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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고향 품에 안긴 임창용 “나쁜 놈 받아줘 감사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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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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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창용

미국 괌에서 개인훈련을 하고 있었던 임창용(40)은 28일 오전 KIA 타이거즈 주장 이범호(35)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도박 파문 4개월 만에 KIA와 계약
연봉 3억 기부, 지속적 봉사 약속

“형님, 축하 드립니다. 저희는 형님이 오시기를 기대하고 있었어요.”

“그래. 고맙다. 후배들을 봐서라도 내가 잘해야겠네.”

지난 27일 밤 KIA와 임창용은 입단 계약에 합의했고, 이 사실을 28일 발표했다. 그러자 후배가 먼저 전화를 걸어 환영의 뜻을 전한 것이다.

해외원정 도박 사건(벌금 1000만원)으로 지난해 11월 삼성 라이온즈로부터 사실상 방출당한 임창용이 4개월 만에 소속팀을 찾았다. 임창용은 중앙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제게 실망하신 팬들께 다시 한번 사과드린다. 이대로 은퇴하는 줄 알았는데 KIA 구단과 동료들이 날 받아줬다. 정말 고맙다”고 말했다.

임창용은 KIA와 협상하면서 2016년 연봉 3억원을 기부하고 지속적으로 봉사활동을 하겠다고 약속했다. KIA 구단 관계자는 “임창용이 먼저 ‘연봉을 기부하겠다’고 해서 놀랐다. ‘이런 마음가짐이라면 그에게 재기의 기회를 줘도 되겠다’고 판단했다”고 전했다. 임창용은 “언제가 됐든 은퇴는 고향 팀 KIA에서 하고 싶었다. 좋은 모습으로 고향에 가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해서 죄송하다. 내 마지막 공을 KIA에서 던질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양측이 계약에 이르기까지는 적지 않은 진통이 있었다. 임창용은 지난해 구원왕(5승2패 33세이브, 평균자책점 2.83)에 올랐을 만큼 여전히 최고의 기량을 갖고 있다. 마흔 살 노장이지만 2년 정도는 문제없이 던질 수 있다. 삼성이 그를 자유계약선수로 풀자 2~3개 구단이 임창용 영입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한국야구위원회(KBO)가 지난 1월 ‘임창용이 복귀할 경우 시즌 경기의 절반(2016년이라면 72경기)을 뛰지 못하도록 했다. 예상 밖의 중징계가 내려지자 구단들은 영입 검토를 백지화했다. 위험부담을 안고 영입한 노장 투수를 3개월이나 쓰지 못하는 건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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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태 시절 임창용

KBO 선수등록 시한(1월31일)이 지나자 임창용의 은퇴는 시간문제가 됐다. 임창용과 같은 징계를 받은 오승환(34)은 메이저리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입단했고, 경찰이 수사 중인 윤성환(35)과 안지만(33)은 여전히 삼성 소속이다. “도박파문에 연루된 네 선수 중 임창용만 강제로 은퇴하는 건 불합리하다”라는 목소리가 커졌다.

여론의 추이를 살핀 KIA 구단은 지난주 임창용 영입을 검토했다. 그가 잘못을 충분히 뉘우치고 있고, 한 달 전부터 개인훈련을 했을 만큼 재기 의지가 강하다는 걸 파악했다. 치열한 내부 논의 끝에 KIA는 임창용을 데려오기로 했다.

선수등록 시한이 지났기 때문에 임창용은 KIA의 육성선수(연습생) 신분으로 계약할 예정이다. 1995년 광주진흥고를 졸업한 임창용은 해태 타이거즈 2군에서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임창용은 김성근 당시 해태 2군 감독으로부터 강훈련을 받았고, 김응용 당시 해태 감독의 눈에 띄어 마무리 투수로 성장했다. 22세였던 1998년 역대 최연소 구원왕(34세이브)에 오른 뒤 삼성으로 트레이드됐다. 삼성은 임창용을 얻기 위해서 당시 최고 타자였던 양준혁과 투수 황두성·곽채진에 현금 20억원까지 얹어줬다.

임창용은 2008년 일본 야쿠르트 스왈로즈, 2013년 미국 시카고 컵스를 거쳐 2014년 삼성으로 돌아왔다. 해외에 있을 때도 그는 “고향에서 은퇴하고 싶다”고 수차례 말했다. 21년 전 그때처럼, 임창용은 타이거즈 2군 마운드에 서게 됐다. 자금난에 시달렸던 해태는 그를 팔 수밖에 없었지만, KIA는 그를 다시 품었다.

풍운아 임창용은 “나쁜 놈인 채로 내 야구인생이 끝나는가 싶었다”며 “날 받아주는 곳이 있어 사죄의 기회도 얻게 됐다. 먼저 팬들의 용서를 구하고 싶다. 야구선수로서 응원을 받는 것은 그 다음 문제”라고 말했다.

김식야구팀장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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