어 시스템 등에 적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랐다. 하지만 실제 현장에 적용되고 수익을 올리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이 대표는 “현재 MDS의 주력 사업으로 매출의 30%를 차지하는 자동차 전기전자 제어장치 부문도 2000년대 초반에 개발을 시작했지만 2008년부터 수익을 냈다”며 “항공·무기 분야는 이제 싹을 틔우는 단계”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식으로 장기간 투자를 계속하면서도 매 분기마다 흑자를 낼 수 있는 비결로 ‘1-2-3 성장 전략’을 꼽았다. 세계적인 컨설팅회사 맥킨지가 제시한 경영 비결이다. 현재 수익을 창출하는 캐시카우 부문을 제1사업, 지금은 수익이 별로 안 나지만 앞으로 성장할 부문을 제2사업, 먼 미래를 꿈꾸며 투자하는 부문을 제3사업으로 두고 이 세 사업을 동시에 진행하는 전략이다. “어떤 분야든지 반드시 쇠락합니다. 그때 새 성장동력을 찾으려 나서면 이미 늦은 겁니다.”

MDS도 제1사업 부문이 사라지는 위기를 겪었다. 스마트폰이 보편화하기 전에는 내장형 소프트웨어를 가장 많이 쓰는 분야가 휴대전화(피처폰)였다. 2000년대 초반 MDS 매출의 30%는 피처폰 시스템에서 나왔다. 스마트폰이 갑자기 등장하고 구글이 안드로이드 체제를 공개하면서 약 50여개의 국내 내장형 소프트웨어 회사가 사라졌다. 하지만 MDS는 ‘컴퓨터처럼 정교해진 자동차’에 수 년 전 이미 개발해 놓은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면서 매출을 늘렸다. 물론 ‘제3사업’이 늘 성공한 건 아니다. 2008년에는 차량 내비게이션 제조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수십억원을 날렸고, 2009년 미국 광학 회사와 손잡고 만들었던 ‘안방에서도 쉽게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프로젝터 시스템을 내장한 스마트폰’은 샘플 단계에서 10억원의 손실을 냈다. 2011년에는 운전석 앞 유리창에 속도 등을 표시해주는 탈착형 디스플레이 시스템을 개발하다가 중단했다. 이 대표는 “시도하지 않으면 실패도 없지만, 아무것도 못 만든다”고 말했다.


인력 관리가 가장 어려워
이 대표는 중소·중견기업의 가장 큰 어려움으로 ‘인력 관리’를 꼽았다. 애써 키운 좋은 인재가 대기업으로 빠져나가는 걸 막기 어려워서다. 그는 새 사업을 통해 회사를 키우는 것을 해결책으로 제시했다. 대기업과 달리 개방적이고 친밀한 조직 문화도 나름의 해법이다. 매주 임원 회의가 끝나면 즉시 사내 게시판에 회의록을 올려 신입사원까지 정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고, 명절마다 임직원 가족까지 함께 대형마트에서 ‘단체 장보기’를 한다. 비용은 30만원 한도에서 회사가 지원한다.

국내 기업 중 유일하게 내장형 소프트웨어 실습 교육기관인 MDS아카데미를 운영하는 것도 차별화 전략이다. 최대 4000만원까지 하는 1인당 실습 기기를 갖추고 소프트웨어 개발과 적용을 가르친다. 이 대표는 “아카데미 매출 비중은 5%도 안되지만 현재와 미래의 고객을 대상으로 MDS의 최신 기술을 마케팅하는 전진 기지”라고 설명했다.

MDS는 싱가포르·호주 등 5개국에 진출했다. 자체 소프트웨어를 직접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 기업의 소프트웨어를 각 기업에 맞게 최적화해서 재판매하는 일종의 ‘기술 영업’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금처럼 한국 기업이 수출하는 완제품에 우리 소프트웨어가 실려있는 방식이 아니라, 해외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에 우리 소프트웨어를 팔기 위해 미리 해외 기지를 개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희령 기자 hea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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