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아버지는 대장, 아들 야장…1만도 화로 옆 땅땅 쇳소리 “양평·파주서도 찾아 오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4면

기사 이미지

지난달 25일 오후 불광대장간에서 60년 경력의 대장장이 박경원씨(오른쪽)와 아들 상범씨가 쇠멧질을 하고 있다. [사진 김현동 기자]

서울의 현대적 개발은 1966년 ‘서울도시기본계획’이 발표되면서 시작됐다. 이후 남산 1·2호 터널, 제3한강교(한남대교), 강변북로 등 속도를 중시한 시설들이 들어서면서 서울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그사이 역사와 전통이 서려 있던 장소들은 하나둘씩 사라졌다. 반세기 동안 꿋꿋이 제 모습을 간직해온 장소, 그리고 그곳을 지켜온 사람들의 땀·눈물·웃음을 ‘서울은 깊다’ 코너에 담는다.

서울은 깊다 ① 대조동 51년 된 불광대장간

‘땅 땅 땅’. 쇠메(쇠망치)가 모루(작업용 쇠받침대)에 부딪치자 청랑한 쇳소리가 울려 퍼진다. 쇳소리가 만들어내는 리듬과 박자는 행진곡처럼 경쾌하다. 쇠뭉치를 자르고, 두드리는 손놀림이 날래다. 화로에 넣고, 빼고, 다시 두드리고… 노인의 머리에서 땀방울이 뚝 뚝 떨어진다. ‘불광대장간’의 50여 년 주인 박경원(78)씨다.

기사 이미지

서울 은평구 대조동에 50년 넘게 자리 잡고 있는 ‘불광대장간’. [사진 김현동 기자]

지난달 25일 오후 찾아간 서울 은평구 대조동 16㎡의 좁은 공간은 후끈했다. 무쇠도 녹이는 1만 도의 화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 때문이었다. 오전 7시부터 오후 7시까지 하루 1만 회가 넘는 쇠멧질을 받아내는 모루와 이곳에서 태어난 호미·낫·쇠스랑·도끼 등 각종 연장들로 가득했다. 10여m를 격한 바깥을 보니 첨단 내비게이션을 장착한 자동차가 질주하고 휴대전화를 손에 쥔 사람들이 바삐 오가고 있다. 반면 오래전에 시간이 멈춘 듯 박씨와 아들 상범(48)씨는 이곳에서 김홍도의 풍속화 ‘대장간’에 나오는 대장과 야장처럼 쇠를 부리고 있다. 쇠를 잡는 대장은 박씨, 쇠를 내려치는 야장은 상범씨 역할이다.

기사 이미지

불광대장간에서 만들어진 모든 제품에는 ‘불광’이라는 낙관이 찍힌다. [사진 김현동 기자]

박씨가 손에 망치를 잡은 건 올해로 66년째다. 강원도 철원이 고향인 박씨는 “열두 살 때 6·25전쟁 때문에 고향을 떠나 신갈(용인)로 피란을 왔다가 국수 한 그릇을 먹을 수 있다는 말에 대장간 허드렛일을 한 게 시작”이라고 기억했다. 휴전 후 미아동에서 본격적으로 일을 배웠고 ‘불광대장간’ 간판을 내건 건 65년부터다. 당시 한창이던 전후 복구사업과 개발사업이 맞물리면서 건축 연장을 찾는 수요가 많았다고 한다. 박씨는 “그때는 여기뿐 아니라 삼성동, 구파발, 아현동, 서울역 등 곳곳에 제법 규모가 큰 대장간들이 산재해 있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80년대 이후 공장에서 찍어내는 값싼 도구들이 쏟아지면서 쇠메 소리는 하나둘 사라져갔다.

불광대장간도 한때 1500만원에 달했던 월 매출이 700만원대로 떨어졌다. 그래도 문을 닫지 않은 건 ‘품질’ 덕분이란다. 박씨는 “양평이나 파주에서 찾아와주는 손님들 덕분에 버틴다. 그런 분들이 찾아오면 ‘야, 이건 그만둘 수 없겠다’는 생각과 함께 기운이 솟는다”고 말했다. 상범씨는 “모든 제품에 ‘불광’이라는 두 글자 낙관을 선명하게 새기는 건 무한 책임을 진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박씨의 대장장이 인생에서 가장 아끼는 연장은 20여 년 사용한 ‘망치제작용’ 정이다. 그런데 15년 전 상범씨의 실수로 정의 한쪽 끝이 부러졌다고 한다. “너무 가슴이 아파 그날 밤을 꼬박 새웠다”는 박씨는 여전히 그 못 쓰는 정을 연장도구에 넣어두고 있다.

몇십 년 단골손님이 많지만 최근 들어서는 도시농업이 인기를 끌면서 젊은 층도 적지 않다고 한다. 이날 대장간을 찾은 최혜영(29·여)씨는 “아파트 앞 텃밭에서 쓸 호미를 사러 왔다”며 1만5000원을 주고 호미 3개를 사갔다. 아웃도어용품을 주문하는 손님들도 있다.

상범씨는 군 제대 후 잠깐 아버지의 일을 돕다가 어느덧 20년이 흘렀다고 했다. 그는 “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 이게 ‘블루오션’이라는 생각과 전통 기술자라는 자부심도 있다”며 “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3대째 가업으로 이어주면 좋겠다”고 했다. “바람은 딱 하나죠. 여기서 계속 대장간을 하면서 또다시 20년이 지나도 물건 사러 오는 손님들 맞는 거죠.”

글=유성운 기자·김준승 인턴기자(동국대 4) pirate@joongang.co.kr
사진=김현동 기자

※시리즈 제목 ‘서울은 깊다’는 역사학자 전우용의 저서 『서울은 깊다』(돌베게)에서 차용했습니다. 사용을 허가해주신 저자와 출판사 측에 감사드립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