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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이 만난 사람] “아동학대 대물림돼 아이를 사랑하는 방법 배워야 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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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아이들 눈빛을 잊을 수가 없어서 그만둘 수 없어요. 그 아이들이 저에게 도와달라고 부르짖고 있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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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순영 판사는 면접한 이혼가정 아이들의 눈빛이 도와 달라고 부르짖고 있는 것 같아 결혼 전 부모교육 의무화에 나서게 됐다고 말했다. [사진 오종택 기자]

신순영(37) 서울가정법원 판사의 눈빛도 간절했다. 그는 대법원 산하 부모교육연구회 간사다. 법원은 사건이 터진 뒤 사후 처벌이 주업이다. 하지만 가사재판을 하다 생각이 달라졌다.

‘판사는 판결로만 말한다’는 말이 있어요. 그런데 다른 문제는 그 말이 맞지만 적어도 가정과 아동에 관한 문제는 그렇지 않다는 걸 느꼈어요. 가정과 아이 인생에 가장 깊숙이 들어가는 건 가정법원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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겉으로 보기에 아무렇지 않아도 부모의 갈등을 겪은 아이는 치명적인 상처를 안고 살아가게 된다. 부모교육연구회가 만든 팸플릿 ‘부모’의 삽화.

그래서 6년 전 판사 몇 명이 만든 것이 ‘부모교육연구회’다. 지금은 커져 회원이 300명 정도. 법관과 전문조사관이 각각 절반 정도다. 이혼 부모를 위한 동영상, 책자도 만들었다. 다문화가정을 위해 12개 국어로 제작했다. 하지만 가장 효과적인 것은 예방교육이다. 그래서 혼인신고 때 의무적으로 부모 교육을 받게 하는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개정운동을 벌이고 있다. 지난해 나경원·신의진 의원 도움으로 국회에서 토론회도 열었다. 부모교육연구회 회장을 맡고 있는 같은 재판부 정승원(52) 부장판사는 “사실상 신 판사가 주도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결혼 전 부모교육’ 의무화운동 벌이는 신순영 판사

 2015년 아동 학대로 판정된 사건은 1만1709건. 2010년과 비교해 2.1배 늘었다. 2014년 시행된 아동학대범죄처벌특별법 영향이 크다. 그럼에도 이어지는 학대 사건들을 보면 부모가 될 준비가 전혀 안 된 사람이 너무 많다. 더구나 형사사건이 되지 않은 아동보호 사건, 또 드러나지 않고 감춰진 학대까지 고려하면 고통 받는 어린이 숫자를 짐작하기도 어렵다.

신 판사도 최근 부모 학대로 숨진 신원영(7)군과 비슷한 또래인 3살, 5살 두 아이를 둔 어머니다. 이혼재판이 그에게 짐을 안겼다.

“가사재판을 하면서 (이혼 부모의) 아이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얘기해 보면 모두 너무 소중하고 유리 같은 아이들이더라고요. 그런데 그 아이들 마음에 엄청난 어둠이 있어서 눈물을 안 흘릴래야 안 흘릴 수가 없어요.”

