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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유승민 이렇게 선거운동 하고 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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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동구 각산역 앞에서 출근길 시민들에게 인사를 하는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붉은색 점프)

날도 추운데 뭣 하러 왔어요. 아무 말도 안 할테니 그냥 가세요.”

꽃샘추위가 심술을 부리던 지난 3월 9일 아침 대구 동구 지하철 1호선 각산역 2번 출구 앞. 출근길 시민들의 손을 마주 잡고 인사를 건네던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대구 동을)은 기자를 보더니 손을 저었다.

아침 8시 시작된 그의 선거운동 현장을 찾은 기자는 길거리 인터뷰를 시도할 요량이었다. 하지만 유 의원은 “나는 절대 입을 안 떼요”라며 고개를 저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배신의 정치’로 지목한 데다 영남권 다선 의원 교체론과 맞물려 그가 공천을 받을 수 있을지 여부는 정치권의 관심사로 남아 있다. 하루 뒤인 3월 10일엔 박 대통령이 창조경제혁신센터 방문 등 대구 지역 3개 행사를 소화할 예정인 터라 유 의원 심경을 들어보려고 인터뷰를 시도한 거였다.

그러나 그는 입에 자물쇠를 채운 듯했다. 대통령의 대구 방문이나 자신의 공천 문제에 연결될 수 있는 얘기는 물론이고 유권자들의 동향이나 반응에 대해서도 함구했다. 이리저리 대화를 유도했지만 허사였다. 선거에 영향을 주거나 정치적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하지 않으리라 작심한 것 같았다.

말을 더 붙이는 것도 민망한 터라 속절없이 우두커니 옆에 서 있는 기자에게 그는 “고생하지 말고 돌아가소. 한 마디도 들을 게 없을 거요”라고 말했다.

밀고당기는 와중에 반야월에서 안심 방향으로 달리던 시내버스가 경적을 울렸다. 버스 운전기사가 유 의원을 알아보고는 클랙션을 지긋이 누른 것이다. 기사를 향해 손을 들어 감사의 뜻을 표한 유 의원은 “승용차에서도 손을 흔들어주는 분들이 있는데 명함을 돌리느라 미처 못 보고 지나치는 경우도 있다”며 기자에게 말을 건넸다.

조금 뒤 승용차를 몰고 도심으로 향하던 30~40대 직장인은 길가에 차를 세우고 조수석 창문을 내리더니 “의원님, 좋은 분인 거 압니다. 힘내세요”라고 응원했다. 또 어떤 30대 부부는 승용차에서 내려 유 의원에게 기념촬영을 요청하는 장면도 연출됐다.

그렇다고 모든 주민들이 유 의원에게 호감을 보인 건 아니었다. 체감온도가 뚝 떨어진 이날 호주머니에 양 손을 깊숙히 꽂은 주민들 중에는 유 의원 일행이 내미는 명함을 외면하거나 아예 유 의원을 빙 둘러가는 사람도 여럿 있었다. 유 의원이 내미는 두 손을 얼떨결에 잡으면서 시선을 모로 돌려 피하는 중년 여성도 눈에 띄었다.

새누리당을 상징하는 붉은색 점퍼에 당 로고와 유승민 이름 석 자를 크게 새긴 그의 행색이 등굣길 초등학생에겐 호기심을 자아낸 듯했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3, 4학년 쯤 돼 보이는 여자 어린이는 행인들에게 허리 굽혀 인사하는 유 의원에게서 좀처럼 눈을 떼지 못했다.

“아이가 방송 등을 통해 의원의 얼굴을 알아 보는 게 아니냐”는 기자의 말에 그는 “그게 아니라 다 큰 어른이 이런 옷차림을 하고 지나는 시민과 차량을 향해 인사하는 모습이 동심에는 신기하고 낯설게 비쳐질 것”이라고 받았다.

이렇게 시간이 거의 한 시간 정도 흐를 즈음 “잘 알지 않느냐. 보다시피 나는 말을 하지 않아요. 이제 그만 돌아가시죠”라는 말과 함께 그는 다음 장소로 향했다.

유 의원은 요즘 언론과의 접촉을 사실상 끊은 상태다. 그의 대구 동을 선거사무소를 찾는 언론인들도 헛걸음하기 일쑤라고 한 측근이 전했다.

이 측근은 “아침 출근길의 유권자들에게 명함을 돌리는 등의 예비후보 활동 외에 정치적으로 옮겨질 말과는 담을 쌓았다”면서 “될 수 있으면 기자를 만나지 않는 등 언론을 멀리한다”고 강조했다. 유 의원의 최근 발언이 궁금해 강연자료나 축사 원고가 있느냐고 묻자 다음과 같은 답이 돌아왔다.

“국회의원 자격으로 각종 모임의 초청연사로 행하던 축사나 강연도 예비후보 등록(2월 1일) 후에는 선을 그었다. 주최 측에 폐를 끼칠 수도 있고, 또 튀는 모습으로 비쳐지는 걸 원치 않아서 그렇다.”

새누리당 공천 작업이 고빗길로 치닫는 요즘 유 의원은 자신에게 쏠리는 긍정ㆍ부정의 모든 시선을 거부하는 듯하다. 대구 팔공산 갓바위를 선거구 안에 둔 유 의원의 ‘묵언수행(默言修行)’은 정치적 생사의 칼날 위에 선 그의 절박한 처지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묵언수행의 끝은 어딜까.

박성현 기자 park.sung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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