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랍스터에 모히토, 최고의 선택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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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6호 15면

쿠바 수도 아바나 시내의 레스토랑 야외테이블에서 관광객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개혁?개방 이후 쿠바를 방문하는 외국관광객이 크게 늘었다. 오른쪽 사진은 쿠바를 대표하는 메뉴인 랍스터와 모히토 칵테일. [사진 장수환·조희문]

중남미 여행 경험이 있는 분들은 이구동성으로 “음식이 짜다”고 한다. 오죽하면 음식 주문할 때 “포카 살(poca sal, 소금은 조금만)” 또는 “신 살(sin sal, 소금은 넣지 말고)”이라는 말부터 배우라고 할까. 그런데 쿠바에 오면 상황은 달라진다. 호텔 음식이 무척 싱겁다. 처음에는 주방장이 소금 넣는 것을 잊었나 하고 생각할 정도로 싱거웠다. 계란 프라이나 오믈렛에는 아예 소금을 넣지 않는다. 쿠바에서는 “살 포르파보르(sal por favor, 소금 좀 주세요)”를 입에 달고 다녔다. 생각해 보니 중남미에 흔한 비만족을 쿠바에서는 보기 어렵다.


지난해 경험을 토대로 하루에 한 끼는 바닷가재(스페인어로 랑고스타라고 한다)와 쿠바 특유의 칵테일인 모히토 한 잔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투자 대비 최고의 선택이다. 호텔 주변에 랍스터를 싸게 파는 식당이 널려 있다. 그런데 랍스타 값이 많이 올라 놀랐다. 지난해 6유로였던 것이 지금은 두 배인 12유로나 한다. 모히토(2유로)까지 대략 16유로는 생각해야 한다. 그래도 싼 편이다. 쿠바 랍스터는 살이 통통한 데다 맛도 일품이다. 다양하게 요리할 수 있지만 가장 맛있게 하는 방법은 랍스터를 통째로 그릴에 굽는 것이다.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식당은 내국인 식당에 비해 대략 두 배 정도 비싸다고 생각하면 된다.

1 레스토랑에서 연주하는 쿠바인들.

쿠바 랍스터 값 1년 사이 두 배로 올라파르티쿨라르(민박집)에 여장을 풀고 동네 가게에서 쿠바 럼과 콜라를 구입했다. 취침 전에 럼 칵테일인 쿠바 리브레(Cuba livre)와 에스쿠루(escuro)를 만들어 먹기 위해서다. 쿠바 리브레는 ‘자유 쿠바’를 의미하는데 럼에 레몬과 콜라를 섞어 만든다. 에스쿠루는 럼에 레몬과 콜라, 그리고 꿀을 넣은 달콤한 칵테일이다. 피델 카스트로가 혁명 모의 때 흑인을 끌어들이기 위해 만들었다고 하여 카스트로 칵테일이라고도 한다. 멕시코에서 잠입한 피델 카스트로가 숨어 있던 아바나대학교 앞 건물 1층 카페에서 시음했다.


동네를 탐방하며 가장 놀란 것은 식당이다. 지난해 안 보이던 멋있는 식당들이 곳곳에 보인다. 가장 가까운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물론 랍스터에 모히토를 시켰다. 그런데 호텔보다 음식이 짰다. 쿠바의 심심한 음식 맛이 개방과 함께 밀려나고 있는 듯했다.

2 쿠바 럼 ‘아바나 클럽’과 쿠바 맥주 ‘부카네로’

주인은 쿠바 여인과 결혼한 이탈리아 사람이다. 2년 전에 쿠바에 왔단다. 뭐가 좋아서 왔느냐고 물었더니 동의를 구하듯 말한다. “알다시피 유럽은 경기침체에 장래가 없어요. 쿠바는 희망이 있잖아요.” 시장개방이 기회라는 말로 들렸다. 식당 바로 옆이 카페였다. 그 안에 들어가니 뒤뜰을 개방해 식당과 연결해 놓았다. 팔라다르(민영 식당)는 최대 50석밖에 허용되지 않기 때문에 편법으로 식당 좌석을 늘린 것이다. 내국인 손님도 많다고 한다. 신흥 중산층이 생겨나고 있다는 뜻이겠지. 계산서에 10%의 팁이 적혀 있다. 지난해엔 팁이 없었는데.


쿠바의 모든 식당은 국영이었다. 예외적으로 가족끼리 운영하는 12석 규모의 민영 가족식당이 허용되고 있다. 2012년에는 50석까지 확대하고 외부 종업원도 고용할 수 있도록 했다. 그때부터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팔라다르가 급증했다. 자유분방한 쿠바 사람처럼 식당 인테리어도 다양하고 멋지다.

3 휴양지 바라데로에 정박 중인 관광 요트.

4 식자재를 파는 도매상이 없어 식당들은 일반 소비자들처럼 소매로 구입해야 한다.

