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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성과 독립성 부족, 구조조정 전문회사 필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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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7호 20면

조선·해운업계 구조조정 바람이 불면서 산업은행도 시험대에 올랐다. 산업은행이 대상으로 분류된 상당수 기업의 최대 채권은행으로 총대를 맸기 때문이다. 하지만 자금 사정이 열악한데다 전문성이 떨어져 구조조정을 원활하게 추진할 수 있을지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선 구조조정에 쓸 ‘실탄(돈)’이 부족하다. 산업은행은 지난해 1조8951억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1998년 이후 17년 만에 가장 큰 적자다. 지난해 STX조선·대우조선해양 등 채권기업을 구조조정하면서 대손충당금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대손충당금은 기업에 빌려준 돈을 돌려받지 못할 것을 대비해 미리 쌓아둔 돈이다. 충당금 규모가 커질수록 순이익은 쪼그라든다. 3개월 이상 연체된 채권(고정이하 여신) 규모는 지난해 말 기준 7조3269억원으로 1년 사이 4조원 이상 증가했다. 전체 여신에서 고정이하 여신이 차지하는 비중은 5.68%로 같은 기간 두 배 가까이 급등했다.


이에 따라 정부가 나서서 산업은행의 자본을 확충할 계획이다. 4일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금융위원회·한국은행·산업은행·수출입은행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 회의에서 재원 조달 규모와 방법을 논의한다. 전문가들은 과거처럼 ‘밑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구조조정은 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경제학과)는 “그동안 한국의 구조조정은 큰 틀 없이 개별 기업의 생존전략에만 초점을 맞췄다”며 “한국 구조조정의 가장 큰 걸림돌은 국책은행의 전문성이 부족하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산업은행이 자회사인 대우조선해양에 15년간 수차례 공적자금을 투입했지만 지난해 5조원 이상의 영업손실을 냈다. 대우가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9조원대 영업손실을 낸 이후 두 번째로 큰 적자다. 조 교수는 “구조조정 전문가 대신 정권이나 산업은행에서 내려온 낙하산 인사가 기업의 임원이나 고문을 맡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따라서 구조조정에서 산업은행의 역할을 축소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대희 한국개발연구원 연구위원은 “2008년 이후 산업은행은 정부와 커뮤니케이션 문제로 일반 은행보다 평균 2년 반 가량 구조조정 시기를 지체했다”며 “채권단의 이해상충 문제에서 자유로운 독립적인 기업 구조조정 전문회사에 부실자산을 매각해 시장에서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때”라고 조언했다.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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