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스웨덴식 재정 개혁 … 곳간은 풀되 새는 구멍 막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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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주재한 ‘2016 국가재정전략회의’가 22일 청와대에서 열렸다. 이날 정부는 국가 재정 건전을 위한 특별법 제정 등의 내용을 담은 ‘중장기 재정전략·재정개혁 추진방안’을 확정했다. 왼쪽부터 유일호 경제부총리, 김준경 한국개발연구원장, 강인수 현대경제연구원장,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청와대사진기자단]

정부가 경기 살리기와 나라 곳간 지키기라는 ‘두 마리 토끼’ 잡기에 나선다. 돈을 더 풀어 경기를 떠받치되 재정개혁을 동시에 추진해 건전성 고삐도 바짝 죄겠다는 포석이다. 이를 위해 나랏빚이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하게 법으로 못박아놓는 내용이 포함된 특별법 제정이 추진된다. 22일 정부는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국가재정전략회의를 열고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중장기 재정전략·재정개혁 추진방안’을 확정했다.

구조조정·복지 개혁 스웨덴 모델
일본과 달리 국가채무 적정성 유지

정부, 채무한도 정하고 지출 제한
법안 발의 때 재원조달 방안 의무화

이날 회의 이후 편성 작업이 시작되는 내년 예산 규모는 당초 계획보다 늘어날 전망이다. 송언석 기획재정부 차관은 사전 브리핑에서 “경기 여건을 고려할 때 내년 총지출 증가율(2.7%)을 미세하나마 조정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구체적인 지출 증가율은 예산편성 과정에서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 확대는 정부로선 불가피한 선택이다. 경기 전망이 갈수록 악화하는 데다 최근 조선·해운 등 주력 산업 구조조정 논의가 본격화하면서 충격 흡수를 위한 재정의 역할이 부각되면서다.

문제는 재정 형편이다. 지난해(-38조원)까지 8년째 적자 행진인 데다 저성장 기조로 상당 기간 적자 재정 편성이 불가피하다. 재정 당국이 딜레마를 풀 대안으로 내놓은 건 ‘스웨덴식 재정개혁’이다. 스웨덴은 과감한 구조조정과 복지·연금 개혁을 통해 재정 부담을 줄였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1990년 46.3%에서 2015년 43.9%로 줄었다. 같은 기간 일본의 국가채무 비율이 67.0%에서 245.9%로 급증한 것과 대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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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식 개혁을 위해 정부는 우선 재정건전화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법에는 중앙정부의 채무 한도를 설정하는 ‘채무준칙’, 총수입 증가율 내에서 총지출 증가율을 관리하는 ‘지출준칙’ 등을 담는 걸 검토하고 있다. 법안을 발의할 때 재원조달 비용을 함께 마련해야 하는 ‘페이고’(Pay-go) 제도도 특별법을 통해 명문화할 계획이다.

‘새는 돈’을 막기 위한 관리도 강화한다. 100억원 이상 사업에는 사전심사를 전면 실시하고 문제가 있는 사업에는 관계부처와 재정 당국이 직접 현장조사를 벌이는 제도도 도입한다. 또 급속한 고령화에 재원 고갈 위험이 커진 국민연금·공무원연금·군인연금·사학연금 등은 ‘적정부담-적정급여’ 체계로 바꾸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에 들어간다.

| 누리 예산, 교부금 집행 못박기로
야당선 반대 … 처리 쉽지 않을 듯

분야별 재정개혁 과제도 제시됐다. 정부와 지방교육청 간 갈등의 소지가 된 과정(만 3~5세 무상교육)에 쓸 예산은 별도의 특별회계로 분류된다. 시·도교육청의 재원인 지방교육재정교부금(올해 40조원) 중 교육세 5조1000억원를 따로 떼어내 누리과정, 초등 돌봄교실 같은 국가 정책사업에만 사용토록 법으로 못박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4·13 총선 결과 ‘거대 야당’이 된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정의당이 누리과정 예산을 전액 국고로 지원하거나 교부금 총액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이라 관련 법안 처리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이종걸 더민주 원내대표는 “20대 국회가 열리면 누리과정 예산을 본예산에 편성하는 것도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층에 대한 주거 지원은 늘린다. 자산·소득 위주로 지원 대상을 선정하던 것을 주거비 부담 정도도 반영하기로 했다. 예컨대 주거급여는 소득이 중위소득의 43%(4인 가구 기준 188만원) 이하인 사람에게 지급된다. 주거비 부담 정도가 선정 기준에 들어가면 월세를 내고 이사도 자주 다녀 주거비 부담이 큰 청년층이 혜택을 받을 수 있 다.

이날 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수술이 무섭다고 안 하면 죽음에 이를 수도 있으므로 구조조정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재정·복지·성장이 선순환되는 좋은 모델인 스웨덴을 분석하고 검토해 국민에게 잘 알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우리 경제의 안전판 역할을 해왔던 재정은 국제적으로 건전하다고 평가받고 있지만 복지 포퓰리즘이 확산될 경우 순식간에 악화될 수 있다”며 “포퓰리즘적 내용을 담은 법안이나 사업은 현재와 미래세대 모두에게 부담을 지우는 일”이라고 말했다.

조민근·하남현 기자 jming@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