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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퍼스트펭귄] 150억 날렸다뇨, 전투기를 날게 했지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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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퍼스트펭귄 ① 이상헌 MDS테크놀로지 대표


2016 퍼스트펭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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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7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 한컴타워에 있는 MDS테크놀로지 본사에서 이상헌 대표가 모형 전투기를 하늘로 날려 보내는 포즈를 취했다. [사진 신인섭 기자]

조선과 해운 업종에 대한 구조조정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한국은행은 지난 19일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에서 2.8%로 낮췄다. 4·13 총선 이후 정치권도 요동치고 있다. 이렇게 격랑이 휘몰아칠 때일수록 먼저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들어 성공을 사냥하는 ‘퍼스트펭귄’이 더욱 절실하다. 중앙일보는 2014년 2월부터 12월까지 40회 동안 벤처기업 창업주, 세계적인 히트 상품을 만든 대기업 연구원 등 우리 산업계의 퍼스트펭귄을 소개했다. 숱한 역경과 실패에도 굴하지 않는 ‘퍼스트펭귄식 기업가 정신’이 큰 호응을 얻었다. 지금처럼 한치 앞이 보이지 않은 상황일수록 한국 경제에 희망을 주는 퍼스트펭귄들의 메시지가 더욱 절실하다. ‘2016 퍼스트펭귄’을 새롭게 연재하는 이유다. 편집자 주

“회사 안팎에서 다들 ‘미쳤다’고 했지요. 국산 전투기를 움직이는 시스템 소프트웨어를 우리 손으로 만들겠다는 ‘무모한 도전’에 15년 동안 150억원 넘게 쏟아 부었으니까요.”

지난 17일 경기도 성남시 판교 본사에서 만난 이상헌(52) MDS테크놀로지(이하 MDS) 대표는 “사실 지금 다시 하라면 나도 못할 것 같다”며 껄껄 웃었다.

| 전투기 움직이는 시스템 SW
15년 개발 끝 시험비행에 성공
“300억 로열티 시장, 국산화 원년”

MDS가 15년에 걸쳐 자체 개발한 극정밀 실시간 시스템 소프트웨어 ‘네오스(NEOS)’를 장착한 FA-50 전투기(시험용 항공기)가 지난해 11월 시험 비행에 성공했다. 국산 소프트웨어를 탑재한 전투기가 비행에 성공한 것은 처음이다. 최첨단 항공기는 사실상 컴퓨터에 가깝기 때문에 시스템 소프트웨어의 가격 비중이 40~50%에 이른다. 이 대표는 “무기·항공 시스템 소프트웨어는 매년 로열티를 200억~300억원씩 줘야하고 사후 서비스(AS) 받기도 쉽지 않은 외국산이 점령하고 있다”며 “올해를 국산화 원년으로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1994년 설립한 MDS는 내장형(embedded)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독보적인 국내 1위 기업이다. 내장형 소프트웨어는 휴대전화·자동차·엘리베이터 등 각종 기기에 들어있는 일종의 ‘컴퓨터’다.

이 대표는 “최신 자동차는 컴퓨터로 움직이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세상에 컴퓨터 100대가 있다면 90대는 자동차에 장착된 것과 같은 내장형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MDS는 자체 개발하거나 해외에서 들여온 내장형 소프트웨어를 각 기업에 맞게 최적화 해서 판매·관리하고 컨설팅하는 회사다. 아시아에서 유일한 마이크로소프트(MS)의 글로벌 파트너이고 1500개 기업과 거래한다. 98년 말 법인화 이후 올 1분기까지 ‘69분기 연속 흑자’를 기록했다. 하지만 무기·항공 분야는 언제나 적자다. 현재는 K2 전차나 차세대 한국형 전투기(KFX), 소형 무장헬기(LAH) 등 국방 분야와 대형 선박, 무인항공기(드론)·열차, 원자력 제어 시스템 등에 적용 시험 단계다. 실제 현장에 적용하고 수익을 내려면 장기 투자가 필요하다.

이 대표는 “현재 MDS 매출의 30%를 차지하는 자동차 전기전자 제어장치 부문도 2000년대 초반에 개발을 시작해서 2008년부터 수익을 냈다”며 “2000년 서울대로부터 기술을 이전받아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적용한 항공·무기 분야는 이제 싹을 틔우는 단계”라고 말했다.

그는 이런 식의 장기 투자를 하면서도 매 분기마다 흑자를 낼 수 있었던 비결로 ‘1-2-3 성장 전략’을 꼽았다. 세계적인 컨설팅회사 맥킨지가 제시한 경영 비결이다. 현재 수익을 창출하는 캐시 카우(cash cow) 부문을 제1사업, 지금은 수익이 별로 안나지만 앞으로 성장할 부문을 제2사업, 먼 미래를 꿈꾸며 투자하는 부문을 제3사업으로 두고, 이 세 사업을 동시에 진행하는 전략이다.

“어떤 사업이든 반드시 쇠락하는 때가 옵니다. 그때 새 성장동력을 찾으려 나서면 너무 늦습니다.”

