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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 통통, 기름기 좔좔 … 봄 멸치 구수한 향에 침이 꼴깍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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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앞바다에서 잡은 멸치는 곧바로 삶은 뒤 뭍의 건조시설로 옮겨진다. 통통하게 살이 오른 봄 멸치는 건조되기 전부터 고소한 냄새를 풍긴다.

이달의 맛 여행 <4월> 경남 통영 멸치

갯마을의 봄은 반 박자 더디게 온다. 파도가 잦아들고 바람이 눅어지는 음력 3월께라야 봄기운이 바다로 흘러드는 까닭이다. 봄 바다에 해산물 맛이 제대로 차오르면, 갯사람은 그제야 봄다운 봄이 왔다고 말한다. 지금 남해 바다의 봄을 알리는 생선은 멸치다. 멸치 떼가 연안으로 밀려들면서 남해의 갯마을도 덩달아 분주해졌다.
week&이 국내 멸치 산업의 중심지 경남 통영에서 멸치가 전하는 봄 바다 소식을 길어왔다.

멸치는 회유성 어종이다. 겨우내 먼 바다에 머물던 멸치는 계절이 바뀌면 알을 낳기 위해 제가 태어난 남해 앞바다로 돌아온다. 멸치는 올해도 어김없이 3월 중순부터 귀향길에 올랐다. 수온이 높아진 터라 요즘에는 서해에서도 제법 멸치가 잡힌다지만, 본디 따뜻한 바다를 좋아하는 멸치는 봄부터 가을까지 주로 남해에 머무른다. 부산 기장 대변항, 경남 남해 미조항 등 멸치잡이로 이름난 항구가 남쪽 바다에 들어선 이유다.

3월 중순 우리나라에서 멸치가 가장 많이 난다는 멸치 산업 중심지 경남 통영으로 향했다. 통영 서호동의 통영항에 정박한 멸치잡이 운반선 서너 대가 푸근한 봄바람을 타고 너울너울 움직였다. 63t급 송명호를 관리하고 있는 황진구(61)씨는 통영 앞바다에 나가 있는 본선에서 무전이 오자마자 봄 멸치를 실으러 나갈 것이라고 했다.

“예년 이맘때에는 멸치 운반선이 바다와 항구를 하루에 세 번 왕복할 만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어요. 올해는 수온이 낮아서 조업이 아직은 쉽지 않네요. 그래도 살이 통통하게 오르고 기름기가 자잘한 멸치가 그물에 걸리는 걸 보면 봄이 오긴 왔나 봐요.”

통영에서 멸치 조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어민만 손놀림이 바빠지는 게 아니다. 통영항 앞 서호시장, 강구안 앞 중앙시장 등 재래시장도 덩달아 활기를 띤다. 도다리며, 멍게며 제철 해산물이 가득한 통영 중앙시장 어물전에는 벌써 생멸치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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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중앙시장 어물전에 올라온 생멸치.

“메루치 보고 가소”라는 소리에 유심히 들여다 본 생멸치는 ‘생선’다운 인상이었다. 육수를 내거나 볶아 먹었던 마른 멸치보다 갑절은 컸고, 고등어처럼 등에 윤택한 푸른빛이 돌았다. 시장 상인은 재래시장에 나온 생멸치는 젓갈용으로 잡은 멸치 중 일부가 유통되는 것이라고 일러줬다.

“큼지막하니 고소한 생멸치는 봄에만 먹을 수 있지. 대가리만 뚝 뗀 건 조려 먹고, 살만 바른 건 초장에 무쳐 먹어. 뭍사람은 이 맛 몰라.”

중앙시장에 좌판을 벌인 할머니는 멸치 다루는 손을 쉬지 않고 말했다. 관광객에게는 일부러 뼈와 내장을 제거해서 판다. 멸치 특유의 쓴맛을 없애기 위해서다. 할머니는 20여 분간 다듬은 멸치 횟감 500g을 팔아 5000원을 손에 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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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를 바르고 껍질을 벗긴 생멸치에 초장을 버무린 멸치무침.

