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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임문영의 호모디지쿠스

알파고와 대결 이세돌, 터미네이터에 맞선 ‘존 코너’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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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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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의 대국을 마친 후 미소 짓는 이세돌. [뉴시스]

지금 50대들은 1976년 프로권투 선수 무하마드 알리와 프로레슬러 안토니오 이노키의 이종(異種) 간 경기를 처음 보았다. 권투와 레슬링이 경기를 벌이는 것이 신기했던 그들은 40년이 지난 지금, 사람과 기계가 바둑을 두는 모습을 보게 됐다. 40년 전 경기는 사람끼리 무승부였지만, 이번 경기는 사람이 기계에 4대 1로 패했다.

빅 이벤트였다. ‘알파고’와 이세돌의 바둑대결은 많은 사람에게 인공지능의 어마어마한 힘을 실감하게 했다. 30여 년 전 영화 터미네이터가 보여준 기계의 반란과 미래 인류의 불행이 시작되는 것이 아닌가 해서 이세돌을 영화 속 반군 지도자 ‘존 코너’에 빗대 ‘돌 코너’라고 부르는 네티즌도 있다. 무언가 음흉한 생각을 하고 있을 듯한 이 지능 기계의 출현은 유전자조작 생명체와 함께 인간이 불경스럽게도 신에게 도전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움을 몰고 왔다.

최근 화제가 된 유발 하라리의 책 『호모 사피엔스』는 인간이 이미 신이 되어 가고 있다고 말한다. 진화생물학자인 리처드 도킨스가 『만들어진 신』에서 “신은 만들어진 것”이라고 주장한 데서 한 발 더 나간 선언이다. 이미 네티즌들은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모든 것을 해낸다고 해서 구글을 전지전능한 ‘구글신’으로 부르기도 한다.

정말 인간은 신이라도 된 걸까. 무인자동차가 도로를 달리고 드론이 하늘을 정찰한다. 보스턴 다이내믹스에서 만든 사족보행의 견마로봇 ‘빅독(Bigdog)’이 산악작전을 수행하고, 빅데이터가 개인의 모든 것을 알아내고 알려주는 세상이 이미 와 있음을 사람들은 목격하고 있다. 게다가 기계가 인간을 이기는 속도는 점점 빨라졌고 완성도도 높아졌다. 체스에서 처음 인간을 이긴 ‘딥블루’(1997), 퀴즈쇼에서 우승한 ‘왓슨’(2011)에 이어 바둑에서 인간을 이긴 알파고(2016)의 등장은 미래를 상상할 수 없는 세상으로 바로 데려갈 것만 같다. 참 경이롭다.

하지만 생각해 보자. 알약 하나만 삼키면 몸속의 모든 내장기관을 촬영해 준다는 알약 카메라는 왜 아직 나오질 않는가. 건강검진 때마다 수면내시경과 일반내시경 사이에서 갈등하게 만드는 고역스러운 내시경 카메라를 알약 크기 하나로 해결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수십 년 전 들었던 것 같다. 김정은이 벌벌 떤다는 한반도 최고의 전략무기는 B-52 폭격기라고 한다. 52년 처음 등장해 반세기도 더 지난 기종이다. 그런데 이 비행기, 아직도 현역이다. 최첨단 전투기보다 더 막강한 전략무기다.

2000년대 초 사무실에서 종이가 모두 사라질 것으로 보았던 추측은 틀렸다. 눈에 모든 정보를 담아 보여주고 인터넷과도 연결된다는 구글 글라스라는 안경은 소개된 지 수년째지만 아직도 대중적인 상품이 아니다. 날아다니는 보드라며 떠들썩했던 호버보드는 아예 잦은 폭발사고로 사라질 운명이다. 사람들의 명함에는 대부분 팩시밀리 전화번호가 찍혀 있고 고생대(古生代)에 생성됐다는 석유와 석탄이 아직도 지구 최고의 에너지원이다. 세상은 여전히 바뀌지 않거나 낡고 오래된 것들의 토대 위에 있다.

『안티프래질』을 쓴 나심 니콜라스 탈레브는 “사람을 달에 보내고 나서도 30년 넘게 여행가방에 바퀴를 달 생각을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하늘에 비행기를 날리고, 달에 사람을 보내고 나서도 한동안 무거운 여행 가방을 들고 다니느라 땀을 뻘뻘 흘려야 했던 것이다.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저스의 명언이 있다. “10년 후에도 바뀌지 않을 것에 주목하라”는 것이다.

인공지능이 바둑을 이겼다고 해서 세상의 종말이 온 것처럼 요란한 것은 지나치다. 한국 바둑이 무너졌다거나 인간의 자존심이 짓밟힌 것처럼 보는 것도 엉뚱하다. 공자도 괴력난신(怪力亂神)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괴이한 힘과 초자연적인 것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상덕치인(常德治人). 평상의 태도로 내면의 덕을 쌓는 사람의 일에 꾸준할 따름이다. 마치 이세돌처럼.

임문영 인터넷 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