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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대첩 무산, 박근혜 vs 김무성·유승민 균열은 더 악화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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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2호 3 면

26일 오전 대구 동구에 있는 무소속 유승민 후보의 선거사무소 건물에 기호 ‘5번’이 새겨진 새 현수막이 걸렸다. 유 후보는 이날 “당선되면 바로 복당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뉴시스]

‘배신의 정치 심판’ 대 ‘정치보복 심판’으로 서로의 심장을 겨누던 대구대첩은 무산됐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반란으로 노 게임에 무승부가 돼버렸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정면 도전한 유승민 의원의 당선 걸림돌은 사라졌다. 총선판 전체에 흐르던 대구발 긴장감도 일단 해소됐다. 하지만 김 대표의 정치 쿠데타로 여권 전선은 확대됐고, 전투는 복잡해졌다. 여야 전쟁 속에 여여 전선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두 개의 전쟁이다.


유승민 의원 지역구에 무공천을 강행한 뒤 김 대표는 “공멸을 막고 선거에서 과반을 지키기 위한 결단이었다”고 자평했다. 파국을 피한 타협책이란 점에선 그런 측면이 있다. 무엇보다 당선이 가시권인 유 의원의 투쟁 동력은 떨어졌다. 대통령과 직접 싸우는 부담감도 덜어냈다. 몸이 가벼워진 유 의원은 당에서 쫓겨나 무소속으로 뛰는 직계 의원들을 지원해줄 수 있게 됐다. 무공천이 확정된 지난 25일 오후 6시쯤 선거사무소에서 만난 유승민 의원은 “저 때문에, 저하고 뜻을 같이했다는 이유로 경선 기회조차 받지 못한 후보들을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고 밝혔다.

유승민 사무실엔 계속 박 대통령 사진 걸어그러나 긴장감이 해소되며 박 대통령과 각을 세우는 정면 대결도 동시에 사라졌다. 대구시 동구 용계동의 유승민 의원 선거사무소엔 박 대통령의 사진이 여전히 걸려 있다. 유 의원은 “오랫동안 그 자리에 있었고 앞으로도 그대로 걸어둘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에선 박 대통령과의 화해를 바라는 목소리도 높았다. 방촌시장에서 장을 보던 박모(47·여)씨는 “우째 됐기나 인자 유 의원 하고 대통령 하고 화해하고 잘 쫌 지냈으마 좋겠다. 그래야 비행장(지역구 내 K2 비행장) 이전도 해줄꺼 아이겠나”라고 했다.


물론 대구는 여전히 어수선하다. 김 대표의 무공천으로 유승민 의원과 싸우려던 진박 이재만 후보의 출마 길은 막혔다. 유 의원 사무소로부터 1.5㎞ 정도 떨어진 이재만 후보 사무소엔 분노가 넘쳤다. 26일 사무소를 지키던 한 여성은 “미친 XX들. 저것들 믿고 우리가 새누리당 우예 찍노. 전부 다 야당 찍자”고 고함을 쳤다. “우리가 뭘 잘못했는데” “다 필요 없다”는 고성이 오가는 가운데 ‘관계자 외 출입금지’가 적힌 사무실에선 통곡 소리가 하루 종일 이어졌다. 방촌동에서 부동산 중개사무소를 운영하는 김모(55)씨는 “당사 찾아간 이재만 모습 보이께네 맘이 짠하다”며 “새누리당 하는 꼬라지가 참 희한하데이. 인자 투표할 마음이 별로 안 생긴다”고 했다. 율하동 한 할인매장에서 만난 주부 김정희(33·여)씨는 “이게 잘된 긴지 잘못된 긴지 분간이 잘 안 가네요. 이레 되면 투표율은 좀 떨어지지 않겠습니꺼”라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유승민 바람이 꺾인 대구에서 유승민계 무소속 후보들의 생환은 불투명해졌다. 다른 무소속 출마 지역의 싸움이 오히려 커졌다. 주호영 의원이 무소속으로 출마한 수성구 지역은 우여곡절 끝에 공천을 받은 이인선 후보와 더불어민주당 정기철 후보가 나섰다. 두산오거리 주호영 캠프 사무소에서 만난 60대 지지자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공천이 어데 있노. 도대체 뭘 잘못했는데 우리가 당을 떠나야 한단 말이고”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주 의원 사무소에서 1㎞ 떨어진 황금네거리 근처 이인선 후보 사무소 관계자는 “이러니저러니 해도 대구 시민들은 투표장에선 결국 1번을 찍게 돼 있다”고 자신했다.


김 대표는 막판 옥새 전쟁으로 친박이 낙천시킨 이재오·유승민 의원을 살려내고 공천된 ‘진박’ 유영하 후보는 낙천시켰다. 박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로 지목한 유 의원을 살리기 위해 공개적으로 박 대통령의 뜻을 꺾은 셈이다. 이 때문에 예비후보 세 명은 무소속 출마의 기회까지 박탈됐다. 김 대표의 ‘3생 3사’ 항명에 대한 청와대 분위기는 싸늘하다. 박 대통령은 25일 경기북부지방경찰청 개청식에서 “국회와 정치권에서도 본인들만의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김 대표의 옥새 반란 논란과 무관치 않다고 전했다.


총선 치를 때까지는 불편한 동거 지속박 대통령은 그동안 자신에게 등을 돌린 사람에게 단호하게 대응했다. 그러나 이번엔 박 대통령이 당장 행동에 나서는 건 쉽지 않다. 노골적 언급은 자칫 총선 개입 논란을 부른다. 총선에 이기려면 여당이 하루빨리 안정을 되찾아야 한다. 이래저래 총선은 김무성 체제로 치르게 돼 대통령과의 불편한 동거가 이어지게 됐다. 선거가 코앞인데 지도부가 와해되는 건 누구에게도 득이 될 게 없다. 게다가 당선권 비박 후보를 배려한 김 대표의 이례적 도발 덕에 등을 돌렸던 민심은 어느 정도 누그러졌다. 유승민 바람의 위력이 꺾인 건 나쁘지 않은 그림이다.


