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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후예'에 답이 있다

중앙일보

입력 2016.04.07 16:02

업데이트 2016.04.08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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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기세가 놀랍다. 정치혼란과 경기부진 틈바구니 속에서 시청자의 눈과 귀를 끌어들이고 있다. ‘해를 품은 달’ 이후 4년 만에 전국 시청률 30%를 돌파했다. 가상 국가 우르크에서 펼쳐지는 특전사 장교 송중기와 여의사 송혜교 커플의 판타지 로맨스가 안방을 달구고 있다. 연초 선풍적 인기를 끌었던 ‘응답하라 1988’의 최고 시청률도 20%를 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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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태양의 후예`의 장면들.

 ‘태양의 후예’는 중국에서도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6일 중국 최대 동영상 플랫폼인 ‘아이치이’ 누적 조회수가 20억 회를 넘어섰다. 현재 추세라면 역대 한국 드라마 최고 조회수를 기록했던 ‘별에서 온 그대’(2014)의 37억 회를 추월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에 이어 사이 한국 드라마의 주요 타깃으로 떠오른 중국 시장의 문을 넓혀주었다. 제2의 ‘태양의 후예’에 대한 기대감도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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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양의 후예’는 우리 드라마 제작관행에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최근 주춤했던 ‘한류’에 새로운 자극이 되고 있다. 가장 주목되는 대목은 100% 사전제작이다. 한국 드라마의 고질병으로 꼽혔던 ‘쪽대본’이 사라졌다. 치밀한 구성과 완성도 높은 촬영을 거쳐 블록버스터급 드라마를 빚어냈다. 한국 드라마의 경쟁력은 ‘쪽대본’에 의한 순발력, 즉 시청자의 반응을 즉각 반영한다는 기존의 성공 방정식을 뒤집었다.

중국과의 ‘동시 방영’도 처음 시도했다. 일반 TV가 아닌 동영상 플랫폼을 통한 공개이긴 하지만 모바일로 대변되는 요즘 미디어 소비양태를 적극 활용했다. 실제로 ‘아이치이’ 관람 형태를 보면 스마트폰과 PC의 점유율이 76% 대 24%로 집계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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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동영상 사이트인 `아이치이`에 올라온 드라마 `태양의 후예`.

중국 당국이 지난해 1월부터 TV드라마에만 적용했던 사전심의제를 인터넷으로 확대한 것에 따른 대응책이었다. 중국의 정책변화에 따른 궁여지책이란 시각도 있지만 ‘위기를 기회’로 돌린 제작진의 판단이 주효했다. 한류 콘텐트의 ‘유통 시차’를 없애 중국의 콘텐트 불법 복제에 대비했다.

결정적인 성공 요인은 역시 콘텐트다. 재난현장에서 활약하는 의사들의 얘기를 다룬 김원석 작가의 원안에 스타작가 김은숙이 달콤한 로맨스를 첨부시켰다. 전작 ‘상속자들’ ‘시크릿 가든’ ‘프라하의 연인’ 등을 히트시켰던 김 작가는 세대·지역의 간극을 뛰어넘는 남녀간 사랑에 집중했다. 가장 대중적인 장르인 드라마의 흥행 코드에 충실했다.

원안부터 대본 손질을 거쳐 방영까지 걸린 시간은 5년, 드라마 작가의 모범적 이종교배를 제시했다. 처음부터 중국 시장을 노린 선택이었다. 첫 회 방영 전에 해외판권·방영권·PPL(Product Placement·간접광고)로 130억원이란 막대한 제작비를 걷어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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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후예`를 쓴 김은숙 작가. 김 작가는 `시크릿가든` `상속자들` `프라하의 연인` 등을 히트시킨 로맨스의 대가다.

