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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중앙시평

4·13 총선, 혼란스런 의문 4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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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진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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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
논설위원

 국회의원 선거는 사회의 도덕과 공정성을 정화(淨化)하는 중요한 시험 무대다. 누가 옳고 무엇이 공정한지 대(大) 심판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런 의식을 통해 역사는 진보한다. 그런데 올해는 역사가 거꾸로 가고 있다. 대(大) 혼란이다.

유승민 의원은 조직의 질서를 파괴하는 언행으로 원내대표에서 퇴출된 사람이다. 그런 잘못이라면 정당은 그를 낙천시키는 결정을 내릴 수 있다. 그가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권력은 유권자의 심판을 받으면 된다. 그런데 뭐가 두려워 시간을 질질 끌며 결정을 피했나. 역풍이 무섭다면 애당초 그런 생각은 왜 했나. 그 정도도 정면돌파를 못하면 김정은은 어떻게 상대하나. 비겁한 권력이다.

정작 쳐야 할 사람은 치지 못하면서 이 권력은 무고한 이들에겐 칼을 휘둘렀다. 새누리당은 국회선진화법을 악법으로 규정한다. 주호영 의원은 이 법에 대한 헌법소원 투쟁을 이끌고 있는 사람이다. 국회 정보위원장으로 테러방지법 통과에도 기여했다. 무엇보다 최근까지 대통령의 정무특보였다. 그런데 권력은 단칼에 그를 잘랐다. ‘편한 곳에서 3선을 했다’는 것이었다. 아니 그렇다면 대구·경북 의원은 무조건 중간에 정치를 접어야 하나. 대권이 아니었다면 박근혜 의원은 대구에서 7선, 8선을 했을 것 아닌가.

조해진 의원은 경선 기회를 갖지 못하고 탈락했다. 유승민 원내대표 밑에서 수석부대표를 한 것이 문제였던 모양이다. 유 의원처럼 큰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연대책임을 묻는 건 옳은 건가. 의정과 지역활동을 위해 그가 쏟은 땀은 누가 보상하나.

이명박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낸 임태희 전 의원은 2014년 7·30 재·보선 때 수원 공천을 받았다. 본인은 평택을 원했으나 당이 조정한 것이다. 이번에 그는 자신의 지역구였던 분당에 출마했다. 그런데 경선조차 못해 보고 잘렸다. 주호영·조해진·임태희 말고도 적잖은 이가 경선 문턱에 가보지도 못했다. 도대체 기준이 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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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력이 바르지 못하니 이탈자들이 기고만장(氣高萬丈)이다. 너도 나도 정의·헌법·국민을 외친다. 더민주로 출마한 조응천 후보는 박 대통령의 핵심 비서관이었다. 그의 부하가 시중의 찌라시로 보고서를 만들었다. 대통령 비서관들을 음해하는 내용이었다. 조 비서관은 이 엉터리 문서를 그대로 상부에 올렸다. 문서는 외부에 유출됐고 국정은 큰 혼란을 겪었다.

상관인 그가 찌라시라는 걸 몰랐다면 일을 부실하게 처리한 것이다. 알고도 모른 척했다면 의도가 불순한 것이다. 이렇게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으면 자숙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는 헌법을 외치며 반(反) 박근혜 투사가 되어 있다. 혼란도 이런 혼란이 없다. 대통령이 틀렸다고 이탈자들이 옳은 건 아니다.

김종인 더민주 대표는 사퇴 파동 때 이렇게 말했다. “나는 명예를 지키려 산 사람이다.” 사실 그는 명예를 자주 언급하는 편이다. 2012년 11월 그는 『지금 왜 경제민주화인가』라는 책을 냈다. 할아버지(초대 대법원장 김병로)의 가르침이라며 서문에 그는 이렇게 적었다. “마음이 약해 권력·금력·인연 같은 유혹들에 넘어간다면 인생으로서 파멸이다.”

김 대표는 1992년 노태우 대통령의 경제수석일 때 은행장으로부터 2억여원의 뇌물을 받았다. 그는 징역형(집행유예)을 선고받았다. 명예가 생명이라는 그에게 이것은 무슨 일인가. 그는 지금 제1 야당을 개혁하는 도덕성의 화신이 되어 있다. 그는 국민에게 제대로 사죄한 적이 있나. 중진 언론인의 관훈토론회는 왜 이것을 묻지 않았나. 그는 “박 대통령도 나를 중용했다”고 강변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2012년 그가 새누리당 비대위 부위원장이 됐을 때도 도덕성에 대한 지적이 있었다.

원래 진보는 보수보다 도덕성에서 우월해야 한다. 그런데 이 명제가 요즘은 야권에서 춤을 춘다. 과거엔 도덕성을 확립하려는 몸부림이 있었다. 18대 총선 때 박재승 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은 저승사자로 불렸다. 그는 비리 전력 의원들을 배제했다. 박지원 의원은 김대중 대통령의 비서실장 시절 뇌물을 받은 전과가 있다. 그는 공천을 받지 못했다.

안철수 대표는 문재인 대표가 제대로 당을 혁신하지 못한다며 뛰쳐나왔다. 그렇다면 국민의당은 도덕성 잣대에서 더 엄격해야 한다. 그런데 오히려 느슨하다. 박지원 의원은 아무런 문제 없이 공천을 받았다. 국민의당은 다른 문제도 혼란스럽다. 안 대표는 ‘안보는 보수’라고 했는데 대북정책으로 보면 더민주가 더 엄격하다. 국민의당은 여전히 옛날 레코드를 틀고 있다.

과속으로 질주하는 권력, 그런 권력의 허점을 이용하는 이탈자, 권력의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야권의 야심가들···. 이들 때문에 도덕과 정의가 어지럽게 엉키고 있다.

김 진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