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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즈 뿌린 감자탕, 두 번째 ‘작업’에 딱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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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2호 28면

그는 아주 잘나가는 의사다. 강남에 병원이 있고 집안도 부자인데다 잘 생기고 세련됐고 매너도 상급이다. 대학 재학시절 일찌감치 학교 퀸카와 사랑에 빠져 결혼했지만 스무 살 후반 이혼하고 지금껏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고 있다. 아무리 도도하고 예쁜 여자도 그의 마법에 빠져 넘어가기 일쑤인데, 그의 ‘작업의 3단계’ 비법은 이렇다.


첫 데이트 약속은 무조건 바로 잡는다. 마주보지 않고 나란히 앉으면 여성의 긴장감은 풀리고 자연스러운 스킨십도 가능해진단다. 이때 술은 꼭 스파클링 와인으로 주문한다. 잔을 타고 오르는 기포가 기분을 좋게 하고, 취기는 은근히 퍼지기 때문이다. 집까지 깔끔하게 에스코트 한 뒤 다음날 바로 두 번째 약속을 잡는다. 이번에는 아주 허름하지만 맛있는 노포로 안내한다. 여자는 속으로 ‘어머, 이 남자 꽤 소탈한 면도 있네’ 놀랄 터. 맛있게 먹으며 소주 한잔 하다 보면 분위기는 무르익는다. 대망의 마지막 데이트는 며칠 시간차를 두고 잡는다. 은근히 애를 태우는 전략이다. “멋진 레스토랑이니 예쁘게 입고 오라”는 멘트도 잊지 않는다. 한껏 꾸미고 나온 여자는 파인 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좋은 와인과 음식을 풀코스로 맛보며 로맨틱한 시간을 즐긴다. “이 3단계가 끝나면 철옹성 같은 그녀도 어지간하면 넘어온다”는 게 그의 말이다. 헐!


누가 봐도 바람둥이가 분명한 그에게도 싫어하는 유형은 있다. TPO(시간·장소·상황)에 맞지 않게 옷을 입는 센스 없는 여자는 싫단다. 말하자면 적절한 때 변신을 거듭하는 ‘카멜레온 같은’ 여자가 그의 타깃이다.

▶오! 감자탕 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숭동 1-49 전화 02-743-0055 밀라노 감자탕(돼지뼈 2만8000원, 소뼈 3만3000원) 외 전통 감자탕, 생생감자전 6000원 등의 메뉴도 일품이다. 겉절이 양념으로 무친 토마토김치(2000원)는 여성이 특히 좋아하는 메뉴. 매실원주(15도) 1만원.

이 이야기를 들으니 며칠 전 갔던 감자탕 집이 생각난다. 지난해 가을 서울 동숭동에 문을 연 ‘오!감자탕’이다. 이곳의 대표 메뉴는 우리가 아는 그 감자탕이 아니다. 이른바 ‘밀라노식 감자탕’이다. 주문을 하면 냄비에 알록달록한 컬러의 재료들이 한 가득 올려 나온다. 가운데 커다란 토마토를 중심으로 양배추·홍합·주꾸미·파르펠레 파스타(나비모양 파스타)가 올려 있다. 깻잎 대신 루꼴라가 보이는 것도 특이하다. 충남 당진에 있는 농장에서 직접 재배해 공수하는 유기농 루꼴라다. 낯선 비주얼이지만 일단 색감이 화사해서 호기심이 인다. 심지어 끓이기 전에 치즈를 갈아서 토핑으로 뿌려준다. 감자탕 위로 예쁘게 치즈 눈가루가 내려앉으면 “도대체 어떤 맛일까’ 궁금해질 수밖에 없다.


이탈리아 사람들이 즐겨먹는 가정식 미네스트로네(minestrone)의 맛을 재현하기 위해 오랜 레시피 연구 끝에 탄생한 메뉴다. 미네스트라(minestra)는 이탈리아어로 ‘수프’를 뜻한다. 이탈리아에선 보통 채소와 파스타, 쌀 등을 넣고 걸쭉하게 끓여낸다. 이 집의 밀라노식 감자탕은 한국식 감자탕과 접목시킨 신개념 메뉴다. 토마토와 고기를 3시간 동안 끓여 푹 우려낸 육수에 육질이 부드럽고 쫄깃한 통뼈를 사용한다. 감자탕에 빠질 수 없는 감자는 계절 별로 산지에서 공수해 쓰는데, 봄에는 김제산 감자를 사용한다.


국물이 보글보글 끓을 때 육수를 떠먹으면 입안에서 고소한 고기맛과 새콤달콤한 토마토 맛이 조화를 이룬다. 주꾸미가 익었을 무렵 특제 크림소스를 붓는다. 우유와 생크림, 청양고추 등으로 만든 크림소스는 부드러우면서도 은근히 맵다. 토핑으로 뿌린 치즈와 국물 맛을 부드럽게 해줄 크림소스가 다소 느끼할까봐 매운 맛을 이렇게 추가한 것이다. 완성된 국물 맛은 담백하면서도 매콤하고 또 부드럽다.


재밌는 건 여기서 또 한 번 변신한다는 것. 통뼈와 감자, 홍합 등을 다 먹고 난 후 3000원을 추가하면 남은 국물에 밥과 치즈, 버터를 넣고 고소한 리조또를 만들어 준다. 한 가지 메뉴를 먹으면서 지겨울 틈이 없다. 진정한 술꾼들은 밥이 최고의 안주라고들 하는데 은근히 매콤한 이 리조또야 말로 술을 부르는 안주다.


여기에 어떤 술을 먹어볼까. 새콤달콤매콤한 음식을 보니 ‘매실원주’가 어울릴 것 같다. 우리나라엔 다양한 종류의 매실주가 시중에서 판매되고 있지만, 매실원액을 100% 사용하는 건 이 술 밖에 없다. 보통의 매실주에는 매실원액에 다른 과즙을 섞기 때문이다. 청매실에 황매실을 섞어 매실의 깊은 맛과 풍미를 더욱 느낄 수 있고, 제주산 꿀이 더해져 달콤하다. 매콤한 음식이나 고기류를 먹을 때 함께 곁들이면 금상첨화.


바람둥이 의사에게 전화를 걸어 밀라노식 감자탕 안주를 이야기했더니 “두 번째 데이트에 가면 딱 좋은 곳”이라며 신나한다. 그는 이번에도 성공할 것 같다. ●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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