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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험평가단이 간다] 같은 색 다른 느낌…검정색 종류만 55가지래요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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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시간을 떠올려 봅시다. 주제는 ‘꽃’입니다. 12색 색연필 세트를 꺼내듭니다. 진달래는 분홍색, 산수유는 노란색으로 칠합니다. 생화와 그림을 대조해 보니 뭐가 달라도 많이 다르네요. 우리는 뭘 놓치고 있는 걸까요?

‘빨주노초파남보’전

서울시립미술관 북서울미술관의 ‘빨주노초파남보’전을 기획한 박미나 작가는 이 질문에 “색깔을 보지 말고 관찰하라”고 말합니다. 색은 보는 각도와 내리쬐는 조명의 종류는 물론 사람의 감정에 따라서도 천차만별 달라지거든요. ‘빨주노초파남보’전 속엔 색채를 관찰하는 색색의 체험활동이 가득합니다. 덕분에 소중 체험평가단도 세상을 칠하고 있는 진짜 색깔들과 만날 수 있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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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시시각각 눈으로 뭔가를 봅니다.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럽게요. 그런데 ‘본다’라는 행동에 대해 주의 깊게 생각해본 적 있나요? 박미나 작가는 “잘 보기만 해도 일상이 훨씬 즐거워질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번 전시 역시 어린이들에게 ‘본다’라는 행위를 생각하게 하기 위해 기획한 겁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보며 ‘나의 보는 법’을 고민하는 게 좋을까요. 박 작가는 ‘색깔’을 골랐네요. 왜 하필 색깔일까요? 박 작가는 이렇게 답합니다. “색은 찰나의 순간에도 많은 것을 보여주지만, 우리는 그 절반도 못 볼 때가 많아요.”

그렇다면 색은 어떻게 봐야 할까요? 흔히 색깔을 공부한다고 하면 수백 가지 색의 이름들이 적힌 컬러 차트(Color Chart)를 외우는 것을 상상합니다. 박 작가는 “그것도 좋은 방법”이라면서도 “더 중요한 것은 색에 대해 흥미를 갖는 것”이라고 합니다. 색을 재밌게 공부하는 법은 뭘까요. “빨강 안에 명도·채도가 다른 다양한 빨강이 있음을 이해하고, 평범한 하늘에서도 무지개 색깔을 발견하는 경험이 살아 있는 색깔 공부”라는 박 작가가 이번 전시에 담은 것 역시 자신의 노하우가 가득한 흥미진진 색깔 공부법입니다.

우리 동네를 대표하는 색깔 찾기

“여러분이 살고 있는 동네를 대표하는 색은 무엇인가요?” 박 작가가 던진 첫 번째 질문입니다. 하지만 체험평가단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죠. 학교를 오가는 데만 바빴을 뿐, 동네가 어떤 색깔로 꾸며져 있는 지는 생각해 본 적 없었으니까요. 박 작가에겐 마을을 관찰하는 것이 나름의 색깔 공부였다고 합니다. 거리 곳곳의 색깔을 집중해 관찰하다보니 색을 구별하고 파악하는 힘이 늘었대요. 마을 사람들의 성향을 파악하는 눈도 덩달아 길러졌죠.

실제로 박 작가는 코펜하겐·상하이·샌프란시스코 등의 세계 대도시를 다니며 각 도시를 대표하는 색깔을 찾아왔습니다. 자유분방한 코펜하겐 사람들은 노란색과 핑크색, 경제관념 투철한 상하이 사람들은 회색을 선호했다고 하네요.

서울의 대표색은 무엇일까요. ‘2016년 1월 1일 등나무 근린공원에서’란 작품에서 답을 찾아봅니다. 회백색·진회색·군청색 등의 색깔 띠들로 구성된 이 작품은 한쪽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는데요. 바닥에는 ‘현수막’, ‘보도블록’, ‘표지판’, ‘아스팔트’ 등의 띠 이름이 같이 적혀 있죠. 작품을 제작하기 위해 박 작가는 미술관이 위치한 등나무 근린공원 주변을 한 바퀴 돌며 눈에 보이는 색깔을 일일이 기록했대요. 띠는 발견한 색깔들을 나열한 것이고, 이름표는 색깔이 칠해져 있던 대상의 이름인 거죠. 평가단은 작품에서 조금 떨어져 전체를 바라봤습니다. 회백색·회갈색 등 회색톤 색깔 띠들이 가장 많았죠. 박 작가는 “회색 도시란 말이 딱 맞네요”라고 덧붙였죠.

84색 크레용과 색깔의 종류

다음 작품 앞에서 박 작가는 체험평가단에게 알고 있는 색깔의 수가 몇 개인지 물었습니다. “빨강, 파랑, 검정….” 많아 봤자 20개를 넘지 못했습니다. “색깔의 종류가 몇 가지라고 생각하나요?”라는 질문에 서영 학생은 “50가지 정도?”라고 답했죠. 이런 체험평가단은 ‘84색 드로잉’을 보며 놀라워했어요. 84색 크레용으로 칠한 84개 도안을 이어붙인 작품이죠. ‘영국 황실 파란색’, ‘빨강 루비색’ 등 처음 보는 크레용 색깔들도 많았어요. 박 작가는 “크레용 재료의 종류나 칠할 때의 질감과 광택 등에 따라 파란색도 울트라마린, 사파이어 파랑 등 여러 가지로 나뉘어요”라고 설명했죠.

