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수입맥주가 어느새 40% 넘었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1면

기사 이미지

지난 24일 서울 이마트 성수점에 진열된 수입 맥주. 이곳에서 올해 1~2월 판매된 맥주의 41.9%가 수입 맥주였다. 수입 맥주는 다양한 맛에 할인행사, 맥주 전용잔 제공을 앞세워 시장을 빠르게 잠식하고 있다. [사진 이마트]

중앙일보가 올해 1~2월 9개 유통업체의 수입 맥주(가정용) 매출 비중을 조사한 결과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그 비중이 70%에 달했다. 또 롯데백화점(본점)이 50%, 현대백화점은 40%에 이르렀다. 주요 마트와 편의점의 수입 맥주 판매 비중도 40% 안팎이었다.

할인 판매 가능한 외국산
묶어팔기에 국산 속수무책
주세 구조도 외제보다 불리

수입 맥주 전성기이자 국산 맥주의 위기다. 해마다 약 1000억원 이상씩 맥주 시장이 커지고 있지만 그 과실은 온전히 수입 맥주의 몫이 되고 있다. 2013년 2조4100억원 규모(이하 세전 기준)였던 맥주 시장은 지난해 2조6650억원 규모로 커졌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5.4% 증가한 2조8100억원 규모에 이를 전망이다. 하지만 성장의 과실 대부분을 수입 맥주가 가져간다. 지난해 국산 맥주의 규모는 2조1650억원 선으로 2013년(2조1100억원)에 비해 큰 차이가 없다.

기사 이미지

그나마도 식당·호프·주점 등 ‘업소용’이 기본 물량을 차지하고 있어 유지가 된다. 전체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업소용을 제외하면 국산 맥주의 비중은 50%대로 떨어진다.

국내 업체들은 특유의 ‘원가 구조’ 같은 규제 때문에 국산 맥주가 설 땅이 좁아진다고 주장한다. 맥주 한 병에는 세전 출고가격을 기준으로 평균 113%의 세금이 붙는다. 하지만 세금을 붙이는 방식이 다르다. 국산 맥주의 경우 세전 출고가격은 ‘원가+판매·관리비+예상 이윤’으로 이뤄진다. 여기에 세금으로 ‘주세+교육세+부가가치세’ 등을 더한다. 업계 이윤이나 판매·관리비 등이 투명하게 드러나 있다.

반면 수입 맥주의 세전 출고가격은 ‘수입신고가+관세’로 구성된다. 여기에 주세·교육세·부가가치세 등의 세금 항목은 같다. 그런데 이윤이나 판매·관리비는 ‘세금 정산이 끝난 뒤’에 매겨지기 때문에 업체의 재량이 크다. 이윤을 탄력적으로 조절할 수 있어 가격 재량권이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기사 이미지

할인·묶어팔기에 있어서도 국산과 수입 맥주의 차별이 있다. 국산 맥주는 국세청 고시에 따라 출고가격 이하로 판매하거나 묶어팔 수 없지만 수입 맥주는 가능하다.

할인이 금지된 국산 맥주업체에 허용된 마케팅 도구는 ▶맥주잔 증정 ▶호프 등 업소용 달력 제작 등이 꼽힌다. 하지만 맥주잔 마케팅에서도 수입 맥주사들의 다양한 맥주잔에 밀리는 추세다. 27일 경기도 일산 롯데마트 주엽점에서도 맥스·카스 등 국산 맥주는 물론 아사히·페로니 등 수입 맥주사들이 6~8캔 구매 시 맥주잔 증정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었다.

대형마트 간 경쟁도 수입 맥주 판매에 한몫하고 있다. 양문영 롯데주류 수석은 “쿠팡 등 온라인·모바일로 쇼핑하는 고객이 증가하지만 주류만큼은 오직 오프라인을 통해서만 거래가 가능하다”며 “이 때문에 대형마트 등 오프라인 유통업체들은 수입 맥주를 다양화하고 프로모션을 많이 해 고객을 유치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보다 못한 공정거래위원회가 다음 달부터 ‘맥주산업에 대한 시장분석’ 연구용역을 시작해 국산 맥주에 대한 역차별 해소에 나선다. 6월 말까지 3개월간 진행되는 시장분석은 ▶규제로 인한 국내 맥주산업 경쟁력 약화 ▶수입 맥주 시장점유율 증가 ▶맥주산업 경쟁 촉진방안 등에 대해 진행된다.

공정위 측은 ‘(연구용역) 과업지시서’를 통해 “수입 맥주는 다양한 품질 개발과 판촉으로 시장점유율을 늘리고 있지만 국산 맥주는 경쟁제한적 규제로 경쟁력이 약화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국산 맥주가 맛이 없다’는 지적은 여전한 문제로 꼽힌다. 발효조 25kL, 저장조 50kL(소규모 맥주사업자는 발효조·저장조 5~75kL)의 시설이 있어야 하는 등 진입장벽이 높아 신규 사업자 없이 맥주 3사 위주로 시장이 운영되는 데다 이른바 ‘소맥’ 트렌드로 업체들이 맛 개선에 소홀했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주류세 부과 기준, 원가냐 도수냐



업계의 한 관계자는 “2000년대 후반부터 소주에 맥주를 타 먹는 이른바 ‘소맥’이 국산 맥주계의 트렌드를 좌우하면서 신제품 개발보다는 ‘시원하면 된다’는 생각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이 때문에 2012~2013년 수입 맥주 붐이 일어날 때 국산 맥주업계가 대응을 제대로 못해 점유율이 많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정희원 신세계 과장은 “주요 백화점에서는 분기마다 문화센터 맥주 클래스를 열어 독일·벨기에 등 주요 국가의 맥주를 시음하고 정보를 공유하지만 국산 맥주에 대한 관심은 전무한 상태”라며 “지금도 백화점 VIP 고객들은 이태원 수제 맥주 외에는 국산 맥주를 찾지 않는다”고 일침했다.

이현택 기자 mdfh@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