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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남선 참패…문재인, 정계은퇴 묻자 “허허, 지켜봅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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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13일 오후 5시50분. 총선 투표 마감 시간 10분 전 서울 홍은동 문재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자택에 켜져 있던 불이 꺼졌다. 10분 뒤 출구조사 결과가 나왔다. 새누리당의 과반 의석을 저지하고 더민주가 선전할 거란 예측이었지만 문 전 대표 자택에선 아무런 소리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수도권 이겼지만 깊어진 고민
부산·경남 김경수 등 약진 소식에
가족 “샴페인 마시자” 말했지만
문 전 대표는 전혀 반응 없어
김종인은 “문, 집에 갈일 없어져”

이번 총선에 정치생명을 건 문 전 대표로선 더민주가 선전했다는 선거 결과만으론 웃지 못할 상황이었다.

문 전 대표는 출구조사 발표 직후 기자와의 통화에서 “아직 더 지켜봐야죠”라고 말했다. 완전히 잠긴 목소리였다. 출구조사에서 나온 긍정적 결과에 대해서도 반기는 내색이 없었다. 호남에서의 민심 이반이 확인됐다는 예측이 나왔기 때문이다. 문 전 대표는 지난 8일 광주광역시 충장로에서 “호남이 저에 대한 지지를 거두면 정치일선에서 물러나겠다”고 선언했다. 기자가 ‘정말 정계 은퇴를 할 거냐’고 물었더니 “허허…. 지켜봅시다”라고만 답했다.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자택 분위기는 밝아졌다고 측근은 전했다. 부산·경남에서 문 전 대표와 노무현 정부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더민주 후보들(김경수·전재수·최인호 후보 등)이 약진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다. 가족 중 한 명이 “샴페인 마셔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지만 문 전 대표는 반응이 없었다고 측근이 전했다. 10시30분이 넘어서는 박근혜 정부 청와대 비서관 출신으로 문 전 대표가 영입한 조응천(남양주갑) 후보가 전화로 당선 소식을 알렸다고 한다. 문 전 대표는 “정말 축하드린다. 좋은 소식 알려 감사하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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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왼쪽)와 이종걸 원내대표가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 마련된 당 선거상황실에서 당선자 이름에 스티커를 붙이고 있다. 김 대표는 이날 “서울과 수도권의 선거 결과 새누리당 정권의 경제 정책이 잘못됐다는 것을 국민이 표로 심판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진 조문규 기자]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새누리당의 과반 저지 등의 목표를 달성했으니) 문 전 대표가 집에 갈 일(정계 은퇴)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문 전 대표의 정치적 부담을 덜어주는 발언이다.

다만 김 대표는 “호남에 대해서는 문 전 대표가 상당히 고민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당 개표상황실을 떠날 때 기자들이 ‘문 전 대표가 광주에 간 게 호남 선거에 영향을 줬느냐’고 묻자 “영향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광주 유권자의 마음이 완전히 돌아서 그걸 돌리려면 한참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답했다.

문 전 대표는 현재 대선 지지율 1위다. 12일 리서치뷰의 여론조사에서 문 전 대표는 26.7%를 기록했다. 2위 오세훈 전 서울시장(18.1%)을 8.6%포인트나 앞섰다. 전문가들도 문 전 대표의 거취와 무관하게 호남을 차기 대선 가도에서의 변수로 꼽았다. 한국외대 이정희(정치학) 교수는 “열세가 확인된 ‘호남 정서’를 문 전 대표가 어떻게 해소하느냐가 향후 그의 진로에 있어 관건”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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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조사 전문가인 정한울 고려대 연구교수는 “문 전 대표의 ‘논공행상’을 놓고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다”며 “정당지지율에서 국민의당에 따라잡힌 것도 부담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총선은 끝났지만 그로선 호남의 ‘재신임’을 확인해야 할 상황이다. ‘호남’이 다시 문 전 대표의 숙제로 남았다.

글=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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