MDS의 최대 위기도 제1사업 부문이 사라져 버렸을 때 왔다. 스마트폰이 보편화하기 전에는 내장형 소프트웨어를 가장 많이 쓰는 분야는 휴대전화(피처폰)였다. 2000년대 초반만 해도 MDS 매출의 30%가 피처폰 시스템에서 나왔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급증하고 구글이 안드로이드 체제를 공개하면서 50여 개의 국내 내장형 소프트웨어 회사가 사라졌다. 하지만 MDS는 ‘컴퓨터처럼 정교해진 자동차’에 새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면서 오히려 회사가 더 커졌다. 제1사업인 피처폰으로 수익을 낼 때 제2, 제3사업이었던 자동차 분야에 미리 투자해뒀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적자 나는 사업이 있어도 제1사업에서 수익을 내면 전체 흑자를 유지할 수 있다”며 “제3사업이 제2사업, 제1사업으로 변하는 동안 다시 새로운 제3사업을 찾는 식으로 끝없이 새 먹거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물론 ‘제3사업’이 늘 성공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실패의 연속이었다. 2008년 차량 내비게이션 제조 사업에 뛰어들었다가 1년만에 수십억원을 날렸다. 2009년 미국 광학 회사와 손잡고 만들었던 ‘안방에서도 쉽게 영화를 볼 수 있도록 프로젝터 시스템을 내장한 스마트폰’은 2년 간 공들였지만 10억원의 손실을 내고 끝났다. 2011년에도 운전석 앞 유리창에 속도 등을 표시해주는 탈착형 디스플레이 시스템 개발에 실패해 쓴맛을 봤다. 하지만 이 대표는 “시도하지 않으면 실패도 없지만, 아무 것도 못 만든다”고 힘주어 말했다. 그는 “새 사업에 실패했다고 직원을 내보내지 않는다. 또 다른 사업을 하면 된다”고 했다.

| 문과지만 납땜 해가며 IT 공부
“시장 형성되기 전 뛰어 들어라”
휴대폰·차 이어 무기·항공 도전

사회학을 전공하고 코오롱에서 해외영업부·기획조정실 등에서 근무한 이 대표가 2001년 정보기술(IT) 기업인 MDS테크놀로지에 합류한 것 역시 ‘무모한 도전’이었다. 벤처 열풍이 휘몰아치던 때, 회사에서 안주하면 안될 것 같은 기분에 당시 직원이 10명 밖에 안되던 ‘친구네 회사’에 합류했다. 그러나 온통 약어로 된 보고서 읽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전산학원을 다니면서 8비트 컴퓨터를 가지고 씨름하고, 납땜도 직접 해봤습니다. 한 쪽 읽는데 10분씩 걸렸지만 전자공학 전공책을 목욕탕까지 들고 가서 공부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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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DS는 싱가포르·호주 등 5개국에 진출했다. 자체 소프트웨어를 직접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 기업의 소프트웨어를 각 기업에 맞게 최적화해서 재판매하는 일종의 ‘기술 영업’을 하고 있다.

이 대표는 “지금처럼 한국 기업이 수출하는 완제품에 우리 소프트웨어를 탑재하는 식이 아니라, 해외 기업이 생산하는 제품에 우리 소프트웨어를 팔기 위해 미리미리 해외 기지를 개척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현지에 시장이 형성됐을 때 진출하려고 하면 이미 늦다”며 “이제 겨우 전자기기가 보급되기 시작하는 나라에 지금 뛰어들어가야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며 활짝 웃었다.

◆퍼스트펭귄(First Penguin)=불확실한 가능성에 도전하는 선구자를 일컫는 영어권 용어. 위험을 무릅쓰고 처음 바다에 뛰어드는 펭귄의 모습에서 유래했다. 펭귄 무리가 바다에 쉽게 못 뛰어들고 주저할 때 한 마리가 먼저 바다에 뛰어들면 다른 펭귄도 줄줄이 따른다.

이상헌 MDS테크놀로지 대표=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코오롱그룹 기획조정실 등에서 12년 동안 일하다가 2001년 벤처 열풍 때 MDS테크놀로지에 부사장으로 합류했다. 2008년 사장으로 취임해 2014년 5월 한컴 그룹이 MDS를 인수한 뒤에도 대표이사 사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해 12월부터 한컴의 지주회사격인 보안 소프트웨어 업체 한컴시큐어(옛 소프트포럼)의 대표이사 사장도 겸임하고 있다.


MDS테크놀로지는

사업 분야: 자동차·항공기·대형선박·열차 등 전자제어장치를 쓰는 기기에 들어가는 내장형 소프트웨어 개발·적용·교육(국내 1위)
설립: 1994년 상장: 2006년 코스닥
직원수: 360명(이공계 인력 80%)
거래 회사: 한국·호주·인도·싱가포르·태국·말레이시아 등 6개국 1500개
매출(단위:원)  2013년 837억    2014년 1052억    2015년 1178억

자료:MDS테크놀로지



글=구희령 기자 healing@joongang.co.kr
사진=신인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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