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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학퀴즈 주장원 한국, 고흐처럼 그리는 미국…한·미 AI 격차는 27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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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0월 인간과의 퀴즈쇼 대결을 준비하고 있는 ETRI의 인공지능(AI) 엑소브레인. 연구원들이 과거 퀴즈쇼를 재연하는 식으로 시뮬레이션을 진행하고 있다. [중앙포토]

“사람의 팔과 새의 날개, 사람의 폐와 물고기의 부레는 비슷한 구조로 돼 있다. 이처럼 기원이 동일해 형태나 발생에서 유사성을 가지는 기관을 무엇이라 할까?”

인간 영역 넘보는 인공지능
국내 증권사, 로봇이 상품 권하고
삼성전자, 디지털 비서 개발 나서

사회자가 질문을 던지자 퀴즈쇼 참가자 사이에서 잠시 적막이 흐른다. 5초 후 ‘Wise Q&A’ 팀이 “상동기관”이라고 정답을 말하자 머리 위 전광판에 ‘GOOD’이라는 글자가 나타난다.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인공지능(AI) 성능 실험을 위한 가상 퀴즈쇼의 일부다. Wise Q&A팀의 정체는 ETRI가 3년간 개발해온 토종 AI ‘엑소브레인’이다. 그간 EBS 장학퀴즈에 나왔던 꼴찌 팀 대신 엑소브레인을 참가시켜 과거의 퀴즈쇼를 재연하는 식으로 인간과 대결을 펼치고 있다. 객관식·주관식을 가리지 않는 엑소브레인의 현재 실력은 장학퀴즈 주 장원전에서 우승하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ETRI의 김현기 지식마이닝연구실장은 “엑소브레인은 인간의 언어로 대화하고, 스스로 공부해 지식을 쌓는 식으로 진화할 것”이라며 “미국 퀴즈쇼 제퍼디에서 우승한 IBM의 왓슨을 넘어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한국의 AI 기술 수준이 빠르게 향상되고 있다. 주요 대기업과 정부기관이 뛰어들면서 국내에서도 AI가 금융·교육·상거래·의료·법률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기 시작했다. 가장 적극적인 곳은 삼성전자·LG전자 같은 글로벌 제조사와 포털·통신·게임업계다.

삼성전자는 최근 소프트웨어연구센터 산하 ‘인텔리전스팀’의 조직을 확대하고 디지털 개인비서 및 사물인터넷(IoT) 서비스 개발 등을 연구 중이다. LG전자는 올해 초 미래IT융합연구소의 명칭을 인텔리전스연구소로 바꾸고 음성처리·얼굴인식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네이버 ·카카오는 음성인식 검색과 사진 분류, 음악·여행지 추천 등에 AI를 적용하고 있다. 엔씨소프트·넷마블게임즈 등은 개인 맞춤형 게임을 제공하거나 NPC(게임 속의 가상 이용자)의 수준을 높여 게임의 사실감을 높이고 있다.

AI가 활약하는 곳은 정보기술(IT) 분야만이 아니다. 7일 한 증권사의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에 접속하자 감내할 수 있는 투자 손실과 과거 투자 상품을 묻는 설문이 떴다. 매달 30만원씩 투자하겠다는 목표를 입력하자 로보어드바이저는 상장지수펀드(ETF) 몇 개를 추천상품으로 제시했다. 가격이 떨어지면 분할매수하고, 5% 이상 수익이 나면 매도하라는 재테크 전략도 제시했다. 이대로 계약을 하면 로보어드바이저는 해당 상품을 알아서 사고판다. 온라인을 통해 투자자와 대출자를 모아 연결해주는 P2P 대출 업체들은 대출 심사 및 신용평가를 AI로 대체해 가고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 황종성 정책본부장은 “선도적인 기술 개발은 늦었지만 시장 트렌드를 빠르게 따라잡으며 선두권을 추격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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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AI ‘딥드림’이 그린 추상화가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전시회에 선보였다. 이 추상화 29점 가운데 일부가 2200~8000달러에 팔렸다. [중앙포토]

한국보다 한 발 앞선 미국 등 선진국에서 AI는 인간 고유의 영역으로 여기던 분야까지 넘보고 있다. 지난달 26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추상화 전시회엔 수백 명의 인파가 몰렸다. 작가는 바로 구글의 AI ‘딥드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전시된 추상화 29점 가운데 일부가 2200~8000달러에 팔렸다.

딥드림은 다양한 이미지를 학습하고 전에 없던 초현실적 이미지를 창조한다. 피카소·고흐 등의 붓질을 모방해내기도 한다. 최종적으로 프로그래머가 약간의 손을 봐 추상화를 완성한다. 미국 예일대가 개발한 ‘쿨리타’는 거장을 흉내 내 작곡하고, 음계를 조합해 새로운 스타일의 음악을 만든다. 페이스북은 구글 딥마인드에 이어 AI에 기반한 바둑 프로그램을 개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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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에 따르면 AI에서 가장 앞선 미국의 기술 수준을 100이라고 했을 때 한국은 73.1에 불과하다. 이는 단기 실적과 수익성에만 신경 쓰다가 투자 시점을 놓친 탓이 크다. 하지만 한국은 세계 최고의 IT 인프라를 갖춘 데다 엔지니어들의 최신 기술 이해도가 높다.

충북대 경영정보학과 송대진 교수는 “기술 개발에 산학연이 공조하고, 관련 규제를 풀면 선진국 수준으로의 기술 진입은 충분하다”며 “헬스케어·핀테크·리테일 등에 집중하는 식으로 산업별·지역별 특화 전략을 마련한다면 얼마든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손해용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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