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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종의 바로 보는 북한] 20년 전 “어이 준장” 남측 대표 놀린 대남 강경파 김영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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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북한 노동당의 통일전선 비서인 김영철(70)은 군부 강경파로 분류됩니다. 현역 군 대장인 그는 총참모부 정찰총국장 시절인 2010년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도발을 실행한 것으로 우리 당국은 파악합니다. 지난해 8월 목함지뢰 사태도 그의 작품이란 판단입니다. 김영철에 대한 우리 평가는 좋지 않습니다. 남북 회담장에서까지 안하무인 격으로 행동하고, 합의 도출보다 상대를 골탕먹이는데 골몰한 때문이라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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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 남북 고위급 회담 때 김영철은 북한군 소장 계급을 달고 나왔습니다. 소장-중장-상장(上將)-대장 체제인 북한에서는 ‘별 하나’인 셈이죠. 그의 상대는 박용옥 당시 국방부 정책실장이었는데, 마찬가지로 원스타였죠. 우리 군 계급은 준장(準將)-소장-중장-대장 순서입니다.

김정은 최근 도발적 위협 극에 달해
북한 관측통 “김영철 작품 가능성”

김영철은 이점을 물고 늘어졌는데요. 회담 때마다 그는 박 실장을 ‘남쪽 준장’이라 부르며 “어이 준장이 뭐야. 그건 거의 장군이 아니란 말이잖아”라며 몰아세워 우리 대표단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다는 후문입니다. 노태우 정부는 1992년 5월 7차 회담 때부터 박 실장을 소장으로 진급시켜 대표로 내보냈 다고 합니다.

오랜기간 회담 대표를 맡은 경력을 바탕으로 김영철은 노련함을 과시했다는데요. 회담장에 빨간펜 하나만 달랑 들고 들어와 남측 대표들에게 “뭔 서류가 그리 많냐. 머리 속에 다 가지고 와야지”라며 기선을 제압하려 들었다는 겁니다.

김영철은 10대 후반 북한군 최전방 15사단 비무장지대(DMZ) 민경중대에서 복무했습니다. 68년부터는 소좌 계급으로 군사정전위 연락장교를 맡았는데요. 그해 1월 미해군 정보수집함 푸에블로(Pueblo)호 피랍사건을 둘러싼 북·미 대치사태를 생생히 목격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군부 대남통 정도로 간주되던 김영철이 날개를 단 건 김정은 체제가 등장하면서입니다. 김정은 후계자 시절인 2009년 정찰총국장에 앉았고 이듬해 2월 군 상장으로 진급했죠. 김정일 사망 직후인 2012년 2월에는 군 대장에 올랐고, 김일성 훈장도 탔습니다.

우리를 놀라게 한 건 지난해 12월 사망한 김양건 후임으로 김영철이 노동당 통일전선 비서에 발탁되면서죠. 강경파의 득세로 남북관계가 경색될 것이란 우려가 나왔는데요. 공교롭게도 4차 핵 실험에 이어 장거리 로켓 광명성 발사 등 김정은 체제의 도발적 행보가 이어져 왔습니다.

특히 3월 들어 서울을 겨냥한 호전적 위협이 극에 달했는데요.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까지 나서 “적 들이 단 한 시도 발편잠(발뻗고 편하게 자는 잠)을 자지 못하게 하라”(3월4일 신형 방사포 사격훈련 보도)고 언급하는 상황이 벌어졌죠. 북한 관측통들 사이에서는 남한을 어떻게든 괴롭히려는 심보가 드러나는 김정은의 언급을 두고 “김영철의 작품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26일에는 장거리 포병대 이름으로 ‘최후통첩’이란 걸 냈는데요.

수령독재인 북한에서 노동당과 군 간부의 역할은 제한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대남 비서의 경우 적절한 조언으로 최고지도자의 생각을 돌리게 하거나 군부 강경파를 견제하기도 합니다. 금강산관광을 앞둔 1998년 북한 군부가 반발하자 김용순 대남비서가 김정일 국방위원장 집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 설득한 사례가 대표적입니다. 김정은의 신임이 두터웠던 국제통 김양건 비서가 사라진 남북관계는 먹구름이 가득합니다. 김영철이 그 공백을 메우기는 힘들어보입니다.

이영종 통일전문기자 겸 통일문화연구소장 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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