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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구하려면 봐야할 영화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77호 32면

저자: 오동진 출판사: 썰물과밀물 가격: 1만6000원

천만영화, 나도 참 좋아한다. 빈틈없는 자본의 시스템에 안착해 대중의 눈높이에 딱 맞게 재미와 감동을 버무린 영화들을 어찌 외면할 수 있단 말인가. 문제는 ‘남들 다 보는’ 영화만 보다가는 언제까지나 어리석은 대중으로 남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를테면 ‘연평해전’의 스크린 장악이 ‘소수의견’을 밀어냄으로써 자본과 인권문제에 있어 우리 사회에 임박한 위기를 대중이 아닌 소수만 눈치채게 되어버린 비극처럼 말이다.


저자는 최근 몇 년간 이 땅에서 외면받은 작은 영화들을 묶어 “어려운 영화를 보라. 그래서 세상을 구하는 일에 동참하라”고 권한다. 그의 문체를 빌자면 이 책은 영화평론을 하는 척, 이 땅의 젊은이들에게 생각 좀 하고 살라는 경고다. 정치와 언론, 자본과 종교, 인간의 존엄, 사랑과 성장 등 살면서 관심 가져야 할 모든 주제들이 86편의 영화 속에 빼곡하다.


광범위한 주제를 다루는 척하지만 목적은 명확하다. 첫 영화로 매카시즘 광풍과 그에 맞서는 방송 제작진의 투쟁을 다룬 조지 클루니의 영화 ‘굿나잇 앤 굿럭’(2006)을 택해 JTBC 손석희 앵커까지 들먹이며 영화란 현실의 토대 위에 발을 디디고 사회적 기능과 역사적 사명을 다해야 함을 역설하고 있으니 말이다. 저자의 말마따나 영화는 텍스트가 아니라 콘텍스트로 이해해야 한다. 조지 클루니의 ‘할리우드 영화’라 하면 블록버스터 오락영화를 연상하기 쉽지만, 뛰어난 예술가이자 ‘정치적 영향력 1위 배우’인 그는 영화를 통한 사회·정치적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런 그가 60년 전 미국 역사를 통해 얘기하려던 건 뭘까. 극단적 신자유주의 이념으로 물들어가던 부시 치하 미국을 50년대 매카시가 날뛰던 시대에 비유한 것이다.


영화는 흔히 남녀간의 문제 같은 작은 구조의 이야기를 통해 우주적 진실을 논한다. 관객에게도 액면이 아니라 본질을 꿰뚫는 통찰을 요구한다. 동화처럼 풍광이 아름다운 ‘해피 해피 와이너리’를 보면서 “저런 전원생활이 행복이지”라며 힐링영화로 분류한다면 착각이란 얘기다. 상처 많은 인간들이 행복을 위해 과연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묻고 있는 영화다.


공포영화도 귀신 얘기를 하는 척 무거운 사회현실을 논하곤 한다. ‘마마’는 금융위기로 파산한 대기업 최고경영자에게 살해당한 아내의 흉측한 몰골을 앞세우고 있지만, 실은 엥겔스의 유물론적 세계관에 입각해 소유의 사회를 공유의 사회로 바꾸기 위한 가부장적 질서 해체와 모권회복, 새로운 가족관계에 대한 대안까지 제시하고 있다. 불법 이주민 흑인 청년과 백인 중산층 여자의 사랑 이야기로 포장한 ‘웰컴 삼바’는 또 어떤가? 프랑스에서 사라지고 있는 톨레랑스 정신을 꼬집으며, 내 생계를 위협하는 것은 불법 이민자가 아니라 자본가 중심으로 짜여진 사회구조 탓이라는 이야기를 하고있다.


영화 속 현실은 때론 너무도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테헤란의 택시 운전수와 해산을 앞둔 미혼모가 겪은 어떤 하루를 그린 ‘하루’는 나와 정말 무관한 이야기일까. 파렴치한으로 오인받던 택시기사가 점차 주변 사람들에게 이해받는 과정은 이슬람권에서 외딴섬처럼 고립된 이란의 경계를 넘어 사회 변화에 대한 우리 내면의 갈망을 대변하고 있다.


저자가 2차 대전 당시 세기의 미술품을 지켜낸 임무에 관한 ‘모뉴먼츠 맨: 세기의 작전’을 우리가 꼭 봐야할 영화라고 소리높여 외치는 건 왜일까. 꼭 조지 클루니 같은 대스타가 맷 데이먼 같은 동료들을 끌어 모아 굴지의 배급사 20세기 폭스와 함께 비상업적인 기록영화에 과감히 투자하는 할리우드의 살아있는 역사의식이 부러워서만은 아닐 것이다. 아마 답답해서일 게다. 외규장각 도서 반환, 중국의 동북공정, 10억엔과 맞바꾼 평화의 소녀상…이런 문제를 직시하지 않고 과연 우리 삶은 나아지고 있는가? 작은 영화를 통해 그가 던지는 질문이다.


글 유주현 객원기자 yjj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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