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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하는 ‘선거와 경제’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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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7호 20면

지난달 치러진 총선에서 여당이 예상에 못 미치는 성적표를 받았다. 원인에 대해 공천과정의 잡음을 중심으로 다양한 정치적 해석이 나왔지만 경제 부진이 근본적인 이유 가운데 하나라는 것이 대체로의 평가다. ‘먹고 사는 문제’는 모든 이들의 가장 큰 공통관심사이기 때문이다.


선거와 경제간의 관계는 정치이슈이면서 동시에 경제이슈다. 둘 간의 관계는 특히 미국의 경험에서 매우 뚜렷이 나타난다. 예컨대 1960년대 이후 치러진 14번의 대통령 선거에서 선거가 있는 해의 성장률이 임기 첫해보다 높았을 경우 집권당이 모두 승리했고 반대의 경우에는 집권당이 모두 패배했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는 미국과 달리 이러한 관계가 명확하지 않다. 1980년대 민주화 이후 치러진 6번의 대선에서 세 번은 미국과 같은 결과가 나타났지만 나머지 세 번에서는 반대의 결과가 나왔다.


한국 유권자, 세계 경제도 살펴 현명한 선택선거와 경제간의 관계는 경제적 성과가 선거 결과에 영향을 주는 관계와 선거가 경제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관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물론 이 둘은 인과 관계로 밀접히 맞물려있다. 앞서 본 미국과 우리나라의 대선 결과는 주로 경제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런데 국민의 행복 증진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정치고, 선거가 중요한 정치 행위임을 감안하면 우리 나라에서 경제성과가 선거 결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것은 언뜻 이해하기 어렵다.


다양한 정치적 이슈도 얽혀 작용했겠지만, 경제적인 측면에서 설명한다면 우리 경제의 대외 의존도가 워낙 높아 세계 경제의 흐름이 직접 우리 경제의 성과로 연결되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세계 경제가 호조를 보이면 수출과 투자 및 금융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우리 경제의 성장세도 높아지고, 반대의 경우도 그대로 적용된다. 결국 현명한 유권자들이 결과적인 성장률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외부환경 변화와 정부의 공과를 분리해서 판단했으리라 추측된다.

일러스트 강일구

2007년 대선이 좋은 예다. 당시 우리 경제의 성장률은 5.5%로서 참여 정부 임기 첫 해인 2003년 2.9%보다 높았으나 여당이 크게 졌다. 당시 세계 경제가 과열에 가까운 호황을 보였지만 우리 경제가 원화 강세 정책과 강력한 부동산 규제 등으로 세계 경제의 호황을 충분히 누리지 못했다는 평가가 제기된 바 있다.


향후 상황과 관련해 더욱 눈여겨 볼 부분은 두 번째 관계, 즉 선거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다. 경제 상황에 따라 선거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면 집권당은 선거가 가까워질 때 경제 상황을 좋게 하려는 동기가 생긴다. 미국의 경우 선거 이전에는 경기 호황이 이루어지도록 재정을 중심으로 확장적인 거시정책을 실시하는 반면, 선거 후에는 물가상승을 억제하기 위해 긴축적인 거시 정책을 펴 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처럼 선거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정치적 경기 순환(Political Business Cycle)’이라 불리며 경기 순환을 설명하는 이론의 하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따라서 정치적 경기 순환은 종종 부정적인 의미로 쓰이곤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부동산 및 사회간접자본(SOC) 정책 등의 분야에서 부분적으로 선거를 의식한 정책이 실시됐지만 효과는 그다지 뚜렷하지 못했다.


앞서 본 바와 같이 상당 부분 세계 경제의 흐름에 묻혀버렸고 80년대 이후 추세적으로 성장률이 하락하면서 집권 후반기의 성장률이 초기에 비해 낮아지는 측면도 있다.


경제 정책, 정치권이 정해도 시장 원리 따라야2017년 대선을 앞두고 많은 이들이 걱정하는 것도 결국은 정치적 경기 순환론이 말해주듯이 경제가 정치 논리에 휘둘릴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특히 인구 고령화와 청년 고용난이 심화되고 우리 경제가 장기 저성장기에 들어서면서 정치권 전체가 여야를 막론하고 복지와 일자리, 개발 사업을 둘러싼 인기영합 정책 경쟁에 나설 유혹을 느낄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 시민의식의 성숙 정도와 속도를 감안한다면 최근 심각한 재정적자로 어려움을 겪는 중남미 여러 나라에서처럼 각종 보조금과 복지제도를 남발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이제 현금을 쥐어주는 식의 직접적인 소득 이전은 선심성 정책으로 간주돼 더 이상 유권자 다수의 지지를 받기 어렵다.


경제 정책은 부분적으로 정치성을 띤 것일지라도 시장 원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아야 한다. 아울러 생산을 늘리는 방향으로 경제 주체들의 동기를 유발하고 장기적인 성장 잠재력을 늘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성장률과 소득분배율 등의 경제 지표는 물론이고 각종 경제 정책에 대한 충분한 정보 제공과 객관적인 해석이 필수적이다. 전문가들과 언론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이유다. 이쯤 되면 정치 논리와 경제 논리가 합쳐지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선거와 경제’의 진화는 진행 중이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경제연구부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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