봄철 중앙시장 주변 식당가에서는 시장에서 생멸치에 떼다가 채소와 초장을 넣고 조물조물 버무린 멸치무침을 찬으로 내기도 한다. 생멸치 요리를 제대로 맛보고자 멸치 요리 전문점 ‘멸치마을’로 향했다. 멸치잡이 배 선원이었던 박성식(66) 사장이 15년 전에 차린 가게다. 식당의 손님 대다수는 멸치무침·멸치전·멸치밥이 줄줄이 나오는 멸치 정식을 주문한다. 생멸치가 나오는 봄철에는 겨울보다 손님이 갑절이란다.

박씨는 자신이 즐겨 먹었던 멸치 요리를 코스로 냈다. 건멸치를 밥에 섞은 멸치밥과 시래기를 넣고 뭉근하게 끓인 시락국은 박 사장이 어렸을 적 어머니가 만들어줬던 음식이다. 멸치회와 멸치무침은 박씨가 멸치 조업을 나갔던 시절에 뱃사람이 간식으로 즐겼던 메뉴다. 짭짤한 멸치밥과 시원한 시락국은 끝없이 먹히고, 달곰새금한 멸치무침은 씹지 않아도 입 안에서 녹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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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과 건멸치를 함께 쪄 낸 멸치밥.

통영은 우리나라 멸치의 40%가 유통되는 멸치 산업의 중심지다. 그러나 통영 시내에 생멸치를 전문으로 하는 식당은 의외로 적다. 통영에선 멸치를 대부분 말려서 유통하기 때문이다.

“멸치는 성질이 급해서 건지자마자 죽는 생선이에요. 멸치 그물을 올리자마자 배에서 삶고 항구에 부리기까지 시간을 단축하는 데 품질이 달렸어요. 통영은 일제강점기부터 멸치를 잡았으니 멸치 다루는 솜씨로는 통영을 따라올 곳이 없어요.”

통영 정량동 멸치 위판장에서 만난 멸치 중매인 박춘형(48)씨가 통영 멸치에 대해 운을 뗐다. 멸치는 남해 바다가 키우지만 통영 어민의 손끝에서 맛이 여문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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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 조업에 나선 어부들이 그물을 끌어올리는 모습.

마침 통영 도산면 관덕리 어장막(멸치 건조시설) 앞에서 한 가득 멸치를 싣고 돌아온 정선호(100t급) 운반선을 만날 수 있었다. 선원들은 배에서 삶은 멸치를 가로 90㎝, 세로 1m 크기의 직사각형 틀에 담아 어장막으로 바삐 옮겼다. 이날 어장막에 들인 틀은 990개 분량이었다.

“멸치 삶는 시간, 멸치 삶는 물의 염분, 멸치 건조하는 시간 모두 사람 손에 달린 기라. 봄 멸치는 살이 통통하고 기름져서 18시간은 말려야 한단 말이지.”

정선호 어장막을 관리하는 34년 경력의 박영중(66)씨가 윤기가 흐르는 멸치를 힐끔 살피더니 건조기 온도를 조정했다. 이날 잡은 멸치는 어장막에서 하루를 보내고 이튿날 바로 경매에 붙여진다고 했다. 통영 앞바다에서 건져낸 봄 멸치는 반찬으로, 술안주로 우리 식탁에 부지런히 오를 채비를 하고 있었다. 어장막의 구수한 멸치 향에 침이 꼴깍 넘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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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정보=서울시청 기준으로 경남 통영까지 자동차로 4시간 30분 걸린다. 4∼6월에는 통영의 중앙시장·서호시장 등 재래시장에서 생멸치를 먹을 수 있다. 가격은 1㎏에 1만원 선이다. 멸치 전문 요리점 멸치마을(055-645-6729)에서 생멸치로 만든 멸치요리를 판다. 2인 3만원. 통영 건멸치는 지역 특산물 온라인 장터 농마드(nongmard.com)를 통해 구입할 수 있다. 세멸(1.5㎝ 이하)은 볶음용이고 소멸(3.1~4.5㎝)은 술안주 및 조림용, 중멸(4.6~7.6㎝)·대멸(7.7㎝ 이상)은 국물내기용이다. 세멸 4900원(300g)부터. 세멸·소멸·중멸·대멸 종합세트 3만3000원(630g)부터. 02-2108-3410.

글=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사진=임현동 기자 hyundong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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