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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담뱃갑에 경고그림을 붙이는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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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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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준
울산대 의대 교수
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올해 12월 23일이면 모든 담뱃갑의 앞·뒷면에 폐암을 수술하는 사진 등 10가지의 그림경고가 의무화된다. 담배회사나 흡연 옹호단체들은 그림경고가 흡연자와 담배 판매자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아우성이다. 금연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정책이라는 지적도 한다.

왜 담배에 이런 끔찍한 그림을 부착해 제품의 위험성을 알리는 것일까?

첫째, 담배는 ‘보통’ 물건이 아닌 아주 ‘특수한’ 물건이기 때문이다. 담배에는 69종 이상의 발암물질이 있어 제조자 의도대로 사용하면 사용자 절반의 목숨을 앗아가는 아주 무서운 물건이다. 이런 위험을 잘 모르는 청소년기에 매력적인 담뱃갑에 끌려 흡연을 시작하게 되고 금방 니코틴 의존성에 빠져 병을 얻거나 죽을 때까지 수십 년간 흡연을 계속하게 된다.

이런 물건은 제조와 판매를 금지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담배 불법화 이외의 가능한 정책을 모두 동원해 담배를 강력하게 규제하는 것이다. 유엔은 2003년 담배 규제 기본협약이라는 조약을 제정했고, 우리나라도 2005년 이 조약을 비준했다. 이 조약 11조에는 조약 비준 3년 이내(우리나라의 경우 2008년)에 담뱃갑의 50% 이상에 그림경고를 도입하라고 규정하고 있다. 현재 캐나다·호주 등 선진국은 물론 인도·네팔·태국 등 80개국이 그림경고를 도입했다. 올해까지 101개국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경고그림은 이미 국제 기준이며 우리나라도 이제 겨우 이 기준을 맞추게 된 것이다.

담뱃갑에 경고그림을 부착해야 하는 둘째 이유는 현재의 담뱃갑이 흡연을 조장하는 중요한 광고수단이 되기 때문이다. 담뱃갑은 ‘말 없는 세일즈맨’이다. 또 흡연자 스스로 담뱃갑을 들고 다니면서 담배를 광고한다. TV나 라디오를 통한 담배 광고가 금지돼 있기 때문에 담뱃갑은 그 자체가 매우 중요한 광고수단의 하나다. 경고그림 도입은 담뱃갑을 담배 광고 수단에서 담배의 위험성을 알리는 홍보 수단으로 전환하고, 담배가 해로운 거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중요한 정책이다. 경고그림 도입으로 청소년은 흡연 시작을 덜 하고, 흡연자는 금연 시도를 더해 결국 흡연율을 낮추게 된다. 캐나다는 2000년에 그림경고를 세계 최초로 도입한 뒤 흡연율이 평균 16% 감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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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담배판매인회 중앙회장은 경고그림을 담뱃갑의 상단에 배치하는 건 편의점 종사자들에 대한 정신적 폭력이고 고객에게도 거부감을 줘 매출을 떨어뜨릴 것이라고 주장했다. 경고그림이 효과를 내려면 담뱃갑 상단에 위치해야 한다. 하단보다 상단의 그림이 잘 보이는 것은 상식이고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도 여럿 있다. 담배 규제 기본협약에서도 그렇게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경고그림이 편의점 종사자나 고객에게 거부감을 일으킬 것이라는 주장도 전혀 근거가 없다. 비흡연자인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은 담배의 위험을 더 잘 인식할 것이고, 흡연자인 종사자는 금연을 한 번 더 생각해 볼 것이다. 흡연량을 줄이는 데 효과가 없다면 담배 매출 감소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흡연량이 줄어 담배 매출이 준다고 해도 절약한 돈으로 다른 물건을 살 테니 전체 매출에는 영향이 없을 것이다. 정말 종사자의 정신 건강이 걱정된다면 담배를 캐비닛 안에 넣어 보이지 않도록 하고 고객이 요구할 때만 꺼내 주는 방법을 도입할 것을 권한다.

외국의 경험을 보면 대부분의 국민은 경고그림 도입을 찬성한다. 오히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도입하려 하는 경고그림의 효과에 대한 걱정이 더 크다. 경고그림의 공포감이 클수록 효과가 더 커지는데 이번에 개정된 국민건강증진법에는 경고그림이 ‘과도하게 혐오스럽지 않아야’ 한다고 규정돼 있어 효과를 제한하고 있다. 경고그림의 면적이 클수록 효과가 좋은데 우리의 경우 전체 면적의 30%에 불과해 태국과 인도의 85%, 네팔의 90%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호주는 2012년에 담배 이름을 제외한 담뱃갑의 모든 것을 정부가 결정하는 표준 담뱃갑을 도입해 큰 효과를 보고 있다. 영국·아일랜드·프랑스도 표준 담뱃값 도입을 결정했다. 우리도 다음 단계로의 전진을 준비해야 한다.

경고그림 도입과 관련해 가장 시급한 과제는 편의점의 담배 광고를 금지하는 것이다. 정부는 담뱃값 인상 과정에서 이를 약속한 바 있으나 아직까지 지키지 않고 있다. 국민건강증진법 시행규칙에는 포스터·표시판·스티커를 이용한 담배 광고만 허용하고 있는데 실제로는 LED 등 첨단 기법을 이용한 다양한 불법 광고물이 넘쳐나고 있다. 편의점 광고는 외부에서 보이지 않아야 한다는 국민건강증진법의 규정도 대부분의 편의점에서 지키지 않고 있다. 편의점의 주 고객이 청소년이고 이런 광고가 청소년 흡연 시작의 계기를 제공하므로 이를 시급히 금지해야 한다. 경고그림에 대한 근거 없는 반대를 그만두고 담배 없는 세계를 위해 함께 나아갈 것을 부탁드린다.

조홍준 울산대 의대 교수·서울아산병원 가정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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