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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범' 사위 오바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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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병건 기자 중앙일보 콘텐트제작Chief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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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병건
워싱턴 특파원

장모를 모시고 살면서 가족 휴가나 해외여행 때 동행까지 한다면 모범 사위임에 틀림없다. 한국에서도 쉽게 찾기 힘든 이런 1등 사위가 미국에 있다. 바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다.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달 20일부터 2박3일간 쿠바를 공식 방문했을 때 부인 미셸 여사와 두 딸뿐 아니라 장모인 메리언 로빈슨(79)도 함께 갔다. 방문 첫날 오바마는 가족과 함께 아바나의 유명 관광지인 구시가지를 돌아봤다. 이를 찍은 사진이 미국과 쿠바의 관계 정상화를 보여주는 상징으로서 전 세계에 타전됐다. 여기엔 미셸 여사와 손을 잡은 채 함께 걷는 로빈슨의 모습도 등장했다. 로빈슨은 오바마가 쿠바 일정을 마친 뒤 아르헨티나로 넘어갈 때도 동행했다.

오바마 대통령의 가족 여행에 로빈슨이 같이한 것은 이번만이 아니다. 2014년 12월 오바마 가족이 하와이에서 겨울 휴가를 보낼 때도 로빈슨이 함께했다. 로빈슨은 2009년 오바마 가족이 백악관에 입성했을 때 함께 들어와 계속 같이 살고 있다. 백악관 2층을 오바마 부부가, 3층을 로빈슨이 쓴다. 로빈슨은 원래 시카고에서 살았는데 손녀들을 챙겨 달라는 딸 부부의 부탁에 따라 백악관에 들어왔다. 실제로 손녀인 샤사·말리아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다시 데리고 오는 일을 로빈슨이 도맡았다고 미국 언론들은 전했다. 권투선수 생활도 했던 로빈슨의 남편은 시카고 수도시설의 보일러를 관리해 오다 1991년 세상을 떠났다. 백악관으로 장모를 모신 대통령은 드와이트 아이젠하워(53∼60년) 이후 오바마가 처음이다.

워싱턴포스트 등에 따르면 로빈슨은 외부 노출을 극도로 피하는 ‘그림자 1호 장모’다. 백악관 근무자들 사이에선 ‘미시즈 R’로 불리는 로빈슨은 사위가 재선에 도전했던 2012년 잡지에 글을 낸 것 외에는 자신을 드러낸 적이 거의 없다. 이번 쿠바 방문 때도 로빈슨은 사진에서나 등장했을 뿐 발언과 동선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단 2012년 기고에서 로빈슨은 “내가 받은 가장 큰 축복 중 하나는 손녀들이 내 눈 앞에서 자라는 것”이라고 밝혔으니 한국 할머니의 모습과도 비슷하게 느껴진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잡지 GQ 인터뷰에서 “아내와 데이트를 할 때 전화가 올 경우 내가 받는 사람은 두 딸과 장모, 수전 라이스 국가안보보좌관, 데니스 맥도너 백악관 비서실장”이라고 밝혔다. 딸인 미셸 여사도 어머니를 끔찍이 아끼는 것 같다. 2014년 3월 미셸 여사가 중국을 방문했을 때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에게 “해외에 나가 본 적이 없는 어머니가 옛 도시를 거닐며 놀라움을 느끼는 모습을 소중하게 간직하겠다”며 중국 측의 환대에 감사했다. 당시 맥스 보커스 주중 미국대사는 “미셸 여사는 어머니에게 정말 헌신적”이라고 밝혔다. 이 정도면 오바마 부부는 자칫 전 세계의 ‘기준 미달’ 딸·사위 부부의 공적이 될 수도 있겠다.

채병건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