그렇다고 불편한 동거가 마냥 이어지긴 힘들어 보인다. 청와대는 김 대표의 옥새 전쟁을 박 대통령과의 결별 선언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내년 대선을 염두에 두고 명분 없는 공천에 대한 저항을 정치적 자립의 명분으로 삼았다고 보는 것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총선 이후 김 대표가 결국 박 대통령과 결별하고 탈당한 유 의원과 손을 잡겠다는 의미 아닌가”라며 “향후 대권 국면을 겨냥하고 있다고밖에 해석되지 않는다”고 전했다. 친박계는 “본심을 드러낸 김 대표와 도저히 함께 할 수 없다는 게 확인됐다”며 일전을 벼르는 분위기다.


김 대표의 이번 거사는 자신의 정치적 스승인 YS(김영삼 전 대통령)의 승부수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26년 전 노태우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YS의 대중지지도는 탄탄했고, 노 대통령의 국정 지지도는 약했다. 지금은 반대로 박 대통령의 고정 지지는 강하고 김 대표의 기반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그래선지 김 대표는 다시 자제 모드로 몸을 낮췄다. 공천이 마무리된 뒤 “(나와) 청와대와의 관계에 대한 보도가 많이 나왔는데 그런 생각(반기)이 없다는 점을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사실상 청와대를 향한 해명이다. 김 대표는 취임 후 청와대 눈치를 살피는 타협적 행보로 ‘30시간 법칙’이란 무력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박 대통령이나 친박계와 대립각을 세우다가도 30시간 내엔 예외 없이 물러섰다. 이번 옥새 전쟁에서도 전면투쟁 양상 속에 봉합이란 절충점을 찾았다.


그럼에도 공천 과정에서 꾹꾹 눌러온 새누리당의 계파 갈등은 임계치를 넘었다는 게 드러났다. 어차피 김 대표의 임기는 7월로 끝난다. 당내에선 총선이 끝나자마자 김 대표 흔들기가 시작되고 전당대회 시기도 앞당겨질 것이란 예상이 많다. 총선이 끝나자마자 새 지도부 선출을 위한 친박 대 비박 간 본격적인 전쟁이 시작된다는 거다. 김 대표의 막판 반란은 그 전쟁을 준비한 것이란 얘기가 많다. 청와대와 친박계에 쫓겨나 무소속 출마한 이재오·유승민 의원에게 ‘비박 연합군’의 전략적 제휴를 제안한 뜻이란 거다. 대거 공천받은 친박계는 20대 국회가 열리자마자 최경환 의원을 중심으로 뭉칠 태세다. 김 대표의 강경 카드는 친박계에 포위되기 전 선제공격의 측면이 있는 셈이다.


엇갈린 박 대통령·김무성·유승민 인연이번 총선이 끝나면 여권의 차기 주자 지형은 구체화된다. 현재 여론조사론 김 대표가 가장 앞서 있지만 오세훈 전 서울시장이 따라붙는 양상이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 안대희 전 대법관 등 거물급들이 총선에서 살아 돌아오면 변수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큰 관심사는 사실상 무혈 입성을 앞둔 유승민 의원이 복당해 후보군에 합류할 수 있을지 여부다. 당내에선 무소속 유승민 의원이 새누리당 후보 이재만을 꺾고 당선돼 여권의 가장 강력한 대선 주자로 뛰어오르는 상황을 현재 여권 주자 1위인 김 대표가 미리 차단한 모양새가 됐다고 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무성 대표, 유승민 의원. 각별한 애증으로 얽힌 세 사람은 화합과 결별을 이어가지만 친박이란 정치 세력을 탄생시킨 당사자들이다. 박 대통령이 2005년 한나라당 대표 시절 김 대표는 사무총장, 유 의원은 비서실장이었다. 대변인이었던 전여옥 전 의원과 유 의원 전임 비서실장인 진영 의원, 김 대표 후임 사무총장인 허태열 전 대통령 비서실장 그리고 이병기 대통령 비서실장이 친박 그룹을 만들었다.


2007년 당의 대선후보 경선전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패배한 뒤 세 사람 사이엔 균열이 생겼다. 유 의원이 작성한 연설문을 박 대통령이 수정하는 과정에서 생긴 몇 차례 충돌이 발단이었다고 한다. 유 의원은 경선 때 정책공약 마련부터 연설문 작성까지 담당한 정책메시지 단장이었다. 연설문이 바뀌면 유 의원은 “비서가 내게 보고도 없이 손을 댔다”고 항의했다는 것이다. 실제론 박 대통령 지시인 경우가 많아 오해였다는 얘기가 있고, 대구?경북(TK)지역 맹주를 노리는 유 의원이 홀로서기에 나선 것이란 주장도 있다. 이후 유 의원은 언론 인터뷰에서 “박 대통령이 의사결정 과정에서 다양한 이야기를 듣지 않는다. 쓴소리도 만나야 가능한데 통화조차 어렵다”고 소통의 문제를 제기해 두 사람은 멀어졌다. 비슷한 시기 김 대표는 세종시 수정안을 놓고 박 대통령과 대립했고 친이계 지원으로 원내대표가 됐다. 이후 최경환 의원이 박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 됐다. 최 의원은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경제 브레인이었던 유 의원이 이회창 캠프에 영입한 위스콘신대 동문이다.


최상연 논설위원, 대구=이충형 기자chois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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