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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년 전에도 인공지능 있었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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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1호 28면

인공지능(AI)은 따지고 보면 인문학의 산물이다. 인간의 상상 속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까마득한 옛날인 기원전 1900~1000년이 기원으로 추정된다. 그 시절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처음 등장하기 때문이다. 제우스와 헤라 사이에서 태어난 첫 아들 헤파이스토스가 주인공이다. 불과 대장장이의 신으로 뛰어난 손재주를 지녀 신과 영웅의 ‘아이템’을 만들어줬다고 한다. 제우스의 번개, 아프로디테의 허리띠, 에로스가 애용하는 사랑의 활과 화살이 목록에 들어있다. 하도 바빠 금속으로 자동 로봇 같은 걸 만들어 일을 ‘알아서’ 돕게 했다. 기록상 첫 로봇 겸 인공지능이다.


그리스 신화에는 청동으로 만든 오토마톤(스스로 움직이는 자동 기계)인 탈로스도 등장한다. 제우스가 부인 헤라 몰래 크레타 섬으로 납치한 에우로페(유럽의 어원이 된 신화 속 여성)의 경호를 맡은 ‘인공지능 경호로봇’이다. 크레타 섬의 해안을 하루 세 차례 ‘알아서’ 순찰하며 해적이나 침입자로부터 에우로페를 보호했다고 한다.


신화 속 키프로스 왕 피그말리온의 연인 갈라테이아도 넓은 의미의 인공지능 존재다. 피그말리온은 상아로 만든 여성 조각에 갈라테이아라는 이름을 붙이고 연인처럼 데리고 다녔다. 사랑에 빠진 그는 갈라테이아를 진짜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미의 여신 아프로디테에게 빌었다. 아프로디테는 정성에 감복해 기도를 들어줬다. 인간의 창작물이 ‘알아서’ 움직이고 생각하며 사랑의 감정도 느낄 수 있는 존재로 바뀐 것이다. 이처럼 고대 인간의 상상 속에서 인공지능은 신의 축복이었다.


이처럼 인간의 창작물이 사람처럼 변해 그 존재와 사랑에 빠진다는 내용은 숱한 문학작품에 차용됐다. 나무 인형이 인간의 지능과 감정을 가지게 된다는 내용의 이탈리아 작가 카를로 콜로디(1826~1890)의 1883년 작 『피노키오』도 이에 해당한다. ‘로봇’ 용어를 처음 사용한 체코 극작가 카렐 차페크(1890~1938)의 1920년 SF희곡 『RUR』에는 공장에서 대량 생산된 로봇이 등장한다. 스스로 생각할 수 있는 존재로 설정됐으니 인공지능 로봇에 해당한다.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로봇이 급기야 반란을 일으켜 인간이 오히려 멸종된다는 내용이니 인공지능의 디스토피아를 그린 셈이다.


인문학적 상상으로 시작된 인공지능을 과학화한 것은 영국 수학자 엘런 튜링(1912~ 54)이다. 중앙연산장치(CPU)와 유사한 튜링 기계를 고안했고, 인간과 얼마나 비슷하게 대화할 수 있는지를 바탕으로 기계에 지능이 있는지를 판단하는 튜링 테스트도 창안했다. 그래서 ‘인공지능과 컴퓨터의 아버지’로 불린다. 미국의 계산기학회가 1966년부터 이 분야 공헌자들에게 시상하는 튜링상은 별명이 ‘컴퓨터 과학의 노벨상’이다. 2007년부터 구글과 인텔이 공동 후원한다.


인공지능은 인류 삶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하지만, 인공지능의 아버지는 인간의 낡은 편견에 희생됐다. 1952년 동성애 혐의로 체포돼 유죄 판결을 받았다. 동성애가 위법이던 시절이었다. 화학적 거세와 징역형 중 선택을 요구 받자 연구를 계속하겠다며 거세를 택했다. 역사를 기록하려고 궁형을 감수했던 사마천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2년 뒤 독사과를 먹고 세상을 떠났다.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이런 비인간적인 비극이 줄어들까. 인공지능 연구로 2011년 튜링상을 받은 미국 과학자 겸 철학자 유데아 펄(80)도 비극의 주인공이다. 2002년 파키스탄 취재 도중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알카에다에 납치돼 목숨을 잃은 워싱턴 포스트 기자 다니엘 펄이 그의 아들이다. 과연 인간의 두뇌가 인공지능보다 더 도덕적일까.


채인택?논설위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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