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 청류관엔 평양 ‘장철구대학’ 여대생 인턴 근무

중앙일보

입력 2016.04.12 04:30

업데이트 2016.04.12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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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베이징(北京) 차오양(朝陽)구의 북한 식당 대성상관에 취재와 식사를 겸해 들른 건 지난 7일 오후 9시쯤이었다. 당시엔 몰랐지만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의 류경식당 종업원 13명이 한꺼번에 탈출해 한국에 도착한 바로 그날이었다. “한국인 손님이 끊겼다는데 영업에 지장이 없느냐”고 물을 참이었는데 종업원이 먼저 선수를 쳤다. “보시다시피 우리 가게는 아무 이상 없습니다.” 중국인과 한국인 손님이 그럭저럭 식당 좌석을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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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북한 식당들은 북한 종업원을 고용해 공연을 보여주면서 음식을 팔아 돈벌이를 한다. 사진은 2012년 베이징 주중 북한대사관 근처 식당의 북한 여성 종업원들이 단체사진을 찍는 장면. [사진 비주얼차이나], [닝보=신경진 특파원]

기타를 메고 이어셋 마이크를 낀 여성 종업원 2명이 객석을 돌며 공연을 시작했다. 전통민요나 ‘휘파람’ 같은 북한 대중가요를 예상했던 일행에게 그들은 놀라운 레퍼토리를 선보였다. ‘꿈꾸는 백마강’ ‘목포의 눈물’ 등 ‘뽕짝’이라 불리는 옛 가요 7∼8곡을 악보 한 번 보지 않고 잇따라 노래했다. “이런 노래를 불러도 되느냐”고 묻자 “해방(1945년) 전 노래들은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노래여서 아무 문제없다”고 답했다. 때로는 구성지게, 때로는 흥겹게 자유자재로 연주하고 노래하는 실력도 놀라울 정도였다. 한 단골 고객은 “예전에는 못 듣던 노래들”이라며 “어려움 속에서도 손님을 끌기 위해 새 레퍼토리를 개발하는 등 노력을 엄청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관광분야 전공자는 의무적으로
길게는 2년씩 해외 실습 나가

류경식당 종업원들 한국 도착한 날
베이징선 “우린 이상 없습니다”

식당 대부분은 중국회사와 합작
종업원 월급 1500위안 … 헌금 강요

#“장철구대학을 아십니까.” 언젠가 상하이(上海)에 있는 북한 식당 청류관에 들렀을 때 앳되어 보이는 종업원이 한 질문이었다. 이곳은 한때 상하이에 들르는 한국인 단체관광객의 필수 코스였다. 상하이 시내에서 훙차오(虹橋) 공항으로 가는 길목에 있어 위치가 편리하기도 했지만 인기를 모은 건 종업원들이 친절하고 한국 손님들과의 대화에도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이곳 종업원들은 “장철구 상업대학에서 관광 분야를 전공하는데 의무적으로 해외에 나와 길게는 2년씩 실습을 한다”고 말했다. 여대생을 인턴사원으로 내세운 영업전략인 셈이다.

장철구대학은 일제시대 김일성의 항일빨치산 투쟁 당시 식사를 담당했던 ‘작식(作食) 대원’ 장철구를 기념해 세운 상업 분야 명문 대학으로 꼽힌다. “부모님께 전화는 자주 드리느냐”는 질문에 “휴대전화가 없어 전화는 못하고 대신 편지를 쓰면 된다”고 했다. 그들은 테이블마다 한 명씩 배치돼 서빙을 하면서 “술 한 병씩 사서 남쪽에 가져가면 좋은 기념품이 된다”고 권했다. 식당을 나서는 손님들 손에는 대부분 들쭉술 한 병씩이 들려 있었다. 결제는 한국 돈도 받았다.

우리 당국이 파악한 결과 중국 전역에는 100여 곳의 북한 식당이 영업 중이다. 이처럼 많은 식당이 생겨난 건 북한의 당·군·정부기관들이 외화벌이 수단으로 제각기 식당을 개설했기 때문이다. 베이징 안에 있는 식당 15곳도 서로 소속기관이 다르다. 그래서인지 영업 형태도 북한 음식을 팔고 여성 종업원들이 음식 서빙 외에 공연을 선보인다는 점은 같지만 세부적으로 들여다보면 다양하다.

식당들은 어떤 고객을 타깃으로 삼느냐에 따라 크게 세 갈래로 나뉜다. ▶관광지나 대도시에서 한국인 단체관광객을 주 고객으로 하는 식당 ▶시내 에서 중국인을 주 고객으로 하는 식당 ▶한국인 밀집 주거 지역에서 한국 교민을 상대로 하는 식당 등이다. 이 가운데 한국인 관광객이나 교민 상대 식당은 최근 정부의 출입 자제 권고에 따라 영업에 큰 타격을 받았다. 주중 한국대사관 관계자는 “최근에는 재중 조선족 동포들까지 출입을 꺼리는 경향이 뚜렷해졌다”고 말했다. 상하이의 ‘평양설경’과 광둥(廣東)성 포산(佛山)의 식당 등은 이 와중에도 새로 문을 연 경우다. 한 대북 소식통은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 북한 식당 수가 더 늘었다”며 “중국 측과 이미 체결한 영업 계약에 따라 새로이 개업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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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북한 식당 종업원 13명이 집단 귀순한 중국 저장성 닝보시 류경식당. [사진 비주얼차이나], [닝보=신경진 특파원]

중국인을 주 고객으로 삼는 식당은 가격이 비싼 편이다. 베이징 중심부에 있는 식당 ‘해당화’에서 맥주와 소주를 달라고 주문했더니 “없다”는 대답과 함께 “이왕이면 몸에 좋은 산삼주나 녹용주를 드시죠”라고 권했다. 가격은 수천 위안(수십만원)대였다. 이런 식당들은 중국인 비즈니스맨이나 부유층의 접대 장소로 활용돼 왔지만 최근엔 반부패 단속의 영향으로 손님이 줄었다.

북한 직영인 선양(瀋陽) ‘평양관’을 제외한 식당들은 거의 전부가 중국 측과 합작이다. 베이징의 모 식당은 중국 측 회사가 수익의 30%를 가져간다. 대신 일상적인 경영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는다. 월급은 지배인이 5000위안(약 90만원)이고 종업원들은 1500위안 정도다. 이 월급도 현찰로 지급하는 게 아니라 대부분 적립했다가 귀국할 때 한꺼번에 찾는 방식이다. 식당 내부 사정을 잘 안다는 단골 고객은 “최근 7차 노동당 대회를 앞두고 헌금을 강요받는 바람에 모아 둔 월급마저도 사라질 판이 됐다는 종업원의 말을 들었다”고 했다.

베이징=예영준 특파원 yyju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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