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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타고 달리는 시골 등굣길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72호 22면

큰아이가 초등학생이 됐다. 아이 가슴에 손수건 붙은 명찰은 없었지만, 학부모로서는 설렘 그 자체다. 1학년 세 개 반 70여 명 학생들이 모두 한 교실에 모여 입학식을 치렀다. 서울에서 오전반, 오후반을 경험했던 내게는 격세지감이다. 담임선생님은 요즘 보기 드물다는 남자! 모두에게 소개할 때 약간의 떨림이 느껴지던 풋풋한 신참 교사의 인상이 마음에 든다.


반으로 이동해 자리를 정했는데, 몇 줄 되지는 않았지만 제일 뒷자리를 배정받았다. 평소 먼 곳을 보기 위해 눈을 찡그렸기에 입학식을 마치고 시내 안경점에 들렀다. 이제 안경 쓰지 않은 얼굴은 못 보겠구나, 안타까움이 없지 않았지만 부부 모두 시력이 좋지 않은 터라 언젠가 맞게 될 오늘을 애써 피할 생각은 없었다. 오히려 안경점 할아버지가 이렇게 덤덤한 부모는 처음 본다며 껄껄 웃는다.


이윽고 하얀 테의 안경을 쓴 아이의 어색한 웃음과 처음 만났다. 웃음까지 처음 보는 것만 같다. 조금 더 선명한 세상을 만나게 된 기분은 어떨까. 안경이 얼굴에 걸려 있는 불편함이 없진 않겠지만, 지저분해진 안경을 깔끔히 닦아내고 바라보는 풍경의 상쾌함은 작은 행복이 될 거라며 위안해 본다.


이튿날부터 학교라는 존재가 끼어든 일상이 시작됐다. 학교까지는 약 2km. 초등학교 1학년생이 걸어다니기에는 조금은 부담스럽다. 동네 구멍가게 하나를 제외하고는 집과 논, 밭, 산과 더불어 가끔 공장이 보이는 5리 시골길. 어릴 적 어머니께서 10리를 걸어 학교에 다니셨다는 말씀이 새삼 와 닿는다.


우리는 입학 전부터 자전거를 이용하기로 미리 계획했다. 길도 익힐 겸 다녀 보았던 터다. 길마다 이름을 붙이고 지도도 그렸다. 마을길·논둑길·언덕길·뚝방길·큰길 등 모두 장단점이 있다. 아침마다 내키는 대로 다니다 보면 단골길이 정해지겠지.

* 뚝방길은 자전거 타기는 좋지만, 종종 차가 다녀 선호하지는 않는다. * 마을길은 사람 구경, 화초 구경하는 길. 볼 것이 많아 좋다.* 논둑길은 논의 변화를 느끼기에 좋다.* 언덕길은 비포장 길이라 나쁘지만, 숲 사이의 지름길이라 자주 애용한다.* 큰길에는 한편으로 보도가 있어 다행이지만, 시끄럽고 차도 싫어 배제되기 일쑤다.

우리는 매일 아침 옆으로 논이 펼쳐진 논둑길을 달려 비포장 숲 속 언덕을 넘어 커다란 개가 짖어대는 옛 시골집을 끼고 작은 개울을 넘어 학교에 간다. 아이에게 묻는다. “매일 아침 자전거 타고 학교 가는 게 힘들진 않니?” “시원하고 좋아요!”


편하자고 시작한 자전거가 재밌는 일상을 만들어 주는 듯하다. 아이가 힘을 주어 내닫는 페달의 원운동이 체인을 따라 파르르 소리를 내며 뒷바퀴를 감아 돌리는 소리가 좋다. 힘차게 나아가는 진동이 좋고, 그 바람이 좋다. 그 뒤를 따르는 일이 나는 즐겁다.


동산을 넘는데 이름 모를 산새 소리가 들렸다. 파주의 겨울은 서울보다 평균 5도는 낮은 것 같다. 봄빛은 다가오기를 망설이는 눈치다. 논을 태우는 연기가 나쁘지 않은 아침. 밭마다 넉넉하게 뿌린 거름 냄새는 곧 다가올 황톳빛 대지의 변화를 암시한다. “우리 시간이 좀 있는데, 저기 옆에 앉았다 갈까?” “네! 좋아요!”


아침 시간이 이토록 천천히 흐르던 때가 있었을까. 이 행복이 영원하길 욕심내지는 않으련다. 그저 이날의 기억들이 아이에게 잠깐씩 푸른 미소로 아른거리기만을!


이장희 ?대학에서 도시계획을 전공하고 뉴욕에서 일러스트를 공부했다『. 서울의 시간을 그리다』의 저자. 오랫동안 동경해 온 전원의 삶을 실현하기 위해 서울과 파주를 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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