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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 인생 싫어 2억 연봉 토사장 된 20대 "난 늘 불안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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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나는 대한민국 상위 3%에 들어가는 ‘억대 연봉자’다. 사람들은 나를 ‘금수저’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사실 나는 ‘토사장’(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 운영자)이다.

불법 도박 2030세대 20명 인터뷰
18세에 도박 발 들인 민수씨
1년 만에 회원모집책으로 유명세
월 1000만원 수입, 유흥비 펑펑

2011년 8월 처음으로 불법 스포츠 도박에 발을 들였다. 당시 내 나이는 열여덟이었다.

평소 어울리던 친구가 “축구 경기 승패를 맞혀 1만원으로 70만원을 벌었다”고 말해 순간 혹했다. 처음엔 밥값이나 벌자고 게임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여러 경기의 승패를 맞혀 25만원을 땄다. 점점 도박에 재미가 붙었다. 누군가 ‘총판’(회원 모집책)을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했다. 인터넷에 올라온 총판 모집 글을 찾았다. 사이트에 가입하자 걸려온 전화에 대고 “총판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렇게 2012년 5월 총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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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판이 하는 일은 간단했다. 인터넷 개인방송을 통해 회원에게 일명 ‘픽’(예측한 경기 결과)을 주는 게 다였다. 회원이 잃은 돈의 30%는 내 통장으로 입금됐다. 난 주로 영국 축구에 대한 픽을 줬다. 50명에 불과했던 회원은 6개월 만에 150명으로 늘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내게 매달 800만원의 돈이 들어왔다.

회원이 400명으로 불어나자 유명 사이트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해왔다. 외제차와 집을 제공하는 조건이었다. 자가용 키가 손에 쥐여졌다. 1억원이 훌쩍 넘는 BMW 7시리즈였다. 198㎡(60평)의 오피스텔엔 모든 것이 갖춰져 있었다. 회원은 계속 늘었고 통장엔 월평균 1000만원이 넘는 돈이 꼬박꼬박 쌓였다. 강남의 유명 술집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하루에 술값으로 200만~300만원을 썼다. 돈을 더 벌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지난해 1월 평소 알고 지내던 개발자에게 사이트 운영권을 샀다. 한 달 사용료는 약 300만원. 사이트 초기 운영금은 ‘전주(錢主)’가 5000만원을 투자했다. 그렇게 연 사이트는 매달 2000만~4000만원의 수익을 냈다. 연봉으로 치면 1억~2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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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압수한 불법 인터넷 도박 운영자의 수퍼카.

하지만 토사장이 된 뒤 나의 하루는 불안감의 연속이었다. 언제 경찰에 단속될지 몰라서다. 신고 포상금이 1000만원이라 작은 흔적만 남아도 경찰의 표적이 된다. 결국 최근엔 경찰의 집중 단속에 사이트를 닫았다.

평범하게 돈을 벌어 보려고도 했다. 음식점에서 하루 10시간씩 홀서빙을 했다. 하지만 한 달 뒤 손에 쥔 건 150만원이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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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스포츠토토 사이트 사진.

어렵게 인터뷰에 응한 김민수(23·서울·가명)씨는 “열심히 공부해서 대학 나오고 취업해도 월급 200만원이 전부다. 나도 불법을 저지르고 싶지 않지만 ‘흙수저’에서 벗어나려면 이 길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김씨의 사례는 장기 불황 속 꿈을 잃은 젊은 세대의 어두운 단면 중 하나다. 실제로 불법 도박이 청년들 사이에서 암세포처럼 빠르게 번지고 있다. 일확천금을 노리고 도박에 손을 댔다 수천만원을 탕진하거나 아예 불법 사이트 운영에 가담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취업을 하지 않고 도박을 직업으로 삼는 기형적인 행태도 벌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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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특별취재팀이 지난 1월부터 두 달 동안 사행성 불법 도박에 빠진 청년 20여 명을 만나 인터뷰한 결과가 그랬다. 이들은 “200만원 받는 월급쟁이로 평생 살 바엔 도박으로 큰돈을 벌어 ‘금수저’로 인생 역전을 하고 싶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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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부천에서 만난 신창민(32·가명)씨는 자신을 ‘양방쟁이’라고 소개했다. 20여 개 불법 사이트에 베팅을 하고 여기서 수익을 얻는 직업 토토 유저를 말한다. 지난해 1월부터 ‘양방’을 해 온 그는 메모지에 양방 베팅 방식을 이렇게 설명했다.

‘A팀, 승, 1.6 배당, 베팅금액 100만원. 적중금 160만원’(국내 불법 사이트)

‘A팀, 무, 10 배당, 베팅금액 16만원. 적중금 160만원’(해외 사이트)

‘A팀, 패, 32 배당, 베팅금액 5만원. 적중금 160만원’(해외 사이트)

신씨는 “전체 베팅금액은 121만원이지만 따는 돈은 무조건 160만원이라 마진이 39만원이나 되는 장사”라며 “오후 1시부터 이튿날 오전 5시까지 국내외 스포츠 경기에 시간차를 두고 베팅한다”고 말했다. 평일엔 하루 1000만원, 주말엔 하루 2000만원씩 돈을 건다. 그가 하루에 따는 돈은 최대 150만원. 그는 “절반은 전주에게 주고 나머지는 내가 갖는다”고 했다. 이곳에선 신씨와 같은 청년 20명이 합숙하고 있다.

강원도 춘천에 사는 정모(25)씨는 불법 도박 중 하나인 인터넷 사다리 게임으로 돈을 벌기 위해 대학까지 그만뒀다. 그는 “10억원만 따면 평생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말했다. 정씨는 1000만원짜리 적금을 깼지만 4개월 만에 모두 잃었다. 도박 자금 마련을 위해 고금리 캐피털과 대부업체에서 각각 700만원과 300만원을 빌렸으나 이 또한 한 달 만에 모두 잃었다.

경찰청은 지난해 11월 2일부터 지난달 9일까지 100일간 사이버도박 특별단속을 통해 5448명의 도박사범을 검거했다. 연령대별로는 30대가 2391명으로 가장 많았고 20대 2129명, 10대도 172명이나 됐다.

특별취재팀=박진호·최종권·유명한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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