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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급호텔 셰프가 되는 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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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시에를 꿈꾸는 조선호텔 막내 요리사 김현우씨가 출근한 뒤 자신의 유니폼을 입고 있다. 주기중 기자.

‘먹방’ 열풍이 불면서 요리사에 대한 인기가 급상승하고 있다. TV에 출연해 한 번 뜨면 연예인과 맞먹는 스타 대접을 받는다. 예능프로그램의 출연 요청이 잇따르고, 광고모델로 등장해 큰돈을 번다. 유명 셰프가 일하는 식당은 예약이 어려울 정도로 대박이 난다. 바야흐로 셰프 전성시대다.

지난 1월 한국보건사회연구원(보사연)이 발표한 ‘2015년 한국복지패널 기초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요리사가 전통적인 인기직종인 의사·판사·검사·변호사보다 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초등학교 4~6학년생 어린이 458명에게 장래 희망을 물은 결과다.

가장 인기가 높은 직업은 ‘문화·예술·스포츠 전문가 및 관련직’으로 40.49%를 차지했다. 여기에는 연기자·가수·운동선수·영화감독·화가·작가·기자 등이 포함된다.

둘째는 ‘교육전문가 및 관련직’으로 12.15%가 이를 택했다. 교수·교사·강사 등 비교적 안정적인 직업이 여기에 속한다.

요리사가 속해 있는 ‘조리 및 음식 서비스직’은 10.42%로 셋째를 차지했다. 의사·한의사·약사·간호사가 속한 ‘보건·사회복지·종교관련직(7.81%)’이나 판사·검사·변호사·공무원이 포함된 ‘법률 및 행정 전문직(6.26%)’보다 높은 수치다.


디저트 담는 접시는 내 요리의 캔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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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우씨가 식재료를 나르고 있다. 요리사의 세계에서 궂은 일은 언제나 막내의 몫이다. 주기중 기자.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는 하지만 참 놀라운 결과다. 조사대상이 아직 어린 데다 TV 프로그램의 영향도 있다. 그러나 직업에 대한 인식이 달라진 것만은 분명하다. 장래희망이 전통적인 가치를 따르기보다 자신의 특기·적성에 맞고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특급호텔인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일하는 ‘초보 요리사’ 김현우(26) 씨를 만났다. 그의 꿈은 최고의 ‘파티시에(patissier)’가 되는 것이다. 파티시에는 프랑스 말로 제과·제빵과 함께 디저트를 만드는 요리사다. 그는 일찌감치 자신의 진로를 결정했다.

김현우씨가 오븐에서 다 구운 빵을 꺼내고 있다. 주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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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때부터 유난히 빵을 좋아했어요. 서울 청운중학교를 다녔는데 특별활동 시간에 ‘제과·제빵교실’에 참여했어요. 외부 강사가 와서 빵 굽는 법을 가르쳐 줬는데 너무 재미있어서 그때부터 파티시에가 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김씨는 꿈을 이루기 위해 착실하게 준비했다. 전문대학인 백석예술대 제과제빵과에 진학했다. 마침내 2012년 22세가 되던 해 계약직 사원을 거쳐 정규직 파티시에로 첫걸음을 내디뎠다. 비교적 엘리트 코스를 밟은 셈이다.

그러나 지금도 인터넷을 뒤지고, 각종 요리책을 읽으며 공부를 멈추지 않고 있다. 한국관광대에 편입해 아직 부족한 제과제빵 기술을 익히고 있다. 틈나는 대로 미술관련 서적을 읽으며 디자인과 색채 감각을 익힌다.

김현우씨(왼쪽)가 선배요리사들과 점심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주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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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이 있잖아요. 파티시에 되기 위해서는 디자인 감각이 중요합니다. 특히 디저트 음식은 고도의 미적 감각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미술작품을 볼 때는 캔버스를 플레이트(접시)로 보고, 디저트 음식을 만들 때는 플레이트를 캔버스라고 생각합니다. “


어머니의 마음 담겨야 진정한 셰프



같은 호텔의 뷔페레스토랑 ‘아리아’에서 일하는 ‘막내 요리사’ 신동영(27) 씨. 그는 음식연구가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았다.

