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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호정의 왜 음악인가

웃기는 음악의 숭고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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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김호정 기자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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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정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설명 없이 듣는 편이 나은 음악도 있다. 모차르트의 작품 K.522다. 문제는 곡의 가장 마지막 화음인데 틀린 음들뿐이다. 괴상한 음들이 울리는 바람에 명백한 불협화음으로 끝난다. 연주자들이 무대에서 졸았거나 악기가 망가지지 않았다면 모차르트 음악에서 듣기 힘든 소리다. 그러면서 우스운 소리다. 이 마지막 소절을 들으면 웃음이 난다.

이제 밝히는 이 곡의 제목은 ‘음악적 농담’이다. 모차르트는 제목에 맞춰 웃기기 위해 온 힘을 다해 작곡한 듯하다. 20여 분 동안 단순하고 촌스러운 주제들을 소중한 듯 다루며 반복하기도 하고 갑자기 무시무시한 느낌의 반음계도 튀어나오게 했다.

음악 작품이라기보단 ‘웃으세요’라는 메시지에 가깝다. 하지만 클래식 음악회장의 청중은 헷갈린다. ‘이거 혹시 나만 웃긴 거 아닐까?’ ‘음악회장에서 웃어도 된다는 소리는 못 들었는데?’ ‘이런 엄숙한 곳에서 우스운 음악을 연주할 리가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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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가리의 명피아니스트 안드라스 시프는 “요즘 청중에겐 ‘유머 교본’이라도 쥐어줘야 할 것 같다”고 칼럼에 썼다. 유머의 달인인 작곡가 하이든의 작품을 들으며 미소라도 짓기는커녕 심각하고 비극적인 표정을 짓고 있는 청중을 보고 나서다. 시프는 힘주어 주장한다. ‘클래식 음악도 웃긴다. 웃기면 웃으시라’고.

작곡가들이 고안한 유머 전략은 다양하다. 하이든은 청중을 약 올린다. 현악4중주 작품번호 33-2는 끝난 척하다가 다시 이어지고 계속될 것 같은 소절에서 홀연히 끝나버린다. 농락당했을 때 기분이 이럴 거다. 놀림을 받고도 헤벌쭉하고 박수 치는 청중도 우스워 보인다. 더 고급 과정에 해당하는 유머도 있다. 조성을 파악할 때쯤 조성을 바꿔버리는 음악, 선배 작곡가의 스타일을 패러디한 작품 등이다. 또 슈만은 악보에 종종 ‘유머를 가지고’라는 연주 지시어를 붙여놨다. 유머를 지닌 연주는 어떤 걸까. 슈만은 연주자와 청중을 한꺼번에 몽상의 나라로 날려보낸다.

까마득히 멀고 점잖아 보였던 작곡가들이 청중을 웃기려 애썼다. 그들이 남겨놓은 음악은 지금 당신, 우리의 웃음을 확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의사소통에서 상대방을 한번이라도 미소 짓게 만들려는 노력만큼 숭고한 게 있을까. 시인이자 피아니스트인 알프레트 브렌델은 “음악과 웃음은 이 세상에서 사랑 이외에 가장 유익한 것”이라 썼다.

김호정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