‘태양의 후예’ 성공은 적잖은 숙제도 남겼다. 드라마 한 편의 성공에 샴페인을 터뜨리기에는 상황이 녹록하지 않다. 거세지는 ‘차이나 머니’ 공세 앞에서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할 시점이다. 최근 2년 사이 알리바바·SG인베스스먼트·쑤닝유니버설미디어 등 중국 거대기업이 한국의 SM엔터테인먼트·씨그널엔터테인먼트·에프터엔터테인먼트 등에 수백억원씩 투자하며 한국 대중문화 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우리의 콘텐트 기획력을 확보하려는 중국 측의 포석이다. ‘태양의 후예’를 제작한 영화사(NEW)도 지난해 중국 드라마 제작 1위 기업인 화처미디어와 합작회사를 설립했다.

외자 유치야 환영할 일이지만 자칫 그 돈이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중국 소비자의 입맛에 맞추려다가 콘텐트의 질이 떨어뜨리는 누를 범할 수 있다. ‘판관 포청천’ ‘꽃보다 남자’ 등으로 아시아 드라마를 이끌었지만 중국 시장만을 의식하다가 결국 자국 대중문화 고사 위기를 자초한 대만의 전철을 밟아선 곤란하다. 중국 자본을 활용하되 세계에 통하는 ‘킬러 콘텐트’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틀을 다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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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방송 드라마로 시청률 18%를 돌파한 `응답하라 1988`.

핵심은 역시 콘텐트다. 이야기의 힘이다. 드라마로 따지면 대본이다. 할리우드 영화나 미국 드라마(미드)가 영향력을 유지하는 것도 인간의 보편적 감성을 건드리는 스토리 때문이다. 면밀한 조사를 거친 공동창작의 힘을 보여준다. 소수가 즐기는 고급예술이 아닌 다수가 공감하는 대중문화의 숙명이다.

한국에서도 ‘응답하라’ 시리즈가 좋은 전례를 남겼다. 드라마의 기초인 작가 양성과 협업체제 구축에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것만이 각기 취향이 다른 시대, 불특정 문화소비자를 한데 모으는 지름길이자 한류 열기를 이어가는 방책이다. 제2의 ‘태양의 후예’는 절로 찾아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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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문난 집에 먹을 게 많다. ‘태양의 후예’는 크게 남는 장사를 하고 있다. 중국 동영상 플랫폼 아이치이에 국내 드라마 중 최고가인 회당 25만 달러(약 3억원)에 판매했다. 총 16회 방영이니 전체 판권은 48억원에 달한다. 계약 조건은 공개되지 않았지만 누적 조회수에 따라 향후 추가 매출이 발생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말 1000만 명 이었던 아이치이의 유료회원은 현재 1500만 명으로 급증한 상태다. 제작자 측은 중국 내 위성TV에 부가 판권 판매도 추진 중이다.

 ‘태양의 후예’ 인기는 지구촌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현재 영국·프랑스·이탈리아·일본·독일 등 32개국에 작품이 팔렸다. 드라마에 삽입된 OST도 인기다. 지난달 24일 나온 첫 앨범은 2만 장 넘게 나갔고, 이달 중순 두 번째 앨범이 나올 예정이다. OST 수입만 30억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PPL 매출도 35억원에 달했다. VOD(주문형 비디오 서비스)·IPTV(인터넷TV)·케이블 채널 등에서도 추가 수익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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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애·송승헌 주연의 ‘`사임당, 더 허스토리`도 중국 수출을 염두해 두고 사전제작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방송계에선 중국의 인터넷 사전심의제가 한국 드라마에 미칠 영향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태양의 후예’를 잇는 다른 기대작들도 중국 수출을 염두에 두고 사전제작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이영애·송승헌 주연의 ‘사임당, 더 허스토리’, 이준기·아이유 주연의 ‘보보경심:려’, 박서준·박형식·고아라가 나오는 ‘화랑: 더 비기닝’ 등이다

 드라마 수출 수익을 중국과 함께 나누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도 힘을 얻고 있다. 한번 팔고 끝나는 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콘텐트를 중국에 트는 플랫폼 구축도 서둘러야 한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버는 일이 반복돼선 곤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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