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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대 남성 지배인, 집단 귀순 핵심 역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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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북한의 해외 식당 종사자 13명이 한꺼번에 귀순하는 과정에는 30대 남성 지배인이 핵심 역할을 했다고 정보 당국에서 일한 북한 전문가가 말했다. 익명을 원한 이 전문가는 10일 “해외에 나와 있는 북한 식당 종업원들의 여권은 지배인이 전부 받아 관리한다”며 “이번 귀순자들의 경우 지배인이 여성 종업원 12명을 설득해 탈북을 주도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는 “해외 식당에는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에서 심어둔 밀고자가 있고 종업원 상호 감시도 철저하기 때문에 집단 탈북이 있기 전까지는 치밀한 사전 준비 과정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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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부에 따르면 이번에 귀순한 13명은 남성 지배인 1명과 여성 종사자 12명이다. 여성 12명 중 1명만 30대일 뿐 나머지는 22~25세였다. 이들 13명은 당초 중국 지린(吉林)성의 북한 식당에서 일하다가 장사가 잘되지 않아 지난해 12월 저장(浙江)성 닝보(寧波)에 있는 류경식당으로 옮겼다고 한다. 하지만 이 식당도 올 1월 4차 핵실험 이후 강화된 대북제재로 한국 손님들의 발길이 끊기면서 영업난을 겪었다고 정부 당국자는 말했다. 특히 이들은 지난 5일 식당을 몰래 빠져나와 동남아 제3국으로 이동한 뒤 지난 7일 입국했다. 한 북한 소식통은 “제3국 공항 현지에서 상당한 물밑 협조가 있었기에 식당에서 탈출한 뒤 귀국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될 수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13명 한꺼번에 귀순 어떻게
지배인이 북 종업원 여권 관리
충성자금 상납 압박에 결심한 듯

이들이 탈북을 결심한 건 이른바 ‘충성자금’에 압박을 겪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관계 당국에 따르면 해외 식당 종사자들은 엄격한 선발 과정을 거칠 정도로 출신 성분이 좋다. 남한에 귀순할 경우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들에 대한 보복 등 후환도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출을 결심한 건 그만큼 압박이 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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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연구원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외화벌이 목적으로 영업 중인 북한의 해외 식당은 매년 평균 30만 달러(약 3억4000만원) 이상을 북한 당국에 보내줘야 하는데 36년 만의 5월 노동자 대회를 앞두고 ‘특별 충성자금’ 상납 압박이 가중된 상태”라며 “그런 상황에서 대북제재로 경영난까지 심화되자 ‘송금 부족’에 따른 문책의 두려움이 컸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조 연구위원은 “종업원들이 남한 측과 접촉하면서 해선 안 될 말을 했다든지 금지된 한국 TV 등을 시청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통일부 당국자에 따르면 한 여성 종업원은 귀순 이후 “한국 TV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한국 국민으로 살고 싶다는 열망을 갖게 됐다”고 진술했다.

김형구 기자 kim.hyoungg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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