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 감독의 영화를 좋아한다. “야! 돈 갚아!”라는 전도연의 앙칼진 목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멋진 하루’는 마음이 울적할 때 찾아보는 영화 목록에 들어가 있을 정도다(나는 ‘멋진 하루’의 원작을 쓴 다이라 아즈코의 광팬이다. 그녀는 정말이지 끝내주는 소설을 쓴다). ‘멋진 하루’에서 전 남친 병운(하정우)은 희수(전도연)에게 꾼 돈 350만원을 자기가 ‘아는 여자들’에게 다시 ‘빌려서’ 갚는, 세상에 없을 희한한 남자다.
이 영화에서 정말 이상한 건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병운이 조금도 밉지 않다는 것이다. 많이 못 꿔줘서 미안해 하고, 다른 사람에게 꿔서까지 돈을 빌려주는 여자가 있다면, 이 남자의 정체가 궁금해지는 것도 당연지사. 100년 된 사랑도 단번에 식게 한다는 “자기, 나 돈 좀 꿔주면 안돼?”라는 말을 이겨낼 정도의 남자라면, 이토록 강력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희귀 부류 아닌가.
여자들은 대체 뭘 믿고 병운에게 덥석 돈을 꿔주는 걸까. 하지만 꿔달라고 하는 쪽도, 꿔주는 쪽도, 그럴 만하니까 그러는 걸 거다. 이런 애매한 말에 고개가 끄덕여질 정도면, 말로 설명하기 힘든 수많은 감정을 통과한 어른들이 아닐까. 짙은 스모키 화장을 한 채 영화 내내 잔뜩 인상을 쓰고 있던 희수는 마지막에 가서야 돌아서는 병운을 바라보며 ‘피식’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욕이나 실컷 해주려고 했는데….”
사실 희수도 병운에게 돈을 받아낼 생각이 아니었다. 나는 영화 ‘멋진 하루’가 어른들의 동화 같아서 좋다.
자신의 속마음 털어놓다 서로 끌어안아이윤기 감독의 ‘남과 여’를 뒤늦게 보게 된 건,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내 소설 『애인의 애인에게』와 관련이 있다. 두 이야기가 한국이 아닌 헬싱키와 뉴욕처럼 시차가 존재하는 곳에서 벌어진다는 것이나, ‘격정적’이라는 말로 수렴될 불륜의 사랑 이야기라는 사실 이외에도 몇 가지 걸림돌이 작용했다. 영화를 보지도 않았는데 어쩐지 감정선이 비슷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결론적으로 말하면 전혀 다르다).
『애인의 애인에게』에는 3명의 여자가 등장하는데, 그들은 모두 성주라는 한 남자를 사랑한다. 이 소설이 사람들에겐 ‘25금’으로 알려진 모양인데, 사실 이 설정에서 ‘쓰리섬’ 같은 성적 뉘앙스를 읽는다면 오독한 것이다. ‘남과 여’ 역시 마찬가지다. 유부남과 유부녀의 불륜이란 설정에서 침대 속 이야기를 궁금해 한다면, 영화가 가진 특유의 리듬이 꽤나 지루할 것이기 때문이다.
각기 자폐증과 우울증을 앓고 있는 아이들을 위해 떠난 헬싱키. 아이들의 국제학교에서 만난 상민과 기홍은 먼 북쪽의 캠프장을 향해 우연히 동행하게 된다. 폭설로 도로가 끊기고, 눈 덮인 숲 속의 산장에 남게 된 이들은 주변을 산책을 하다가 사우나가 있는 숲 속 오두막을 발견한다. 아이가 곁에 없으면 세상이 무너져 내릴 것 같던 상민은 자신의 마음을 기홍에게 이야기하다가, 서로의 몸을 끌어안게 된다.