파랑뿐만이 아닙니다. 검은색의 가짓수는 55개, 흰색은 78개가 넘죠. 박 작가는 ‘2014년 검은색’과 ‘2016년 흰색’이란 작품에 이를 나타냈는데요. 유명 물감 제조사들이 판매 중인 검은색·흰색 물감으로 캔버스를 칠한 뒤 이어 붙인 작품입니다. 똑같은 흰색인데 크렘니츠 화이트, 티타늄 화이트 등 종류가 다양한 이유는 뭘까요. “칠했을 때의 느낌이 모두 다르니까요. 화가 루시안 프로이트는 피부의 창백함을 나타내기 위해 크렘니츠 화이트를, 제니 샤빌은 붉은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웜 화이트를 즐겨 사용했다는군요.”

빛 아래서 바라보기, 섞어서 즐기기

전시장 안에는 또 다른 작은 전시장이 있습니다. ‘파빌리온’이란 이름의 빛의 전시장이죠. 빨간색·녹색·파란색 조명과 함께 형광 램프의 일종인 블랙라이트가 설치된 곳인데요. 각각의 빛을 독립적으로 볼 수도 있고, 두 가지 이상의 빛을 섞어 볼 수도 있죠. 빨강·초록·파랑 조명을 동시에 켜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태양광 같은 흰색 빛이 탄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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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84개 크레용으로 칠한 84개 도안을 이은 작품 ‘84색 드로잉’
2 서울의 대표색은 뭘까 생각해 보게 하는 ‘2016년 1월 1일 등나무 근린공원에서’
3 ‘언젠가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어떠한 이유로’는 명도와 채도가 낮은 색으로 구성돼 보는 눈이 편안하다.
4 ‘파빌리온’에 사용된 초록·파랑·빨강 광원과 블랙라이트.

체험평가단은 “책에서 보던 것을 실제로 경험했다”며 신기해했습니다. 파빌리온이 설치된 이유는 뭘까요. “내리쬐는 빛의 색깔에 따라 피부·눈동자·머리카락·옷·가방 등의 색이 전부 변하기 때문”이랍니다. 녹색 빛을 켜니 체험평가단이 들고 있던 갈색 가방이 보라색으로 변하고, 빨간 빛을 켜니 입고 있던 파란 옷이 자주색으로 순식간에 바뀌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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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박미나 작가와 체험평가단이 전시 이름과 같은 ‘빨주노초파남보’ 계단 앞에 섰다.

‘언젠가 어디에서 무엇을 어떻게 어떠한 이유로’란 작품은 열 손가락으로 다 셀 수 없을 만큼 다양한 색으로 채색됐는데도 보는 눈은 편안했죠. 그 비결은 “명도와 채도가 낮은 색깔로만 칠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색깔과 색깔이 섞이면 명도와 채도가 낮아집니다. 작품에 사용된 색은 모두 여섯 가지 이상의 색이 혼합된 것들이죠. 반면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원색(原色)인 빨강·노랑·파랑은 명도와 채도가 높습니다.

박 작가는 왜 톡톡 튀는 원색 대신 이런 색들을 골랐을까요. “미술 선생님께서 세 가지 이상 색을 섞지 말라고 강조하셨어요. 거무죽죽한 게 보기 싫단 이유였죠.” 박 작가는 이 작품에서 금기를 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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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색의 뜻과 속성에 대해 설명하는 박미나 작가.
7 색에서 느껴지는 감정을 기호들로 표현한 작품 ‘ㅛㄴㅉ>ㄹㅎ?’. 8‘라마라마딩동’. 사회·문화·일상에 관한 이야기들을 색깔 조각으로 표현했다.

결과는 어떨까요. 다양한 색이 사용됐지만 조화로운 느낌을 주죠. “예쁜 색, 덜 예쁜 색 구분하지 마세요. 하나만 봤을 땐 심심해도 모아놓고 보면 이렇게 아름답잖아요.”

담벼락 색깔 관찰하기, 여러 종류의 색깔 맛보기, 색깔마다 다른 질감·느낌 이해하기, 빛 아래서 색깔 관찰하기, 흩트려 보기, 모아서 보기…. 전시장에서 찾은 색깔 보는 법은 다양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방법으로 색깔과 만나고 있나요. 종이에 색연필을 칠하는 게 전부였다면 이젠 덧칠도 하고 창가에서도 보고 멀리서 지긋이 바라보기도 하세요. 몰랐던 색 안의 색을 발견하는 것. 그게 형형색색 각양각색 색깔의 진짜 매력일 테니까요.

소중 학생기자들의 체험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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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서울 충암초 5) 학생기자 ★★★★★

“처음엔 벽을 메운 색깔의 띠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칙칙한 느낌은 분명했다. 이게 서울의 색깔이라니.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색깔에 대해 이번 전시를 통해 처음 호기심을 갖게 됐다. 가장 신기했던 체험은 ‘파빌리온’이었다. 빛과 색이 섞이고 빛과 빛이 섞여 만들어지는 변화를 내 방 형광등 불빛 아래선 느끼기 힘드니까. 색에 관한 새로운 체험을 선물해준 귀한 시간이었다.”

윤서영(서울 개롱초 5) 학생기자 ★★★★

“이전까지 ‘색’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 머릿속엔 몇 가지 색깔밖에 떠오르는 게 없었다. 색을 관찰하고 공부한다는 것에 시큰둥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내가 볼 기회조차 없었던 다양한 색들과 마주했다. 또 ‘빛의 종류에 따라 볼 수 있는 색깔이 변한다’, ‘색깔을 섞어도 아름다운 색이 탄생할 수 있다’ 등 그동안 몰랐던 색깔에 관한 사실도 알게 됐다. 색에 대한 선입견을 깨준 고마운 전시다.”

글=이연경 인턴기자 ok76@joongang.co.kr, 사진=장진영 기자 artjang@joongang.co.kr, 동행 취재=윤서영(서울 개롱초 5)·김상훈(서울 충암초 5) 학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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