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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귀향’ 프로듀서 겸 류스케 역 배우 임성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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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임성철. [사진=STUDIO 706]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소녀들의 참혹한 실상을 다룬 ‘귀향’(2월 24일 개봉, 조정래 감독)이 관객 260만 명을 돌파했다. 조정래 감독이 위안부 할머니 후원 시설인 ‘나눔의 집’과 인연을 맺고 영화화를 꿈꾼 지 14년 만에 이룬 성과다. ‘귀향’은 투자사에 냉대받고 크라우드 펀딩 등으로 제작비를 마련하는 힘겨운 시간을 겪었다. 그 과정에 조 감독에게 큰 힘이 된 이가 있었다. 바로 임성철(40) 프로듀서다. 2010년 조정래 감독을 처음 만나 프로듀서·배우·스토리보드 팀원으로 참여한 이다. 그는 제작이 미뤄지고 스태프들이 하나둘 떠나갈 때도 감독을 향한 깊은 신뢰로 7년을 기다렸다.

제작비 마련에 지인까지 총동원 독립군처럼 당당하게 빌렸죠

“많은 사람들이 내게 포기하고 싶은 순간이 있었냐고 묻더군요. 그런 순간은 없었어요. 2010년 위안부 할머니들을 처음 만나 이야기를 들었던 날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도대체 그 시간을 어떻게 견뎠을까. 아무것도 몰랐던 제가 바보처럼 느껴졌죠. 그 뒤로 제겐 ‘귀향’밖에 없었어요.”

‘귀향’을 만나기 전 그는 그림을 그렸다. 20대에 대학(수원대 미술 전공)을 졸업하고 미술학원 강사로 일했다. 스물일곱 살에 제대한 후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어머니 뜻에 따라 사역자로 살지 화가로 살지 고민했다고 한다. “당시 같은 꿈을 많이 꿨어요. 하나님은 제게 선한 사업가가 되라고 했죠. 문화 콘텐트 관련 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배우를 꿈꿨어요. 중·고등학교 때부터 교회 연극을 죽 해 왔거든요. 그러다 알고 지내던 배우 김병춘을 찾았고, 우연히 조 감독을 만났습니다. 그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두 시간 동안 ‘귀향’ 이야기만 했어요. 내 얼굴이 일본군 역으로 적격이라면서. 그렇게 그의 마수에 걸려든 거죠(웃음).”

그는 스태프가 부족한 탓에 프로듀서를 겸하게 됐다. “프로듀서 역할을 잘 알았다면 못했을 겁니다. 무식하니 용감했던 거죠.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제작비를 마련하는 사람이더라고요.” 처음엔 200명 넘는 지인에게 전화로 구걸하듯 사정했다. 하지만 소용 없었다. 나중엔 독립 자금을 모으는 독립군처럼 당당하게 빌렸다. “배관공인 형, 카센터 사장님, 헬스 트레이너 형 등 인맥을 총동원해 10억 넘는 제작비를 댔어요(웃음).” 완성되지 못할 수도 있는 영화에 투자하게 만든 비결이 뭐였을까. “한참 기도하고 나면 연락할 사람이 번뜩 떠올랐습니다. 하늘에서 먼저 그들의 마음을 만져 주신 게 아닐까 싶어요. 간증하는 것 같죠? 하지만 정말 그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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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귀향` 스틸컷]

그는 ‘귀향’에서 악독한 일본군 류스케로 출연했다. 실제 그는 극 중 모습과 달리 핼쑥해 보였다. 촬영 당시 난치성 희귀 질환인 쿠싱증후군을 앓아 많이 부어 있었다고 한다. 쿠싱증후군은 뇌하수체에 종양이 생기는 질환으로 살이 찌고 골밀도가 90대 수준으로 낮아진다.

“그땐 쿠싱증후군인 줄 몰랐다가 촬영이 끝난 2014년 6월 말에 입원했죠. 미리 알았다면 출연하지 못했을 텐데 늦게 알아서 다행이에요.” 그는 웃으며 말했다. “천성이 낙천적이에요. 어떠한 고난도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하죠.” 심신이 지쳐가도 조 감독 곁을 지킨 이유다. 그는 ‘귀향’을 향한 관객의 뜨거운 호응에 담담한 기분이라고 했다. “사실 기쁨보다는 죄스러운 마음과 책임감이 앞서요. 위안부 할머니들의 상처를 고스란히 전할 수 있을까 해서요. 투병할 때도 제 아픔은 그분들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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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귀향` 스틸컷]

이내 그는 눈시울이 붉혔다. “‘귀향’을 스무 번 넘게 봤는데도, 주제곡 ‘가시리’가 흐르며 극 중 정민(강하나)이 아버지를 떠올리는 장면에선 늘 눈물이 납니다. 사랑한 이성이라곤 아버지밖에 없을 소녀였을 테니까요. 후원자 7만5000여 명의 힘으로 만들어진 ‘귀향’이 그분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길 진심으로 바랍니다.”

글=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사진=라희찬(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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