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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후보가 내 후보다 왜 말을 못해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72호 29면

지난 일요일 우연히 TV채널을 돌리다 깜짝 놀랐다. tvN ‘문제적 남자’에 출연한 미국 영화배우 클레이 모레츠가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또박또박 밝히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한다”며 “혜택을 받은 백인 여자로서 이 업계의 임금 격차를 줄이고 싶다. 여성 교육 문제에도 관심이 많다”고 밝혔다. 더불어 경쟁자인 도널드 트럼프에 대해서는 “외교정책이 아예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이제 막 19살이 된, 그러니까 처음으로 투표권을 행사하게 된 그녀의 입에서 나온 얘기다.


정치적 견해를 밝히고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것이 할리우드에서는 제법 흔한 일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을 편하게 드러내는 것은 아니다. 당장 그 옆 자리에 있던 타일러 라쉬만 해도 정치적 성향에 대해 묻자 “나는 투표권이 없다”며 즉답을 피했다. 이미 한국에서 꽤 오랜 시간 살아온 그는 아마 경험적으로 체득했을 것이다. 정치란 결코 쉽게 입에 올려서는 안될 주제며, 득보다는 실이 많은 발언이 될 것이라는 것을 말이다. 무엇보다 그는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우리 생리를 잘 알고 있었을 터다.


넋을 놓고 한참을 지켜보니 그녀는 정말 소신이 있었다. 순간 젠 체하기 위해 말을 던진다거나 패션의 도구로 생각해 의견을 내뱉는 게 아니었다. “미국도 투표율이 낮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높이고 싶다”거나 “세상을 바로 잡을 수 있다면, 정치를 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었다. “흔치 않은 질문들을 해 줘서 좋았다. 사람들은 모두 내게 패션이나 헤어스타일에 대해서만 물어본다”라고 하는 게 아닌가. 한 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었다. 실은 나조차도 으레 그래왔기 때문이다.


셀러브리티를 만날 때 인터뷰 시간은 많아야 한 시간쯤 주어진다. 요즘은 매체가 너무 많아져서 그마저도 힘들어 기자회견으로 진행될 때도 많다. 그러다 보니 기자의 질문 능력도 현저하게 떨어진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혹은 대중이 궁금할 법한 내용을 묻는다기보다는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할지 유추해서 질문하기도 하고 이런 걸 물어보면 괜히 언짢아 하겠지 하고 지레 짐작하는 경우도 많다. 애써 잡은 금쪽같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쉬워 한 번 던지면 청산유수로 줄줄 답이 나올, 즉 뽑아쓸 수 있는 내용이 담긴 답변을 듣고자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도 모두 이러한 분위기를 만드는데 일조한 게 아닐까. 나와 상대방의 생각이 무엇이 다른지, 왜 그런 차이가 발생하는지, 어떻게 해야 그 차이를 좁혀나갈 수 있을지를 고민하기 보다는 그것을 생각해 볼 기회조차 박탈해 왔기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문제가 된 연예인의 정치적 논란은 대부분 감정에 기반한 발언에서 불거졌다. 광우병 청산가리 소동이나 “야당은 전라도당” 같은 특정 집단을 공격하거나 배제하는 발언은 문제가 될 수 있을지언정 지금 내가 처한 문제와 상황을 개선해나가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행인 것은 다양한 문제에 관심을 갖는 소셜테이너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관심이 개인화되고 다분화되는 사회에서 누군가 먹거리를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아동학대를 이야기한다면 어떤 식으로든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최소한 누군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이야기를 시작해야 담론이 형성되고 해결책도 찾을 수 있는 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SBS ‘육룡이나르샤’ 종영 기자간담회에서 한 유아인의 발언은 반갑다. “기성세대가 만든 이분법에서 벗어나 유연한 사고와 시각으로 정치를 바라보고 참여해야 한다”며 투표를 독려하는 것을 꼭 불편한 시선으로 봐야 할까. 어쩌면 이들은 삶을 최대한 치열하게 살아내기 위해 고민하고 답을 찾고자 노력하고 있는데 말이다.


글 민경원?기자, 사진 t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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