시작은 순탄치 않았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진로를 결정하지 못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웠던 것도 결정을 더디게 했다.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군에 자원 입대했다. 어머니의 피를 이어받은 걸까. 결국 제대한 뒤 요리사가 되기로 마음먹고 전문대학에 들어갔다. 인턴사원을 거쳐 2015년에 정식 요리사가 됐다. 그의 음식에 대한 철학은 확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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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호텔 뷔페식당 아리아의 주방장인 임점식 셰프가 막내요리사인 신동영씨가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주기중 기자.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셰프가 누구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어머니’라고 대답해요. 음식은 맛도 중요하지만 요리사의 마음이 담겨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식에게 밥을 지어 먹이는 어머니의 마음이 담겨야 진정한 셰프라고 생각해요.”

두 초보 요리사는 TV의 영향으로 셰프라는 직업이 화려해 보이지만 정말 멀고, 어렵고, 힘든 과정이라고 입을 모은다.

“셰프를 꿈꾸는 대부분의 초보 요리사들이 쥐꼬리만 한 ‘열정페이’를 받으며 비정규직으로 힘들게 일합니다. 특급호텔에서 정규 요리사로 출발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축복이지요. 하지만 요리사라는 직업은 어디에서 일하건 힘든 과정을 거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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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보 요리사의 하루 일과를 보자. 2교대로 일하는데 출근시간이 오전 6시다. 주방의 군기는 엄격하다. 호텔도 예외가 아니다. 선배 요리사보다 30분 일찍 나온다. 그러려면 새벽 3시 반에 일어나야 한다. 조리도구와 식재료를 챙기며 손님맞이를 준비한다.

뷔페 레스토랑은 7시에 문을 연다. 한 시간 안에 수백 명의 아침식사를 마련해야 한다. 잠시도 쉴 시간이 없다. 뷔페 식당은 오픈 주방인 데다 손님과 직접 대면하기 때문에 긴장감이 더하다.


“발바닥에 굳은살 박히고 나니 견딜 만해요”



10시에 아침 영업시간이 끝나면 주방을 정리한다. 식재료를 정돈한 뒤에 점심을 먹는다. 밥 먹는 시간이 5분이 채 안 된다. 다시 점심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전시간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삐 지나간다.

커다란 카트를 끌고 미로 같은 호텔 지하 복도를 누비며 식재료를 받아 오는 일도 막내의 몫이다. 퇴근은 오후 2시 반이다. 그러나 쉴 여유가 없다. 외국어학원이나 요리학원으로 간다.

호텔의 특성상 외국어는 필수다. 전공분야뿐만 아니라 한식·양식·일식·중식 등 다방면에 걸쳐 지식을 쌓아야 한다. 집으로 돌아가면 또 요리 연습을 한다. 끊임없이 자기계발을 해야 살아남는 직업이다.

“근무시간 내내 서 있어야 합니다. 처음에는 퇴근하면 다리가 퉁퉁 부어 올랐습니다. 6개월 정도 지나니 발바닥에 굳은살이 박히고 견딜 만해지더군요. 하지만 손님들이 내가 만든 음식을 먹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워줄 때는 하루의 피로가 싹 씻겨 내려가는 느낌이 들어요.”

신씨는 셰프를 희망하는 사람이 대부분 TV 먹방 프로그램에 오염(?)돼 있다며 최소한 한두 달쯤 혹독한 환경에서 요리사 체험을 해보고 진로를 결정하라고 조언한다.

취재 첫날 출근길에 만난 김씨는 새벽 출근이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요리사라는 직업은 자신의 일을 즐기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침에 출근하면 거울을 보며 유니폼을 입고 모자를 씁니다. 요리사 복장을 한 제 모습을 보면 힘이 솟고, 느슨해진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

월간중앙 <포토포커스>· 주기중 기자·click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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