어둠의 원인은 뭡니까.
“처음에는 아이들이 너무 밝아서 놀랐어요. 그런데 톡 건드리는 순간 그 밝았던 얼굴에 어둠이 확 밀려들더라고요. 그때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이렇게 아이들 마음에 너무 상처가 깊구나….”
어떤 아이를 만나셨길래….
“가장 충격을 받았던 것은 아주 밝은 5살 여자애였어요. 굉장히 똑똑하고, 야무지고, 자기 의사표현도 잘하는 아이였는데 가족 인형을 가지고 놀게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엄마 인형을 들고 ‘죽어라, 죽어라’ 하면서 아빠 인형을 때리는 거예요. 가족 문제를 아이가 단적으로 드러낸 거죠. 아이들은 숨김이 없거든요.”
영화 ‘스포트라이트’를 보면 변호사 개러비디언이 ‘아이를 키우는 것도 마을 전체의 책임이고, 학대하는 것도 마을 전체의 책임’이라고 말해요. 아동 학대는 사회가 함께 나서야 하는데 아이들이 평소에 잘 드러내지 않으면 도와주는 것이 쉽지 않네요.
“신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그 아이가 정서적 학대를 받는지 이웃이 파악하기 어렵죠. 그럴수록 학교나 유치원 혹은 이웃들이 조금 더 관심을 가져 줘야 해요. 조금만 더 가까이 다가가면 마음이 보여요.”
체벌에 대해 처벌을 엄격히 해야 이웃이 개입하기 쉬워진다는 의견도 있어요.
“그러면 고발이나 신고가 많아지겠죠. 그런데 처벌이 능사는 아닙니다. 아동 학대를 하는 부모들은 대개 어렸을 때 사랑을 못 받은 분이거든요. 본인이 아동 학대 피해자였기 때문에 자기는 사랑을 받은 적 없는데 사랑을 퍼주라고 하는 게 사실은 무리일 수 있어요. 처벌이 능사는 아니고 끊임없는 관심과 교육과 사랑이 우선돼야 해요. 사랑하는 방법도 배워야 해요.”

신 판사는 법원 아동상담실에서 만난 은서(10·가명)의 예를 들어 폭력의 대물림 현상을 설명했다.

“은서가 그림을 그렸는데 아빠를 무시무시한 괴물처럼 표현했어요. 때리는 아빠였어요. 허리띠 같은 것도 들고 있고. 겉으로 봐서는 쓰레기라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이었죠. 그런데 상담을 해보니 이 사람도 어렸을 때 너무 큰 상처가 있었어요. 엄마는 아빠한테 맞아서 집을 나가고, 계모한테 학대받으면서 자란 사람이었어요. 본인도 공포 속에서 자랐기 때문에 아이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고, 자존감도 굉장히 낮고…. 그러다 보니 자기도 아이를 때리고, 아내를 때리고 그랬던 거예요.”

그런 경우 전통적인 밥상머리 교육에 기대할 수도 없고, 학교가 역할을 해야 하는데.
“그래서 교육이 필요하죠. 지금 중·고교 교과과정에선 의사소통 방법이라든가, 혼인 예비교육 같은 건 없어요. 이런 걸 인성교육에 포함시키든가, 별도 교과목으로 만들어 교육해야 하지 않나 싶어요. 외국에는 그런 교육을 하고 있거든요.”
이런 교육을 직접 받아본 적 있습니까.
“저도 결혼할 때는 받지 못했어요. 가사재판하면서 당사자들을 위한 교육에는 참여한 적이 있어요. 결혼 때 외적인 것만 준비하지 내적인 것을 준비하는 문화가 아니잖아요. 그래서 혼인신고 할 때 (혼인 예비교육을)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교육을 강제할 수 있나요.
“미국 대부분의 주는 지방 공무원으로부터 혼인자격증을 받아야 해요. 또 혜택을 주면서 교육을 받게 해요. 보통 4~12시간인데 우리는 1시간 정도 동영상을 시청하게 하는 정도가 좋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는 높은 신혼이혼 비율도 사전 교육으로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5년차 미만 신혼이혼이 많습니다. 5년차 정도가 딱 고비인 것 같더라고요. 이때 갈등은 50% 이상이 부모에게서 시작돼요. 본인들은 아직도 많이 사랑하고 조금만 상담해주면 잘 살 수 있는데 집안 문제 때문에 안 된다며 헤어지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원부모 문제도 심각하네요.
“이런 부부들을 보면 부모와 분리가 안 돼 있는 경우가 많아요. 법정에 남자 쪽 부모와 여자 쪽 부모가 따라오고, 본인이 결정 능력이 없어요. 이혼할지 말지, 재산 분배를 어떻게 할지도 본인이 결정을 못해요. 부모가 밖에 있으면 물어보고 오겠다며 나가기도 하고, 오늘은 결정 못한다며 집에 가서 물어보고 오겠다고 하는 경우도 많아요. 자식이 결혼하면 떠나보내야 하는데 떠나보내지 않고 계속 컨트롤하려고 하는 게 문제예요.”
주례사를 기억하는 사람이 거의 없어요. 그런데 혼전 교육이 효과가 있을까요.
“그렇죠. 그래서 재미있게 해야 해요. 최고의 전문가를 투입해 기억에 남게, 효과적이게 해야 해요. 지금은 영상시대니까 동영상으로 만들어서, 재미가 나면 각인이 되거든요. 또 소책자나 스마트폰 앱으로 만들어 나중에라도 갈등이 생기면 ‘아, 그때 그런 게 있었지’ 하고 찾아볼 수 있게 해야죠.”
이혼 부모 동영상을 만들었던데, 그건 효과가 있었나요.
“처음에는 법원 내에서도 부정적인 의견이 많았어요. 근데 막상 해보니까 결과가 생각보다 훨씬 좋았어요. 이걸 보고 이혼하지 않겠다고 돌아가는 부부도 봤어요. 눈물을 흘리는 경우도 많았고, 모든 부부가 의무적으로 보게 해야 한다는 말도 많이 들었습니다.”
성희롱 예방 교육처럼 평소에 교육받으면 좋을 텐데.
“의사소통 방법 교육은 혼인 직전에 해야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있어요. 결혼한 뒤 기억이 고착되면 개선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겁니다. 그래서 결혼 전 교육을 의무화하자는 것이죠. 자녀 양육 문제는 자녀가 없는 그 시점에 와 닿지 않을 수 있으니까 브로셔나 앱으로 나눠주는 방법도 있어요. 임신하면 주민센터에서 선물을 주는데, 그때나 출생신고 때 동영상을 보여줄 수도 있죠. 생애주기별 교육이 들어가야 해요.”
유치원이나 초등학교 입학 때 부모 교육을 할 수도 있겠네요.
“네, 자녀를 잘 키우겠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에 호응도 좋고 열의를 내시더라고요.”
아동학대 부르는 부부갈등 원인은 말 … 비난·경멸·담쌓기 삼가야

