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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마크 16년 ‘깎신’ 주세혁의 마지막 도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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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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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세혁은 공을 깎아치는 커트 플레이로 ‘깎신’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4일 세계선수권 8강 포르투갈전에서 커트로 공을 받아내는 주세혁. [사진 대한탁구협회]

21세기 세계 탁구계는 파워와 스피드를 겸비한 선수들이 주름잡고 있다. 시속 200㎞에 가까운 파워 드라이브를 앞세운 중국의 마롱(28)과 쉬신(26) 등이 대표적이다.

혈관 붓는 희귀병 이기고 현역생활
수비 전문이지만 스매싱도 잘해

그러나 파워 드라이브가 아닌 절묘한 커트 플레이로 살아남은 선수가 있다. 탁구 국가대표로만 16년째 뛰고 있는 ‘커트의 달인’ 주세혁(36·삼성생명·세계 16위)이다. 그의 또다른 별명은 ‘깎신’이다. 절묘하게 공을 깎아친다고 해서 붙은 별명이다.

주세혁은 남자 탁구에선 보기 드물게 수비 전형으로 성공한 선수다. 그는 6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에서 끝난 세계단체전 탁구선수권대회에서도 ‘커트 신공’을 발휘했다. 지난 4일 8강전에선 마르코스 프레이타스(세계 11위), 주앙 몬테이로(세계 45위) 등 포르투갈 선수들을 상대로 절묘한 커트 플레이를 구사한 끝에 각각 승리를 거뒀다. 한국은 그의 활약 덕분에 포르투갈을 3-1로 꺾고 4년 만에 대회 4강 진출에 성공했다. 주세혁은 “하루에 2경기나 치러 힘들었지만 내 손으로 끝내야 겠다는 책임감이 앞섰다”고 말했다. 한국은 그러나 4강전에서 중국에 0-3으로 져 공동 3위를 차지했다.

주세혁은 커트 플레이가 전매특허지만 기회가 오면 전광석화 같은 포핸드 드라이브로 상대의 허를 찌른다. 그의 변화무쌍한 플레이는 해외에서도 인기가 높다. 그를 ‘아트 핑퐁(art pingpong)’의 대가로 부르는 이도 있다. 중국에선 ‘세계 제1의 수비수’라는 별칭을 붙여줬다. 주세혁은 “해외 대회에 나가면 간식을 선물하는 팬들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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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탁구를 시작했던 주세혁은 “성격이 침착하니 수비형이 바람직할 것 같다”는 지도자의 권유를 받고 수비전형 선수가 됐다. 그러나 수비형 선수로 성공하기까지는 랠리만큼 긴 기다림이 필요했다. 중·고교 시절 슬럼프가 올 때마다 수비형 전형을 선택한 걸 후회하기도 했다. 이 때 그는 수비만 갖고는 살아남기 힘들 것이란 판단 아래 공격 기술도 함께 배웠다. 수비를 하다가 갑자기 공격으로 전환하는 능력을 키운 게 그때였다. 그는 매일 2000개씩 공을 깎아치는 한편 스매싱 기술도 갈고닦으면서 전천후 선수로 거듭났다.

주세혁은 2003년 프랑스 파리 세계선수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며 한국 탁구의 간판 선수로 떠올랐다. 당시 국군체육부대 소속이었던 그는 “군 생활을 통해 경기를 즐길 줄 아는 방법을 배웠다. 그 때가 전환점이었다”고 말했다. 2005년 이후 주세혁은 10년간 국내 주요 대회를 휩쓸었다. 한국이 2006·2010·2014 아시안게임 단체전에서 은메달을 따내는데도 그의 공이 컸다. 2012년 런던 올림픽 때는 혈관이 부어 통증이 생기는 류마티스성 베체트라는 희귀병을 이겨내고 단체전 은메달을 따냈다.

주세혁은 8월 열리는 리우 올림픽에 태극마크를 달고 나간다. 2004년 아테네, 2012년 런던 대회에 이어 세 번째 올림픽 무대다. 후배인 유승민(34)이 코치를 맡았지만 그는 여전히 현역이다. 주세혁은 이상수(26·삼성생명)·정영식(24·대우증권)을 이끌고 리우 올림픽에서 메달을 노린다. 두 아들 지민(10)·지호(8) 군을 둔 주세혁은 “올림픽에서 메달을 따내 두 아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빠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쿠알라룸푸르=김지한 기자 kim.ji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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