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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문제는 타이밍…샤프의 몰락이 준 교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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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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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이사

일본 전자산업의 대표 주자 중 하나였던 샤프(Sharp)사의 매각은 회사 이름처럼 일본 국민들에게 아주 ‘날카로운’ 상실감을 안겨줬다. 지금은 보통명사가 된 샤프(자동연필)를 개발해 인기를 얻자 아예 사명을 샤프로 바꾼 그 회사는 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일본인이 가장 친근하게 느끼는 기업 중 하나였다. 요즘 소비자들은 카메라가 없는 핸드폰은 상상도 못할 것이다. 카메라가 장착된 핸드폰을 2000년에 세상에 처음 내 놓은 회사도 바로 샤프다. 그런 회사가 대만기업에 팔린 것이다.

1970년대 초반부터 30여년 간 전세계 전자제품 시장은 일본기업들의 앞마당이었다. 샤프를 비롯해 소니·파나소닉·내셔널·JVC·산요·카시오·파이오니어·아이와 등 수많은 기업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혁신적이고 신기한 신제품을 시장에 내놓았다.

완제품만 세계시장을 호령했던 것이 아니다. 87년 세계 10대 반도체 기업들 중에서 자그마치 5개가 일본 기업이었다. 그것도 1,2,3위를 나란히 일본기업이 차지하고 있었다. 작년 시장 통계에 따르면 도시바 하나만 겨우 7위에 남아 있고 그나마 지속적으로 시장 점유율이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도대체 왜 일본 전자산업이 이렇게 몰락해 가고 있는 것일까.

다양한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종합해 보면 결국 ‘때’를 놓친 것이다. 90년대 초까지 누적된 공급과잉을 해소할 때를 놓쳤고, 90년대 말에 시작된 디지털로 전환할 때를 놓쳤고, 현존하는 개인용 전자제품의 기능을 모두 합쳐 버린 스마트폰에 대응할 때도 놓쳤다. 급기야, 기술우월주의에 도취돼 출시되는 제품마다 열광하며 구매를 해 주던 일본 내수시장 소비자들과의 결별하고 급변해 가는 세계시장을 다시 공략해야 할 때도 놓쳐 버린 것이다.

그래도 일본은 한줄기 희망이 있다. 일본전자산업을 뿌리에서부터 단단하게 떠받쳐 왔던 부품·소재·생산기기 관련 기업들은 여전히 건재하다는 점이다.

일반 소비자들에게는 생소한 기업들이지만 키엔스·무라타제작소·파낙·덴소·TDK·교세라 등의 기업들은 몰락해 가는 일본 전자산업과는 달리 탄탄한 성장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 기업들이 멈추면 세계 최대의 전자제품 공장인 팍스콘도 멈추고, 심지어는 삼성전자도 새로운 스마트폰 케이스를 제작하기 힘들어진다.

일본산업의 성장, 특히 전자산업 성장의 궤적을 유사하게 따라온 한국의 전자산업은 지난 10여년간 일본이 내어 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등 후발주자들의 공세로 인해 그 자리에서 결코 길게 버티지 못할 것이라는 걱정이 앞서는 것도 사실이다. 그 걱정을 이겨내려면 우리의 대기업들은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하고, 또 산업 전반에 걸쳐 뿌리산업도 튼튼하게 꾸려야 한다.

기업의 규모가 커지면 ‘때’를 알아차리고 신속하게 혁신을 해나가던 유전자는 변형하거나 없어지게 마련이다. 일본전자산업이 ‘때’를 놓치고 몰락해 갔던 잘못을 한국이 똑같이 범하지 않기 위해 스타트업의 정신으로 재무장하여 다시 도전해 나가려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대기업들을 응원한다. 뿌리 산업의 근간인 중소벤처기업들이 만든 부품이나 소재를 질과 무관하게 ‘국산’이기 때문에 무조건 사주는 대기업은 없다. 대기업들도 세계 시장에서 경쟁을 하고 생존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국내 대기업의 납품단가 후려치기, 비상식적인 공급선 바꾸기 등의 횡포에 가슴앓이를 해 왔다면 지금이라도 이를 악물고 글로벌시장에서 경쟁하기 위한 실력을 갖추기 바란다. 일본의 파낙이나 무라타제작소의 기술력을 부러워하고만 있지 말고.

지난 십 수년간 부품과 장비 국산화를 위해 정부도 기업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다. 결실도 있고, 또 실패도 있다. 이제는 그 공과를 떠나서 ‘국산화’라는 말 자체를 폐기하자. 국산화라는 말은 스스로를 작게 만드는 폐쇄적이고 국수적인 표현이다. 차라리 부품 세계화, 장비 세계화로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샤프의 매각으로 인한 날카로운 상실감을 우리 국민들이 겪지 않으려면 대기업도 중소벤처도 함께 성장을 해 나가야 한다.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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