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85세 할머니, 혼자서 평생 모은 12억 장학금 기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기사 이미지

평생 힘든 일을 해서 모은 12억원이 입금된 박수년씨의 예금 계좌(위)와 이를 수성인재육성장학재단에 이체한 영수증(아래 오른쪽). [사진 대구 수성구]

6·25전쟁 때 남편을 잃고 억척스럽게 돈을 모은 80대 할머니가 사는 집을 뺀 전 재산 12억원을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박수년 할머니, 6·25 때 남편 잃고
농사·공장일로 모은 전 재산 쾌척

대구시 수성구에 사는 박수년(85)씨는 7일 수성구청을 방문해 장학금을 기탁했다. 대구은행 수성구청지점 계좌에 있던 12억원을 수성인재육성장학재단 계좌로 이체하는 방식으로 장학금을 전달했다.

박씨는 “평생을 너무 가난하고 힘들게 살았다. 평생 모은 재산을 사회에 돌려주겠다고 생각하니 가슴에 맺힌 한이 풀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질문을 했다. “남편을 기리고 싶은데 방법이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이진훈 구청장이 장학금을 남편 이름으로 지급하면 어떻겠느냐고 했고 박씨와 외아들도 동의했다.

박씨는 17세 때인 1948년 김만용씨와 결혼했다. 하지만 2년 뒤 6·25전쟁이 일어났고 남편은 28세의 나이로 입대했다. 그리고 2년 뒤 전사통지서가 박씨에게 날아왔다.

이후 박씨는 농사부터 양말공장 일까지 60세가 될 때까지 닥치는 대로 일했다. 번 돈은 대부분 저축하고 거의 쓰지 않았다. 생활이 나아질수록 남편에 대한 그리움이 커지면서 남편을 위해 좋은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박씨는 처음엔 자신의 이름도 밝히지 않았지만 이 구청장의 권유에 따라 사연을 공개했다. 하지만 얼굴 사진 촬영은 끝내 거부했다.

이 구청장은 “생활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김만용·박수년 장학금’이란 이름으로 지급할 예정”이라며 “구립 범어도서관에 두 사람의 이름과 장학금 기증 사연을 적은 기념공간도 만들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구=홍권삼 기자 honggs@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