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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고민 없어 보인다고요? 낯빛적선 덕분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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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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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가장 어울리는 소품을 든 김의찬·정진영 부부와 딸 유빈(왼쪽부터). 이들은 “고민해도 답이 없을 때도 웃고 나면 새 길이 보인다”고 말한다. [사진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부부란 크랙(틈)이 500개쯤 있어도 이걸 메울 수 있는 접착제 하나로 유지되는 사이 아닐까요. 우리 부부의 접착제는 바로 ‘웃음’이죠.”

결혼생활 ‘토크 배틀’과 딸 삽화 엮어
『웬만해선 이 부부를 막을 수 없다』 낸
시트콤 작가 김의찬·정진영 가족

“부부 사이 크랙이 500개 있어도
웃음이란 접착제로 메울 수 있죠”

시트콤 ‘순풍 산부인과’‘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등을 함께 집필한 작가 김의찬(42)·정진영(45) 부부가 실제 결혼 생활을 ‘토크 배틀’ 형식으로 풀어낸 책을 냈다. 딸 유빈(14)이가 삽화를 그린 『웬만해선 이 부부를 막을 수 없다』(한스미디어)다.

12일 서울 광화문 집에서 만난 이들은 둘 사이의 무수한 틈을 이야기했다. 남편은 쓰레기를 버리러 나갈 때도 ‘테니스 치러가는 황태자’ 차림을 하지만, 아내는 ‘내가 편하면 그뿐’이다. 남편은 장마철엔 소파 가죽이 늘어난다며 바닥에 앉을 정도로 물건을 아끼지만, 아내 손에 닿는 물건들은 깨지기 일쑤다. 남편은 콜라의 단맛을 좋아하고, 아내는 커피의 쓴맛이 좋다. 이렇듯 취향과 습관은 제각각이지만, 웃음이란 강력 접착제가 두 사람을 단단하게 붙여놓는다.

“아이 친구들과 노래방에 간 날이었어요. 스케줄은 꼬이고 길은 막히고, 짜증나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노래방에서 나오며 보니 신발이 없더라고요. 정 작가가 장난을 친 거예요. 직원 슬리퍼 사이에 신발을 숨겨두고 깔깔대고 있는 모습을 보니 나도 웃음이 터졌고, 금세 힐링이 됐죠.”(김)

이들은 소소한 일상에서 웃음을 만들어간다. 크리스마스 선물로 형광 분홍색 꽃바지를 사주고, 여름이면 매미 허물을 모아 사람들을 놀라게 하는 데 사용하는 식이다. 정 작가는 “남편이 얄미웠다가도 실없는 농담을 듣고 막 웃다 보면 마음이 풀린다”고 했다.

두 사람이 제일 좋아하는 말은 ‘낯빛적선’이다. 옆 사람에게 웃는 얼굴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행복 바이러스를 퍼뜨린다고 믿는다. 정 작가는 “그런 의미에서 우리 가족은 성공했다”고 했다. “주변에서 우리는 아무 고민이 없어 보인다고 하더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들의 생활이 줄곧 ‘꽃방석’이었던 건 아니다. 1995년 SBS 코미디 공채 작가 동기로 만나 2002년 결혼한 두 사람은 국내 1세대 시트콤의 인기를 이끌었다. 하지만 2009년 드라마 ‘그저 바라보다가’ 이후 6년 넘게 방송 공백기를 가졌다. 진행 중이던 드라마·시트콤 등이 중간에 무산되고, 믿었던 영화사에 배신도 당했다.

“두 사람의 지구가 멈춰버린 듯”(정)했고, “땅 속으로 꺼져 들어가 완전히 파묻힌 느낌”(김)이었다. 이때도 웃음이 이들을 구해냈다. 여수에서 올라온 정 작가의 사촌동생이 여자친구와 놀이공원에 간다는 소식을 접한 날이었다. 온 가족이 무작정 놀이공원으로 달려갔다. 공원을 샅샅이 뒤져 커플을 찾아냈고 파파라치처럼 몰래 따라다니며 데이트 현장을 훔쳐보고 사진을 찍었다.

이들은 “한바탕 흐드러지게 웃고 나자 모든 우울이 날아갔고, 다시 일어날 힘을 얻게 됐다”며 “웃음의 가치를 더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글=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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