“암거래 걸리면 빠져나가는 방법 있어요”그런데 식당 주인에게는 큰 고민이 하나 있다. 영업은 잘되는데 식재료 구입이 어렵다. 식당이 직접 식재료를 구입할 수 있는 도매상이 없기 때문이다. 일반 소비자와 마찬가지로 소매점에서 식자재를 구입해야 하니 음식 가격을 낮추기 어렵다. “그럼 어떻게 식당을 운영합니까?” “그래서 주요 식자재는 암시장에서 구입합니다.” “당국에 걸리면 어떡합니까?” “사업은 위험이죠. 다 빠져나가는 방법이 있어요.” 뒷돈을 말하는 것 같았다. 저임금에 종업원을 고용할 수 있는 팔라다르는 외모가 뛰어난 종업원들을 교육시켜 국영 식당의 손님을 빠르게 빼앗아가고 있다.


또 다른 식당의 주인은 프랑스인이었다. 역시 쿠바 여인과 결혼했다. 손님은 내·외국인이 반반 정도라고 한다. 지난해 개업했는데 사업을 낙관한다. 식자재를 어떻게 구입하는지 물어보니 주인장 말이 걸작이다. “돈만 있으면 물건은 널려 있어요. 발품을 팔면 더 싸게 살 수 있지만 단골이 중요합니다.” 연락하면 바로 보내준단다. 쿠바에 없는 것은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에서도 공급받는다고 한다. 확인하느라 물었다. “랍스터는 쿠바산입니까?” “당연하죠. 이 정도면 마이애미에선 최소 100달러는 줘야 합니다.” 나는 쿠바에 있는 내내 하루에 한 끼는 랍스터에 모히토나 다히키리를 음미했다. 가끔 코히바 시가를 피워대기도 했고. 지금 아니면 언제 다시 이런 호사를 누리랴.


쿠바 정부는 자영업을 허가해 놓고 이들이 물품을 구매할 수 있는 도매시장을 만들어 놓지 않았다. 소비자와 마찬가지로 소매시장에서 물품을 구매해야 하니 당연히 비싸다. 외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고급 식당이면 몰라도 내국인을 상대하기엔 재료비가 벅차다. 그래서 암시장이 성행한다. 암시장에는 대부분 국영 업체에서 빼돌린 물건들이 유통된다고 한다. 택시나 트럭도 빼돌린 연료를 사용하는 경우가 많단다. 쿠바 정부도 자영업자에 대한 공급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그대로 방치하면 서민 물가만 오르기 때문이다. 식량의 60%를 수입에 의존하는 쿠바로선 해법 발견이 쉽지 않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오는 5월 2일부터 제한적이나마 자영업자들이 도매시장에서 식자재를 구입할 수 있도록 했다. 소매시장보다 20% 정도 저렴한 가격에 식자재를 구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500만 경제인구 중 450만이 정부기관 근무올 초까지 50만 명이 자영업 신고를 했다. 500만 경제인구 중 450만 명은 정부기관에서 일한다. 이들의 평균임금은 25달러 정도다. 생활비의 부족분은 해외 송금이나 민간 업체에서 일해 메우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는 공공 분야 인력을 줄여 정부 예산을 절약하고 민간 부문 인력을 늘려 세수원을 확대하니 그야말로 1석2조다. 정부는 처음에 택시·민박·식당 등 관광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분야에만 허가해 주다 농업이나 배관업·소매업 등으로 민간 부문을 확대하고 있다. 피델 카스트로 전 국가평의회 의장이 주장하던 “같이 일하고 필요한 만큼 가져간다”는 구호를 동생 라울 카스트로 현 국가평의회 의장은 “일한 만큼 가져간다”로 바꾸고 있는 중이다. 라울은 건강상의 이유로 2006년 물러난 형 피델의 뒤를 이어 2008년 의장에 공식 취임했다.


시장 개방은 속도 조절이 어려운 야생마 같다. 지난달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현직으로는 88년 만에 처음이자 미국 역대 두 번째로 쿠바를 방문한 뒤 개혁·개방에 대한 기대감은 한껏 높아졌다. 그렇지만 여전히 벽은 높아 보인다. 라울 카스트로 의장은 지난 16일 제7차 전당대회 개막 연설에서 “쿠바는 여전히 공산당 일당 지배의 사회주의 국가”라고 선언했다. 카스트로 의장은 “쿠바는 자본주의를 향해 움직이고 있지 않으며, 자산의 사회적 보유와 협동조합 형태가 민간의 자산 보유보다 선호할 만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국가 자산을 비롯해 교육·보건·안전 등과 같은 사회 서비스의 사유화를 촉진하는 신자유주의 공식은 쿠바 사회주의에 절대 적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개방의 속도를 조절하겠다는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해석된다.


쿠바에서는 조만간 해외 송금을 받거나 자영업을 하는 사람들을 중심으로 신흥 중산층이 형성되면 빈부 격차가 사회문제화할 것이다. 쿠바 정부도 이 문제 해소를 위해 고민을 시작했다. 그 해법이 어떤 것일지는 아직 모른다. 다만 내년이 되어도 맘 놓고 랍스터에 모히토 한 잔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조희문 한국외국어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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