첫 정사신에서 격정을 이기지 못했던 기홍(공유)은 상민(전도연)의 바지 지퍼를 내리기 전, 그녀의 얼굴을 바라본다. 헬싱키 숲 속의 작은 오두막, 고개를 돌려 햇빛이 쏟아지는 창문을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 그녀의 지칠 대로 지친 얼굴을 본 것이다. 순간, 기홍은 자신의 ‘행위’를 멈춘다. 그들은 행위를 멈추고 ‘말’을 시작한다. 짐승의 시간을 넘어 인간의 시간 안으로 기어 들어온 것이다. 그들의 사랑이 시작되었다면, 아마 그때부터 일 것이다. 내 눈에 이들의 섹스는 살기 위해 서로를 붙잡고 있는 외로운 짐승들의 교합처럼 느껴졌다. 불륜, 외도, 부정, 그 모든 부정적인 말에도 덜컥, 슬퍼졌다. 결국 모든 건 인간이 인간을 ‘알아보고’ ‘사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가 선택한 것은 ‘회한’이라는 기묘한 슬픔상민은 그 모든 일을 세상이 온통 눈의 그림자로만 보였던 헬싱키의 폭설 때문에 생긴 사고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는 헤어지기 직전, “우리 이름도 모르네요”라는 기홍의 말을 무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8개월 후, 상민의 디자이너 숍 앞에서 ‘다시’ 만난다. 그녀를 잊지 못한 기홍이 서울로 돌아와 그녀를 ‘찾아낸 것’이다. 줄곧 “사는 게 왜 이렇게 애매한지 모르겠어요”라고 무심한 얼굴로 말하던 남자는 결국 그녀를 찾는다.
첫 번째 선택을 하는 건 기홍이다. 그는 상민을 찾아내고, 줄곧 주위를 맴돌다가 그녀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면서 다가선다. 자주 멈칫하는 여자에게 격렬하게 다가오는 남자. 여자는 헤어지자고 말했다가, 헤어질 수 없어 다시 만나고, 아이 때문에 무너지는 마음을 다잡다 결국 마음을 정리하고 그 남자에게 가기로 결정한다. 시작은 남자가 했지만, 끝은 여자가 냈다. 여자는 이혼했고, 한동안 혼자 시간을 보내다가 헬싱키로 남자를 찾아간다. 남자는 결국 가족을 선택했다. 과연 누구의 선택이 옳은 걸까. 만약 사랑이 어느 쪽이 더 많이 사랑하느냐의 문제라면, 둘 중 누구의 상처가 더 오래 깊이 남게 될까.
“다른 일을 할 수도 있었을 시간에 어떤 사람은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으로 삶을 탕진한다. 어쩐지 나는 아주 오랫동안 그를 기다려온 사람 같았다. 그를 기다리기 위해 많은 순간을 참고 견디며 살아냈던 것 같았다.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기억에 남는 가장 소중한 것은 자기 자신조차도 맘대로 할 수 없는 시간이며, 그 시간들 속에서 서로의 기억과 경험을 만들어가며 천천히 변하는 나 자신이라는 걸 말이다…. 그 순간 소원이 생겼다. 나는 영원히 그의 뺨과 어깨를 쓰다듬으며 ‘너는 아름답다’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아마 나는 그런 사람이 될 때만이 온전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그에게 몇 번이고 얘기하고 싶었다.” - 장편소설 『애인의 애인에게』 중
『애인의 애인에게』에서 주인공 마리는 한 남자에 대한 사랑 때문에 많은 것들을 잃는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온 생’을 걸고 ‘주는 사랑’을 선택했기 때문에 그녀는 구원 받는다. 세상에 우연히 만나는 사랑은 많다. 하지만 우연히 헤어지는 사랑은 없다. 사랑의 시작과 끝은 선택에 의해 갈린다. 그것은 인간관계를 ‘잘’ 시작하는 사람과 ‘오래’ 유지하는 사람의 차이와 비슷하다. 전혀 다른 세계, 전혀 다른 기질의 문제다.
영화의 마지막, 가족과 행복한 얼굴로 웃고 있는 기홍을 본 상민은 도망치듯 택시를 탄다. 택시에 앉아 무너지듯 우는 상민의 얼굴을 바라보며 나는 마리를 떠올렸다. 막 한 권의 연애 소설을 통과해낸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어졌다. 지금 당장은 억장이 무너지겠지만 더 길게 상처받는 쪽은 기홍일 거라고.
선택은 결국 감정의 문제로 남는다. 기홍은 평생 ‘회한’이라는 기묘한 슬픔 속에서 살아갈 것이다. 기홍이 나쁜 사람이라거나 비겁해서가 아니다. 그가 선택한 종류의 고통이 그런 것이다. 상민은 자기감정에 충실했기 때문에 불타 올랐다. 완벽히 불타 재로 남은 사랑은 땅 속에 스며 거름이 되어 무엇으로든 꽃 피울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더 큰 목소리로 울어도 좋다고 말하고 싶었다. 핀란드의 백야는 길고, 울 시간은 충분하니까. ●
백영옥 ?광고쟁이, 서점직원, 기자를 거쳐 지금은 작가. 소설『스타일』『다이어트의 여왕』『아주 보통의 연애』 , 인터뷰집 『다른 남자』 ,산문집『마놀로 블라닉 신고 산책하기』등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