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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청년행동, 세대 이기주의 맞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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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이상언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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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언
사회부문 차장

총선을 37일 앞에 둔 7일 ‘고령자 공동행동’이라는 전국 조직이 출범했다. 지역 노인회의 연합체적 성격을 가진 단체다. 이들은 회견을 열어 각 정당과 총선 후보들을 향해 여섯 가지 요구사항을 제시했다. 조직 대표들은 이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하는 후보들에게 고령자 표를 몰아주겠다고 선언했다. 6대 요구사항은 노인 복지정책 결정 과정에 고령자 대표 참여, 국내총생산(GDP) 1% 수준의 노인 재취업 및 건강 교육 예산 확보, 약값 본인 부담금 절반 지원, 공공임대주택 노인 배당 확대, 최저임금 1만원 보장, 기업체 사내 유보금을 이용한 노년층 일자리 확보다. 이 조직은 요구를 관철시키기 위한 집회를 열기로 했다. 후보들을 경로당이나 노인대학으로 불러 토론회를 갖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위의 글은 100% 가상이다. 고령자 공동행동이라는 조직은 없다. 반면 아래의 내용은 실제 상황이다. ‘대학생·청년 공동행동 네트워크’라는 조직이 7일 발족 기자회견에서 공개한 것이다.

서울대·연세대·고려대 등 10개 대학의 총학생회와 청년단체 ‘청년하다’로 구성된 이 조직은 4·13 총선용으로 6개 ‘공동의제’를 제시했다. 학내 의사결정 기구에 학생 참여 보장, GDP의 1% 수준으로 고등교육 재정 확보, 고지서상의 반값 등록금, 공공임대주택 청년 배당 확대, 최저임금 1만원 보장, 사내 유보금 풀어 청년 일자리 확보가 그 내용이다. 이를 관철시키기 위해 26일 서울 도심에서 집회를 갖고 선거 전까지 각 대학의 소속 선거구에서 출마한 후보와 토론회를 열어 그들의 정책을 검증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이 낸 발표문의 그 어느 곳에도 경제적 불평등을 포함한 사회 정의의 문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정책과 제도의 문제 등 우리 사회의 보편적 당면 과제에 대한 도전·개선 의지는 담겨 있지 않다. 이념형이 아닌 생활형 이슈에 운동력을 집중하겠다는 뜻으로 풀이할 수도 있지만 청년·대학생의 정치 참여에 거는 기성세대들의 기대와는 꽤 거리가 있는 행보다.

이들은 발표문에 ‘자칫 본 행동이 세대 이기주의로 비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청년 문제는 청년 세대만의 문제로 한정 지을 수 없기에… 청년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한 마중물이 되고자 합니다’고 썼다. 이것이 세대 이기주의가 아니라면 가상의 조직 ‘고령자 공동행동’의 요구도 ‘노인 문제는 노인 세대만의 문제가 아니다’는 이유로 집단 이기주의가 아니라고 봐야 마땅할 터이다.

이상언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