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선도부 폐지…인천시교육청의 실험

중앙일보

입력

 

기사 이미지

[사진 인천 서운고 제공]

인천시 계양구에 있는 서운고등학교는 매주 월요일마다 만화 캐릭터인 곰돌이 '푸우'가 교문 앞에서 학생들을 맞는다. 등교하는 학생들을 한 명씩 따뜻하게 안아주며 "힘내라"고 격려도 한다. '푸우'의 정체는 바로 학생회 소속 선도부 학생들. 다른 학생의 복장과 두발·지각을 잡아내는 예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이 학교에 푸우가 등장한 것은 지난해 봄부터다. 매일 지친 모습으로 등교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측은했던 학생회에서 아이디어를 냈다. "월요일 아침만이라도 웃으면서 등교할 수 있도록 해주자"는 의미에서 단속이 아닌 프리허그를 계획했다.

기사 이미지

[사진 인천 서운고 제공]

올해부터는 아예 선도부를 폐지하기로 했다. 대신 학교 안전 캠페인이나 추첨을 통해 간식을 선물하는 등의 이벤트를 열기로 했다.

서운고 학생부장 김용진 교사는 "처음엔 어색해하던 학생들이 지금은 밝게 웃으며 먼저 '허그'를 한다"며 "교내 분위기도 훨씬 좋아졌다"고 말했다.

인천지역 중·고교에서 선도부가 사라지고 있다. 선도부는 교사와 함께 등굣길 교문 앞을 지키며 두발·교복·지각 등을 단속해 벌점을 주는 학생회 소속 학생들. '학생이 학생을 단속'하는 만큼 위계·권위 문화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등 비판의 목소리도 많았다.

선도부가 사라진 것은 지난해부터다. 이청연 인천시교육감이 취임 1주년을 맞아 실시한 간담회에서 많은 학생들이 "선도부 폐지"를 건의했다. "학생이 학생을 단속하는 선도부는 권위주의의 산물이고 요즘 시대 상황에도 맞지 않는다"는 주장이었다. 교육청은 생활지도 교사들과도 협의를 했다. 교사들의 대부분도 "선도부가 꼭 있어야 할 필요는 없다"고 답변했다.

시교육청이 인천지역 중·고교 224곳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도 16.1%인 36개 학교가 선도부를 운영하지 않고 있었다. 중학교(130곳)의 경우 15.3%인 20개 학교가, 고등학교(94)는 17%인 16개 학교가 선도부를 폐지했다.

이에 시교육청은 지난해 말 선도부를 폐지하고 상벌점 제도를 자율적으로 개선하라고 각 학교에 권고했다.

선도부 대신 ‘학생안전지킴이’ 등 각종 캠페인 활동이나 ‘학생회 아침 맞이 인사’ 등 이벤트를 제안했다. 또 생활지도도 담임교사 중심으로 이뤄지도록 요청했다. 두발 제한 등 학교 규정도 학생 자치기구인 대의원회가 학생들 의견을 수렴해 결정하도록 했다. 상·벌제도 상점 위주로 운영해 학생들의 자존감을 회복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시켰다.

당장 인천 학익여고와 계양고 등 상당수 학교들이 선도부를 없애고 학생들과 상의해 상벌점 제도를 바꿨다.

기사 이미지

[사진 인천 서운고 제공]

등굣길 교문에는 교사나 학생회 간부들이 단속이 아닌 '화이팅' '힘내라' 등 격려의 인사말을 건넨다. 벌점이 많은 학생에겐 '학생자치법정'에 남겨 반성문 쓰기, 담임교사와 편지 주고받기 등을 하도록 했다.

김진철 시교육청 대변인은 "아직 정확한 통계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선도부 폐지에 공감하는 학생과 교사들이 많은 만큼 동참하는 학교들이 많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선도부를 폐지하면 혼란이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한 학교 관계자는 "선도부를 폐지하면 당장 생활지도에 대한 교사들의 부담감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청연 교육감은 "민주시민 육성은 교과서와 시험이 아니라 민주적 학교생활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이라며 "학생과 교사 등 학교 구성원과의 지속적인 소통을 통해 교육 문화를 개선을 하겠다"고 말했다.

인천=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