신순영 판사는 “말이 참 무섭다”고 말했다. 아동학대 뒤에는 부부 갈등이 있고, 부부 갈등의 원인은 대부분 ‘말’이라는 것이다.

통계청 조사로는 이혼 원인 중 가장 많은 게 ‘성격 차이’(44.6%)다. 그것은 대부분 말이 서로 상처 입힌 경우다. 비난·방어·경멸·담쌓기 대화 방식이다. 부모교육연구회가 구상하는 교육 내용의 핵심도 대화법이다.

“주말에 남편이 소파에 누워 있으면 흔히 아내가 화가 나서 ‘허구한 날 이렇게 누워 TV만 보느냐’고 쏘아붙이죠. 짜증이야 나겠지만 조금만 감정을 가라앉히고 ‘나는 당신이 주말에 청소를 해줬으면 좋겠어’ 하고 요청하면 대부분의 남자가 받아들이더라고요.”

부모의 대화법, 갈등은 부부 사이에만 그치지 않는다. 아들, 손자로 끝없이 대물림된다.

“10살 남자아이와 8살 여자아이를 둔 엄마, 아빠가 사업 실패 후 자주 다퉜어요. 엄마는 ‘당신 때문에 이렇게 됐잖아. 당신 하는 일이 다 그렇지 뭐’하고 비난하고 경멸했어요. 담쌓기를 하던 아빠는 ‘야, ⅹⅹ년아, 나쁜 년. 너는 집에서 얼마나 살림을 잘하는데’하며 욕을 하고 나갔어요. 속수무책으로 보고만 있던 아들은 동생에게 ‘야, 이 나쁜 ⅹⅹ야. 공부도 못하는 주제에’라고 아빠 말투를 따라 했어요. 엄마가 나무라니 아들이 ‘너 엄마새끼 때문에 아빠가 집을 나갔잖아’라고 하더래요.”

김진국 대기자 kim.jinkook@joongang.co.kr
정리 보조=김준영 수습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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